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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파랑 Oct 22. 2023

가족회의 하는 날

1986년 5월 24일 (토)
오늘은 가족회의를 연다. 나는 사회부장 도서관리부다. 끝까지 책임을 맡겠다.     
1986년 6월 5일 목요일
오늘은 가족회의를 여는 날이다. 그러나 아빠가 늦게 오셨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1986 3,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근처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안방과 작은방, 마루로  넓은 거실이 있는 남향집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널찍한 안채에 살게 되었으니, 부모님으로선 나름  도약을  셈이다.     


거실에는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두고  5인용 낡은 소파가 있었다. 소파는 양쪽 벽면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사이엔 낮은 탁자를 놓았다.     


어느  아빠는  소파에서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회의 장면은 이렇다. 엄마가 음료나  다섯 잔을 준비한다.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앉고 건너편 3인용 소파에 언니와 , 남동생이 앉아 부모님을 마주 본다. 회의 진행은 아빠가 맡는다. 식구대로 돌아가면서   동안 있었던 일과 건의 사항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어색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긴 해도 회의 분위기가 특별히  좋았던 적은 없었다. 나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가족들이  이야기에  기울여 주는  좋았던  같다.     


언젠가 회의하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을 , 하도 꾸지람을 듣는  싫었던지 내가 이런 건의를 했다. 같은 잘못을   이상 했을 ,   충고한  화를 내거나 혼냈으면 좋겠다고. 이건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었다. 선생님은 친구들끼리 서로 화내며 다투는  좋지 않다며, 친구라면  번은 참아주는  기본이라고 했다. 나는  말이 무척 맘에 들었고, 아빠도 알았으면 했다. 식구라면, 게다가 상대가 아이라면, 소리 지르고 화를 내기 전에  번은 참아 주어야 하는  아닌가.     


그건  우스운 이야기인데...”     


아빠는 그렇게   없는 이유를 말했다.   참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손짓까지 해가며 반박하는 모습에 나는  놀랐다. 이건  이야기가 아니라 선생님이  말인데, 아빠가  사실을 알아도 이렇게 당당하게 반대할  있을까. 아빠에게 맞설 논리도, 용기도 없었지만, 나는 이때 벌써 아빠보다는 선생님의 말을  신뢰했던  같다.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빠가 화를 참기 싫어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망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화를 내고 회의를 망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회의는 특별한 건의사항은 없는 것으로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말에 뜨끔했던  같다. 자신이 화내는 것에 내가 불만을 가졌다는  알게 되었으니 당황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혈혈단신으로 살아온 아빠에겐 민주적인 소통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애초에 식구들의 건의 사항을 수용하고 해결할 내공이 있을  없었다. 다만 회사에서 하던 회의를 집에서도 해보고 싶었던  같다. 형식적이나마 민주적인 소통 과정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자신이 회의 진행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제는 짐작한다. 그도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가는 단란한 가정을 꿈꿨을 거라고. 그런 기대와 다짐으로 가족회의를 열었던 거라고.     


회의는 서너 달 이어지다 말았다. 마지막 회의가 열렸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건의사항을 말했던 때로부터 몇주 후였을 거다. 엄마가 크림빵 두 개를 예쁘게 잘라 접시에 내어 온 그날. 아빠는 별것 아닌 크림빵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멋스럽게 놓으니 보기 좋다는 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날따라 아빠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고, 우리는 많이 웃었다. 행복했다. 회의가 끝나고 양치질을 하고 작은방으로 들어갔을 때, 안방에서 아빠의 고함 소리와 엄마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아빠는 회사에 일이 있다며 밤중에 집을 나가려고 했고, 엄마는 “그 여자한테 가려는 거냐?”며 아빠를 막아섰다.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진 싸움이건만, 이날의 다툼은 화기애애한 가족회의 이후에 벌어진 것이라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빠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일 때면 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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