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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Dec 10. 2021

마지막 선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때 나는 중환자실 앞 계단을 따라 두 층 정도 더 내려간 어딘가의 창가 아래 있었다. 그곳은 혼자만의 공간이 되어주던 자리였다. 멍하니 서있다 난간을 붙잡고 울 때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찮냐며 붙들어주기도 하던, 중환자실에서 멀지 않은 최선의 독립적인 장소였다.


엄마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앞 철제 의자에 동생과 나는 하루 종일 머물러 있었다. 밤이 되면 이불을 덮고 누워 혹시 모를 호출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아빠는 중요한 자료를 가지러 집에 종종 다녀오셨다.


엄마가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주셨다. 딸기도 들고 오시고 흰 봉투도 건네시고, 설렁탕을 사주기도 하셨다. "어쩌냐..." 하며 한참 동안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다. 그때마다 나는 귀한걸음 해준 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실 때까지 미소 지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도 오지 않을 시간이 되면 계단을 따라 내려가 벽에 기대어 펑펑 울었다. 아빠도, 동생도, 그 어디선가 꾹 참던 슬픔을 풀었으리라.


철제 의자에서 지낸 지 5일인가 지났을까, 빠른 걸음으로 차트를 들고 나오신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다. 다른 건 흐릿했는데 뇌사라는 두 글자는 또렷하게 다가왔다. 순간 다리가 풀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장면처럼 양쪽의 두 사람이 늘어진 양팔 붙들어주다.


처절한 시간이 흐르고 다시 날이 밝았다. 나는 또 계단을 적당히 내려간 뒤 하얗고 높은 벽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갑자기 비상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방법이 정말 통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고 결연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날 저녁 하루에 딱 한번 주어지는 중환자 면회 시간이 다가왔다. 큰맘 먹고 나는, 아빠와 동생에게 오늘은 혼자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감사히도 두 사람은 소중한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중환자실 문을 열고 엄마 자리를 찾아 커튼 속으로 들어갔다. 고운 얼굴도, 작은 발도, 손도 어제보다 많이 부어 있었다. 수술을 위해 급하게 밀어버린 머리카락을 보 나중에 엄마가 속상해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진짜로 예쁘다고 말해줘 생각했다. 심장 박동 알려주는 하트를 보니 수치가 많이 낮았다. 자, 이제 준비는 되었다.

 

나는 침대를 붙잡고, 하루 종일 꾹 참고 모아둔 모든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구 상에서 제일 불쌍한 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온몸을 흔들며 울었다. “엄마, 엄마!” 아껴두었던 눈물을 다 토해내었다.


‘엄마, 제발 일어나. 나를 두고 어디를 가려고 해. 내가 왔어. 일어나 제발... 제발


차마 말로 하진 못했지만 이 모든 메시지를 담아 한번만 일어나 달라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나를 제발 알아달라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엄마의 심장 박동수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삐삐삐삐 하 올라가는 동수를 보며 깜짝 놀란 나는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숫자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나는 더욱더 큰 목소리로 "엄마! 엄마!!" 하며 오열을 했다.


그때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이 커튼 속으로 뛰어들어와서는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그런데 한번 보시라고 심장박동 기계를 가리켰다.


그러나 다시 바라본 심장 박동수는 처음처럼 낮아진 뒤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는 믿지도 않는다는 듯 다시 가버리셨다.


커튼 속에 우리 둘뿐이 되자, 나는 또 한 번 휘몰아치듯 펑펑 울었다. 그러나 울고.. 또 울어도.. 엄마의 심장박동수는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다.


'아, 뇌사라고 하셨지...'


그렇지만 좀 전에 분명히 나는 엄마가 깨어있음을 느꼈다. 엄마가 "윤지야" 하고 불러주신 순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면회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에 부랴부랴 나와 아빠와 동생에게 들어갈 시간을 주었다. 풀려버린 다리를 끌고 계단 저 아래 어딘가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한 번도 의식이 없던 엄마와 소통했던 그 찰나의 시간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가 내게 힘내어 인사해준 그 시간이 기적이고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엄마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다시 철제 의자로 올라와 엄마 휴대폰을 열었다. 음악 보관함에는 엄마가 평상시 듣던 음악들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아침,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간호사 선생님을 붙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희 엄마가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는데요. 혹시 휴대폰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게 해 드려도 될까요?”     

간호사 선생님은 잠시 생각해보시더니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보고 알려준다고 하셨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중환자실 앞에 앉아있던 내게 간호사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셨단다.

     

혹시라도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날 저녁 면회 시간이 되자,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침대 위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고 엄마 베개 옆에 휴대폰을 놓은 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전체 반복해서 이어폰을 꽂아드렸다.  

   


의식이 없는 뇌사 상태라 할지라도 분명 하루 중 영점 몇 초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사람인데 누워 있는 내내 얼마나 적적했을까. 차가운 중환자실에서 냉정한 의료장비 소리만 들려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실은 이런 생각까진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엄마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의식이 잠깐이라도 돌아오셨을 때 음악이 들려온다면 살고 싶은 의지를 더 내시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다.


그때부터, 정신이 맑아졌다. 요동치던 감정들이 잔잔해지면서 이 상황이 담담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좋아하실 모습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어떤 상황에서든 씩씩하고 멋진 모습으로 있을 때 기뻐하실 것 같았다. 아빠와 작은 아빠가 대화하실 때 나는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엄마의 마지막을 정하는 자리에 꿋꿋하게 참석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엄마가 예고도 없이 쓰러지기 이틀 전 우리는 늦은 밤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에게 나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하고 씩씩하게 밝게 멋지게 살기로 약속을 했다. 도대체 갑자기 엄마와 왜 그런 약속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믿기지않는다.  


     

아이의 하원 차량을 기다릴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 득,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들었다. 시간이 8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럼에도 찾아 듣는 이유는, 마음이 따스해지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행복할 때 따금 눈물이 나나보다. 내가 느끼는 벅차오르는 사랑 안에는 엄마가 먼저 알려주고 전해준 깊은 사랑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신기하게도 오늘 마침 아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이든이 외할머니는 어디에 있어?”

언젠가는 물어볼 거라 생각는데, 막상 듣고 나니 덤덤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목소리로 답변해주었다.

“응, 하늘나라.”

그런데 모노톤의 잔잔한 엄마 말을 들은 아이의 반응은 생기가 넘쳤다.

“하늘나라? 높~은 하늘나라? 히히히”

아까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 "와! 저기! 감이다 감!" 신나게 말하던 목소리로 똑같이 대답해주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하늘나라에 있다는 게 참 즐거운 일일 수도 있겠네. 아이의 눈으로 보니 슬픔이 아니라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살아계셨다면 정말 예뻐하셨을 텐데. 이든이도 외할머니를 정말 좋아했을 텐데. 창밖을 바라보며 잔잔히 웃어보았다.


우리 엄마는 하늘에서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문인화도 그리고 한시도 쓰고 계실 것 같다. 평생 세상에 있는 책을 다 보는 게 소원이라 하셨는데, 책이란 계속 나오니 지루 할 틈도 없지 않으실까? 하늘나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인기인이실 것 같다. 바쁘신 중에 오늘은 귀여운 손주를 보면서 웃음 지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천진난만하게 그렇게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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