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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Jan 09. 2022

행복한 느티나무

엄마표 동화 이야기 2

옛날 어느 숲 속 마을에 작은 느티나무가 살고 있었어요. 느티나무는 마을 앞동산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한적한 낮이나 고요한 밤이 되면 한 사람 씩 나무를 찾아오곤 했지요.      


아랫 마을엔 말수가 적은 한 여인이 살고 있었어요. 그 여인은 사람들이 잠든 늦은 밤이 되면 느티나무 곁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답니다. 그녀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침묵을 지킨다는 걸 느티나무는 알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녀의 험담을 할 때마다 나무는 답답했어요. 대신 해명을 해주고 싶었지요. 그러나 느티나무는 들을 줄은 알지만 말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랫 마을엔 못된 사람으로 불리는 아저씨도 있었어요. 느티나무는 그 악독한 아저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찌나 나쁜 말을 많이 하던지 나무는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 였어요.

어느 날 늦은 밤 멀리서 중절모를 쓴 한 남성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동안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느티나무는 척 보고 그 아저씨임을 알 수 있었요.

아저씨는 나무 아래 앉아 주절주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느티나무는 마음을 꾹 닫은 채 ‘거짓말이야.’ 하며 아저씨를 노려보았어요. 그런데 한참을 다 보니 아저씨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보였어요. 자정이 넘어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돌아가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여운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느티나무는 아저씨에게 힘내라는 이야기를 건넬 수도, 안아줄 수도 없었어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느티나무는 처음으로 자신의 기둥 속에 뜨거운 심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멀리서 한 마리의 사슴이 걸어오는 순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거든요.

눈망울이 별처럼 몽글몽글한 사슴은 느티나무에 사뿐다가와 이리저리 돌아보기도 하고, 그늘에 앉아 우두커니 쉬었다 가곤 했어요. 느티나무는 그때마다 설레는 마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사슴은 느티나무 곁에서 쉬다 집으로 돌아가려 일어났어요.

불현듯 느티나무는 몹시 화가 나면서 속상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어요.     


‘나는 왜 움직이지도 못해서 저 사슴을 따라가지도. 붙잡지도 못하는 걸까?

바보처럼 말도 할 수 없고 말이야. 난 정말 못났어.’     


느티나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자유롭게 다니는 아주 작은 개미를 보고 있노라니 원망하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어요. 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무능력한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진 느티나무는 병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비가 내려도 물을 열심히 빨아들이지 않았고 햇살이 내리쬐어도 마치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렇게 사계절이 흐르고.. 또 한 해가 흘렀답니다.

       

어느덧 두 해 지난 봄날이 되고 아랫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곁으로 소풍을 왔어요.

그 자리엔 서글프게 울던 아가씨와 시름 가득하던 중절모 아저씨도 있었어요.

그러나 오늘은 사뭇 달랐어요.

모두가 함께 어울려 까르르 웃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니 일련의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오해가 풀린 모양이예요.

햇살 아래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어찌나 맑고 청량한지 느티나무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사람들이 떠난 오후, 눈을 크게 떠보니 저 멀리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사슴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여전히 아름다운 사슴은 이전의 그 여느 날처럼 느티나무 그늘에서 조용히 쉬다 떠나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는 느티나무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슴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했어요.

     

느티나무는 생각했어요.

'만일 사슴을 끝까지 쫓아 따라다녔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에게 노발대발 화를 내며 나섰다면 오늘의 이 화목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에요.


더불어, 지금의 내 모습이 참 좋다고 느껴졌어요.  


하늘을 바라보니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어요.

두 해가 넘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무한히 다가와준 덕분에 느티나무의 키는 훌쩍 자라 있었어요.

오랜만에 스스로를 바라보니 그 사이 나무에는 여러 동물과 새들이 보금자리와 놀이터를 만들어 놓았어요.  


“어라, 왜 이렇게 간지럽지?”     


뿌리를 간질이는 지렁이들의 움직임에 느티나무는 깔깔깔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나무는 있는 힘껏 땅속의 물을 끌어올렸어요.

나를 찾아온 친구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나무는 이제 사슴과 여우와 토끼가 놀러 왔다 떠나가도 슬프지 않았어요.

모두가 떠나간 밤이면 고요한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거든요.

내일은 어떤 친구가 찾아올지 기대하며 잠을 청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어요.


느티나무에겐 꿈이 생겼습니다.

훗날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쓰임이 되는 거예요.

이전엔 벌목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이젠 희망으로 다가왔어요.


언젠가 이롭게 쓰일 재목이라니,

기왕이면 멋진 모습으로 근사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느티나무는 부지런히 몸 관리를 하느라 하루하루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답니다.      


“어라, 이게 원래... 여기 있던 나무였나?”     


느티나무를 찾아온 사람들은 이따금 나무를 바라보다 깜짝 놀라곤 했어요.

며칠 사이 훨씬 울창하고 듬직해진 모습에 마치 다른 나무를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럴 만도 했을 거예요.     

느티나무는 하루하루 다시 태어나고 있었답니다.

 



























PS) 엄마표 동화 이야기. 이전의 해왕성 이야기에 이어 행복한 느티나무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유치한..^^ 엄마표 동화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아이에게 곤충 백과를 읽어주다 문득 우리 주위 모든 생명체들이 다 저마다의 존재의 이유가 있고 벅차오르게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으아 징그러워 했는데 보고 또보니 겹눈 생김새도, 더듬이와 다리 하나하나도..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주 사소한 기관 하나도 저마다의 귀한 쓰임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쪼록 오늘도 평온하고 행복한 날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늘 여전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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