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임무

친구가 되러 갑니다

by 마니피캇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하루를 반일 근무한다. 모두가 같은 날에 쉬면 안 되기 때문에 원하는 요일과 오전 오후를 선택해서 서로가 겹치지 않도록 협의했다. 나는 화요일인데 화요일은 아무도 선택을 하지 않아서 오후든 오전이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복지관 반찬배달을 위해 화요일 오후로 고정하였다. 반찬배달을 위해 화요일에 반차를 썼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봉사활동에 연차를 쓰는 줄 알고 대견해했다. 설명이 복잡하고 또 귀찮기도 하고, 그런 칭찬이 기분 좋기도 해서 그냥 싱긋 웃고 만다. "좋은 회사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가 사장이거든요." 이렇게 대답하고는 나는 "하하하" 웃고, 상대방은 1초 정도 생각하다 "풋!"하고 웃는다. 별로 웃기지 않지만 웃어주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말만 하면 빵빵 터뜨리는 굉장한 유머감각이었는데 이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감각인 것 같다.


매주 화요일 오후 약 세 시간을 그렇게 쓴다. 처음에 복지관 반찬배달 담당자는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여덟 분을 방문해 달라고 했다. 여기에 다른 봉사자들이 못 오는 날이면 내가 한 두 분을 더 방문해야 한다. 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5분만 잡아도 40분이라서 이동시간을 합하면 절대 한 시간 안에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한 시간 20분 정도 만에 다 돌았다. 반찬 택배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낯선 관계이니 별로 대화를 나눌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남이 반복될수록 시간이 길어진다. 당연하다. 친해졌으니까 한 마디 말이라도 더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여유 있게 세 시간 이상 잡아둔다. 그래도 여덟 명의 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으로는 너무 경제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달 전쯤이었나, 새 친구들 중 유일한 홍일점인 신OO 할머니는 뇌경색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해 온 아들이 퇴원했다는 기쁜 소식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내가 올 시간에 맞추어 길 가에 나와 기다리셨다 한다. '봉사자들은 항상 바쁘니' 나와서 기다리면 잠깐 이야기할 시간이 있겠지 하셨단다. 내가 다른 봉사자들과 달리 꼬박꼬박 "별일 없으시죠? 건강은 괜찮으시구요? 찬바람 부는데 집에 외풍은 없어요? 혹시 복지관에 전하실 부탁 있으세요?"라고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고 하시며 "말을 걸어주니 나도 편하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하신다. 그러니 바쁜 척을 할 수도 없고 바쁜 척을 해서도 안된다. 다행히 정말 바쁘지 않게 시간을 뺄 수 있다.


그렇게 안부를 묻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복지관에 전달하는 것이 내가 복지관으로부터 받은 임무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 꼬박꼬박 간단한 이야기라도 모두 전달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담당자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새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일부러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해야 하는데 문득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피하는 건가? 신OO할머니가 주방 벽에 곰팡이가 피어서 혹시 도배 같은 것도 지원이 되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담당자에게 가서 그런 봉사자나 봉사단체를 연결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날 이후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사실 그 전에는 장OO 어르신과 김OO 어르신이 집에 여름 이불 밖에 없는데 혹시 이불 후원 같은 게 들어오면 하나 줄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 전했었다. "그런 건 겨울이 되어봐야 해요. 후원이나 기부는 그때그때 달라서요." 나는 실망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거지 하면서 이해했다. 그렇지만 겨울이 와서 춥기 전에 이불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구입해서 드렸다. 친구가 이불이 없다는데 기부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비싸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행사하는 제품이 있어서 사 드렸는데 그 허접한 선물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저렇게 간절한 것이었다면 좀 더 좋은 걸 살걸 그랬다. 그나마도 내가 샀다고 하면 나 역시도 없는 살림인데 혹시 자꾸 기대게 될까 봐 내가 다니는 성당 사회복지회에 남는 게 있어서 얻어왔다고 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새 친구들은 나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부담을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굳이 불편한 것, 어려운 것이 없냐고 자꾸 캐물으니까 대답한 것이다. 그저 잠시 이야기할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번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은 거다.


어찌 되었든 나도 사람인지라 복지관의 입장에서 내가 그냥 반찬 전달자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 없다. 반찬 배달의 목표가 그들이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당신들의 친구가 될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말고 의지를 잃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자가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에게는 그 일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마음에 담을 여유는 강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가도 잃어버리기도 하는 거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더랬다. 20대의 젊은 여성에게 고난에 빠져있는 여러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직업이거나 말거나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그 직업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을 특별히 아름답게 보는 그 자체는 부담일 수 있다. 예전에 아내가 그렇게 대답했었다. 아내는 장애아동 전문 어린이집의 교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동료 교사들에게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랑을 기대했는데 자신들은 그런 거룩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들은 그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기대된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비친다고 해서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길. 사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부담을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돌아보지 못하는 곳에는 당신들의 손길이 있고, 나로서는 일주일에 세 시간만 새 친구들을 만날 핑계가 되어 주어 고마운 거다. 조금만 욕심을 기대하자면 나에게 반찬 택배보다는 외로운 그분들에게 기분 좋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바라고 기대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나의 사소한 시간이 그분들에게도, 직장 생활 중인 당신들에게도 더 유익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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