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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Oct 27. 2024

드디어 첫 출근

봄 8

유튜버는 위대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운동을 따라 했더니 늘 달고 살았던 오른쪽 고관절 통증이 줄어들었다. 그것도 확연하게. 순간적인 효과일지 일하고 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지는 몰라도 기분만큼은 훨씬 나아졌다. 퉁퉁 부었던 발을 위해 쿠션 좋은 운동화도 거금을 들여 새로 샀다. 원판이 부실하니 장비빨이라도 받아야지.     


편의점에서 찍은 영상은 또 얼마나 많이 봤는지, 스크린타임이 10시간 넘게 나왔다. 통증이 줄어드니 자신감이 올라와 고관절도, 업무도, 어떻게든 적응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혼자 일하다 모르면 미리 찍어둔 영상을 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점장에게 전화를 걸면 된다. 고관절이 뻐근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해보는 거지 뭐! 틈틈이 의자에도 앉고. 이 정도면 정말 준비된 알바생 아닌가… 싶지만, 실은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어떻게든 무난하게 삶을 일궈내고 싶은 간절함이었을 거다.     


설렘과 자신감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전 시간대 근무자가 퇴근 전 워크인이라 부르는 음료와 주류 냉장고를 채우느라 30분 동안 함께 근무했다.     


“저녁에 손님이 많을 거라서… 수고 하세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이제 정말 혼자 남았다.     


이후 시간은 대체 내가 뭘 했고 뭘 못했는지 또렷하게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혼돈 그 자체였다. ‘포스기’라 부르는 화면 계산기 다루는 일이 그렇게 복잡할 줄이야. 점장의 시범은 수십 가지 사례 중 한두 가지에 불과했다. 얼마나 돌발 상황이 많았는지, 긴장으로 얼굴 전체가 돌처럼 굳어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장 적응이 안 됐던 건, 할인도 적립도 결제도 모두 바코드 리더기로 찍기만 하면 되는 프로세스였다.     

예를 들어 새우깡 한 봉지를 계산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새우깡 봉지의 바코드를 스캐너로 찍는다

2. 포스기의 현금/카드 버튼을 누르고 현금을 받거나 카드를 단말기에 꽂아 결제를 마친다.     


그런데 손님이 1번과 2번 사이에 통신사 할인을 하겠다며 내게 바코드를 보여 준다. 이럴 때 나는 화면에서 ‘할인’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새우깡 바코드를 찍은 그 상태에서 할인카드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알아서 할인이 됐다. 심지어 이 상태에서 카카오나 네이버페이, 카드 결제 바코드를 찍으면 따로 결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계산이 끝나버린다.     


바코드를 찍는 단 한 가지의 행위가 계산, 할인, 결제와 같은 여러 역할을 연달아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낯설었다. 자동차 수동 기어를 변속하듯 중간 중간 모드 변경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     


과정을 이토록 단순하게 만들었으니 계산이 수월해야 할 텐데 처음 업무를 배워나가는 내겐 그렇지 않았다. 확인 과정이 생략된 만큼 초보 계산원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편의점을 잘 이용하지 않았고 빵집 등에서 통신사 할인 받는 걸 귀찮아했던 터라 더욱 적응이 어려웠을 거다.     


두 번째로 내 혼을 쏙 빼놓은 건 담배였다. 내가 아는 건 솔, 장미, 88... 오래전 아빠가 좋아하던 담배들뿐인데. 언제 이렇게 담배 종류가 많아진 걸까. ‘에쎄’ 하나만 해도, 에쎄 프라임, 에쎄 수, 에쎄 수 0.1, 에쎄 수 0.5, 에쎄 체인지 1미리, 에쎄 체인지 4미리, 에쎄 체인지업, 에쎄 체인지 히말라야... 점장은 담배 이름과 위치는 하다 보면 저절로 외우게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손님들이 말하는 담배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다행히 손님들이 베테랑이었다. 담배 손님은 카운터로 걸어올 때부터 이미 눈과 손이 자신이 원하는 담배로 향해 있다는 걸 얼마 안 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리바리한 알바생 앞에서 손가락을 척척 뻗으며 “저기 빨간색이요” “왼쪽에서 두 번째 노란색이요.” “그 옆에 옆에요.” 이렇게 알려주었다. 다행히도 내게 화를 내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락으로 싸 간 김밥은 꺼내지도 못했다. 일 배우랴 손님 응대하랴 바쁘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포장된 물건들 사이에서 은박지로 대충 싼 김밥을 먹으려니 왠지 쑥스러웠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참치김밥을 하나씩 먹고,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도 2+1 행사를 하기에 구입해 한 봉을 먹었다. 그러니 퇴근 때까지 속이 든든했다.     


두 번째 퇴근길. 걱정했던 고관절에서는 미미한 통증만 느껴지고, 이번엔 발바닥이 더 아팠다. 종종걸음을 많이 친 탓일 거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적어도 지난번처럼 로봇이나 펭귄 같지는 않잖아. 버스 의자의 등받이가 간절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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