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

by 마니피캇

인식의 한계


우리 뇌는 내가 보고 들어 입력한 정보를 사실이라고 규정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앎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지구에서는 영원히 달의 한쪽 면 밖에 볼 수 없으므로 우주선을 타고 뒤로 돌아가 보는 엄청난 노력이 없이는 영원히 뒷모습을 모를 수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도 이와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도 달처럼 자신의 앞 면만 보여준다. 각자 본인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나는 얼마나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보여준 앞 면만 봐 놓고도 나를 안다고 착각한다. 이런 불완전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게 평가하면 기분이 좋고 나를 나쁘게 평가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마음을 비워야한다. 기분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들은 나의 일부를 보았을 뿐이다. 내가 타인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타인의 특정한 일부 면모를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하고 그의 성품을 판단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시야의 능력만큼만 보이는 것을 입력할 뿐이다. 우리는 그의 본 모습을 모르니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아야한다.


카이스트 뇌 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인간이 인식한 내용은 사실 아는 것이라기보다 안다는 느낌이라고 하였다. 내가 달을 보았다고 해서 달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물이나 사건 뿐만 아니라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평가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나의 이러한 가벼운 판단이 인간관계를 망가뜨린다. 그러면서도 자기 판단이 매우 객관적이고 때때로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식은 선택된 것


우리의 인식 능력은 받아들인 정보에 내가 믿고 싶은 답을 섞는다. 즉, 우리 뇌에 기록된 정보는 객관적 사실의 정보라기보다는 내 관점으로 한 번 걸러서 해석(解釋)하고 선택한 인식이다. 그렇게 해석한 답을 객관적인 정보 보다도 더 우위에 놓고 내 선택된 인식을 거스르는 모든 정보와 싸우기 시작한다. 작가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이렇게 썼다.

"살다가 뭔가 잘못되면 우리는 자연히 원인을 찾는다. 내 계획이 왜 어그러졌고 내가 낸 아이디어가 왜 돌연 반대에 부딪혔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몹시 괴롭고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찾을 때 우리는 매번 같은 유형의 설명을 맴도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나를 싫어해서 일부러 훼방을 놓았을 것이라고 확신 또는 의심하거나 정부나 사회적 관습처럼 나를 방해하는 거대한 반대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는 누가 나에게 잘못된 조언을 줘서, 내게만 정보를 감춰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죄다 내가 운이 없어서 아니면 불운한 환경 탓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대체로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내가 바꿀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에 집중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상황에 집중하고 그 현상에 내 관점이 추가된 주관적(주로 부정적인) 인식을 추가한다. 그리고 주변 인물이나 환경이 나의 장애물이라고 화를 내거나 변명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실패와 부족함을 변호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도 그렇다고 주장하고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원인을 외부로 돌리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못남이 온전히 본인의 탓이라고 여겨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내적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자기를 둘러싼 환경을 더욱 고통스러운 것으로 과장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규정한 외부의 문제점들은 신념이 되고 신앙의 위치에 올려지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찾은 이러한 결함에 더 많은 의미의 산을 쌓음으로써 내 인생의 문제점은 나에게 있지 않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 주변인들에게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런 인간 문제에 대한 통찰은 고대 스토아 철학에서도 있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자유로운 자아를 성취하기 위해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을 가장 강조하였다.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탓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어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내 감정과 내 판단이다." 작가 라이언 홀리데이는 토스를 받은 듯 이렇게 이어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결정을 선택한다. 상황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는 경우에 조차 큰일이 났다며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아! 이제 알 것 같다. 이렇게 혼란스러움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진짜 장애물이다. 다시 에픽테토스의 뼈 때리는 교훈을 읽어보자.

"무지몽매한 사람은 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한다.
하지만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은 자신을 탓한다.
깨우친 사람은 자신도 남도 탓하지 않는다."
- 에픽테토스



인식과 성격과 태도


그러므로 정신의 건강함은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로 드러난다. 우리의 감정은 천성이다.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그 감정이 결함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긍정적인 추진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감정을 결함이라고 규정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그 결함을 핑계로 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태도를 선택하면 더 이상 장애물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의 일부인 '성격'은 어릴 때 거의 형성되고 일단 형성된 성격은 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내 행위와 태도를 외부 현상을 보듯이 객관화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아, 내 성격은 이러이러하구나. 그럼 이렇게 하면 단점을 커버할 수 있겠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성격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지만 성격을 컨트롤하는 삶의 태도는 언제든지 훈련과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신경과학에 의하면 운전 중에 감정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은 우리 뇌의 특성 때문이다. 뇌의 시상하부는 본능을 관장하는 부분이고 이성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은 본능적 욕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운전 중에 전전두엽이 운전에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시상하부를 조절하는 일에 소홀하게 된다. 공격성과 감정조절의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의 모습과 다른 잠재된 투쟁심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그 동물적 감정이 가면을 벗은 내 본성인가?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그런 특수한 상황을 본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뇌가 정상적으로 모두 깨어있을 때가 비로소 우리의 온전한 모습이다. 각자의 삶에서 페르소나라는 역할과 성품의 가면을 정상적으로 쓰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 자신이다. 잠을 잘 때와 술을 마실 때에도 비슷하다. 전전두엽의 활동이 마비되거나 감소한다.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만일 내가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적절한 인격의 페르소나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시상하부의 반응은 감정이라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때 각자의 온전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성격과 감정을 이해하고 불완전한 모습을 컨트롤하려는 노력을 태도라고 하면 어떨까. 이를테면, 나는 개인적으로 운전 중에는 고결하고 거룩한 기분을 주는 성가(聖歌)나 감동적인 음악을 듣는다. 그런 음악을 듣다가 타인의 거친 운전에 분노나 욕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시상하부의 또 다른 특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신경과학에 의하면 뇌는 본능적 욕구를 한 번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반대 성격의 감정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정상적인 뇌라면 기쁘다가 갑자기 슬프거나 분노할 수 없다는 말이다. 참 다행한 일이다. 나는 정상인 것 같다. 황홀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가득 채운 시상하부에 분노가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최근에는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데 솔직히 감정조절에는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전전두엽이 운전에 쏠려있는데 책까지 들으니 시상하부는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기도 한다. 독서 중에 일어나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기분이 끌려다닌다.


요컨대,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훈련하는 태도가 바로 에픽테토스가 말한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성품은 선택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때 나쁜 일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고 절망 앞에서도 마음을 추스르고 희망을 찾는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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