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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Dec 27. 2021

하루하루 역사는 흐른다

너에게 쓰는 네 번째 편지

드니야 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그동안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마음을 전하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리니, 이래서 뭐든 부지런히 바로바로 기록해야 하나 봐.      


바쁘나 여유롭거나 하루하루 너를 바라보는 게 행복이고 기쁨이란다..^^

할머니께서도 편찮으신 중에도 손주만 바라보면 힘이 나신다고 신기하다고 여러 번 말씀 주셨어.

엄마도 너를 바라볼 때면 마치 생명의 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단다.


나간 일은 바로 사라지고 현재에 충실하며 부족한 부모의 일들도 바로 용서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너를 보며 엄마는 참 많이 배워. 


'매 순간 태초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게 이런 걸까?' 하고 생각해본 적 있단다. 네 에너지가 너무나 밝고 해맑아서, 엄마 혼자 있을 땐 상념에 빠져있다가도 네가 짠 하고 등장하면 다 잊어버리고 바로 그 순간 너와의 시간에 몰입되어 웃게 된단다.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준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


고운 너의 새싹이 온전히 자라나도록 엄마, 아빠가 잘 도와줘야 할 텐데. 엄마의 목표 중 하나는, 네가 우리와 살아가는 동안 너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는 거란다.   


참, 엄마가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어제 네가 들려준 노래가 아직도 강하게 마음을 울리는 덕분이란다.


요즘 한참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하는 노래를 친구에게 배워와서 자주 부르던 너. 어제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레고 정리하면서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만 수십 번은 부른 것 같아.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흐른다!"


런데 네가 이 부분을 어찌나 열심히 낭랑하게 부르던지 처음엔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단다. 네가 너무나 순수하게 부르니 모든 가사가 시이고 울림이었던 것 같아. 할머니께서도 엄마와 비슷한 마음이셨는지 네가 노래하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그래. 역사는 흐르는구나. 우리 이든이가 말하니까 다르게 들린다. 지금 오늘 하루도 역사가 흐르고 있는 거지.”     


하고 말이야.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네 노래를 들으면서 역사가 무엇일까.. 하다가 지금 이 순간도 역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거든.      


사실 세상에 길이 남는 역사들도, 그 시작을 살펴보면 작은 날갯짓과 같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혹은 누군가 마디, 한 인물의 결심, 다짐 시작되는 경우가 많단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가. 지금 이 순간이. 너와의 대화가. 네가 생각하는 마음들이. 모두 소중한 역사라고 생각해.      


일주일에 한 번 너와 장터에서 옥수수를 사고 채소가게, 생선가게, 과일가게를 돌며 장을 볼 때도,

너와 모래놀이를 하며 산과 케이크를 만들 때도,     

응가를 하면서 “엄마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할 때도,     

엄마가 예뻐.” 하고 느닷없이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말을 건넬 때도,     

한참 혼나고 난 뒤 슬며시 다가와 “엄마 이제 화 안 났어?” 해맑은 미소로 물어볼 때도,     

자기 전에 얼굴을 맞대고 추피 책을 함께 읽을 때도,      


어쩌면 매 순간 귀한 역사 속에 함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네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가는 여정 속에서 함부로 이리저리 옮겨 심거나 햇살을 가리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힘껏 줄기를 올릴 때 옆에서 박수쳐주고 혹시 시들더라도 스스로 물을 끌어올려 다시 뻗어나갈 때까지 곁에서 기도하며 바라봐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얼마 전에 드니야. 엄마랑 저녁 먹다가 네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단다.


"엄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순간 너무 당황해서 '다 컸는데 뭘.' 하다가 괜스리 행복해져서


"엄마? 작가! 글 쓰는 사람 하고 싶어."


했더니 네가 막 웃어주었단다.

엄만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질문을 받았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감격스럽기도 하고 기특하여 아빠에게 말해주었지. 퇴근한 아빠가 슬그머니 너에게 한 번 더 물어보았단다.


"엄마 커서 뭐 되고 싶대?"


혹시 기억이나 할까 싶었는데,


"응~ 작가!"


하는 말에, 마음 졸이며 듣고 있던 엄마와 아빠는 크게 웃고 말았단다.


 말처럼 실은 지금 든이만 자라고 있는 중이 아니란다. 엄마, 아빠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거든. 물론 우리는 위로는 더이상 자라지 않지만 어쩌면 이 안에 나이테가 늘어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보이는 키만 너보다 높다 뿐이지, 때로는 우리가 영롱하게 빛나는 드니 새싹을 보며 더 많이 배우고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아침이다!"를 기쁘게 외치는 너를 보며 매일 시작되는 하루에 감사함을 느끼고 말이야.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씩씩하게 자라나주어 고맙다 든이야.      


이제 몇 밤만 더 자면 다섯 살이 되는구나!

엄마, 아빠는 서른일곱이 된다고 했더니 시무룩해지며 일곱 살 하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단다.

드니는 다섯 살이 되고 엄마빠는 일곱 살이 되고!

신난다 신나!

우리 연말 감사히 보내며 감사히 또 한해의 시작을 준비하자.


원에서 선생님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밥 많이 먹고 이따 오면 슈퍼 가서 맛난 과자 사 먹자!


사랑한다..^^


-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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