든이에게 전하는 할머니의 사랑

세상에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by 이윤지


든이야 잘 자고 있니?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으로는 요즘 네가 어른만큼 밥을 매일 잘 먹는다고 하시던데

참 귀엽고 뿌듯했단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이보다 더 예쁜 모습이 있을까 싶어.

매일매일 더 큰 사랑을 보여주는 네게 참 고맙다.

오늘은 할머니 이야기를 조금 전해줄까 해.

드니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큰 덕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정말 크거든.

엄마 아빠도 물론 하늘만큼 땅만큼 든이를 사랑하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바라보노라면 엄마는 아직도 배울 점이 많고 너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된단다.

할머니 품에만 안기면 포근히 바로 잠들던 너 :)

홍콩에 살다가 든이를 낳기 위해 엄마는 할머니 집에 왔더랬지.

남산 만한 배를 안고 다니면서 엄만 정말 일도 안 하고 할머니 댁에서 친정 집에 있듯 편안한 간을 보냈단다.

든이가 태어나고도 1년을 할머니 댁에서 함께 보냈지.


누군가는 시댁에서 지내느라 힘들었겠다고 하지만

아마 할머니께서 며느리 챙겨주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거야.

엄만 요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살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딱 한 가지 할머니랑 수다를 많이 나누고 같이 놀러 다니는 것만 쬐끔 잘한 것 같다. (이건 잘했다기보다 엄마가 좋았던 거지만)


어느 날 문득 할머니를 떠올리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어.


‘어머님께서 나에게 끓여주신 미역국이 몇 번이지?’


생각해보니 족히 오십 번은 넘는 것 같아. 느낌으로는 몇백 번도 넘는다.

조리원에 있을 때 산모들이 어떻게 먹는지 궁금하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할머니의 말에 엄마는 진짜로 정직하게 찍어 보내드리기도 했어.

세상에 이런 철부지 며느리가 또 있을까?

엄마처럼 생각하란 말씀에 진짜 딸처럼 편안하게만 대해드린 것 같아.


음. 그리고 엄마가 할머니랑 있을 때 언제가 참 좋았는가를 떠올려보니

예전에 다낭에 놀러 갔을 때인 것 같아.


어머님과의 뒷모습. 어디 가면 당연히 엄마와 딸인줄 아신답니다

커다란 리조트 예쁜 산책길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말이지? 할머니는 그동안 한 번도 자전거를 안 타보셨다며 무서워하셨어. 그래서 무려 3인용 자전거를 엄마 아빠와 함께 타셨단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한 추억이었는데.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 자전거를 타보셨다며 아이처럼 기뻐하셨어.


그러고는 다음날 말씀하셨단다.

간밤에 자전거를 타는 꿈을 꾸셨다고 말이야..^^


그 후로도 내게 팔짱을 끼시며 여러 차례 소녀처럼 말씀하셨단다. 그날 자전거를 함께 타서 너무너무 행복하셨다고. 그때 자전거를 탄게 참 일등으로 잘한 일인 것 같.


옛날에 이든이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에 엄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윤지야, 나중에 시댁을 만날 때는 시어머니 무릎에 누울 수 있는 그런 어머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고 말이야.

나는 도대체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았지.

그런데 외할머니께서는 그런 좋은 사람이 분명 있다면서 엄마에게 그런 어머님을 꼭 만날 거라고 하셨어.


그땐, 우리 엄마가 너무나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분을 만난 것 같아.

외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 걸까..?


오늘 할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검진을 받으셨는데 수술을 하셔야 한다고 말이야.

사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검진 결과가 나온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전화가 오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받았는데, 기쁜 소식만은 아니네..


혹시 겁이 나실까 싶어 의연한 목소리로 정말 괜찮으실 거라고

이렇게 검진으로 빨리 발견하신 게 어디냐며 차분하게 말씀드렸지만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힘드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


마다 예쁘게 기도하는 우리 든이와 함께 열심히 기도하면 분명 좋아지시겠지?



이따금 엄마는,

할머니의 다리에 베고 눕는 상상을 해본단다.


결혼 초기엔 ‘에이 아무리 친해져도 어떻게 어머님 다리에 누워!’ 싶었는데

이젠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실은 하지 못할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더라고.


너무 좋을 걸 알기에 눈물이 나는 걸까?

너무 쑥스러워서 눈물이 나는 걸까?

너무 사랑해서 눈물이 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주어진 하루하루에 고개 숙이게 되는 겸손한 순간들이 다가온단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모든 만남과 순간을 귀하게 대하고 최선을 다하게 돼...*


이불에 돌돌 말려 세상모르고 자는 네 모습이,

참 예쁘고 귀하다 든이야.


조만간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 재미나게 놀다 오자!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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