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벨리,모든 순간의 물리학/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by 마니피캇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2016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2018

마블 영화의 영향으로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론)의 인기가 높다. 멀티버스의 근거가 되는 물리학 이론은 '끈이론'이라는 것인데, 끈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원리와 양자역학 사이의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백 년이 넘도록 찾고 있는 비밀에 관한 여러 이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끈이론의 학술적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럴 능력도 없지만) 아직 이론일 뿐 확정된 과학적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중우주라는 개념이 워낙 흥미롭고 우리 직관으로 상상하기도 쉬우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이 두 책은 끈이론이 대세가 된 요즘의 분위기에 조금 불만이 있어 보이는 카를로 로벨리 교수의 베스트셀러 교양물리 도서다. 로벨리 교수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루프양자중력이론'도 끈이론과 마찬가지로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학설 중 하나다. 상대원리와 양자역학이 모순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는데, 그걸 해결하려는 루프양자이론이니 끈이론이니 하는 것들이 세상에 있단다. 솔직히 상대원리와 양자역학에 관해 이렇게 많은 텍스트를 읽은 자체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얇은 책인데도 무진장 읽기 힘들었다. 어휘나 표현이 낯설어서 읽어도 읽히지 않는 난독 비슷한 상태. 나만 그런가?


최근 로벨리 교수의 책이 연달아 국내에 출판되면서 루프양자중력이론도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책을 소개하면서 루프양자중력이론을 이야기할까, 상대원리와 양자역학부터 이야기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무의미한 고민이다. 내가 어느 것도 설명할 능력이 안된다.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카를로 로벨리를 계기로 관련된 물리학 책 몇 권 읽었더니 이제 읽는 속도가 아주 조금 개선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문득 내가 책 편식이 심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께서 "통섭적 공부"라는 용어를 썼는데, 여러 학문이 머릿속에서 서로 기대고 통해야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도 강제로 통섭적 공부로 이끈다. 물리학자이면서 철학자이고, 시인 같은 표현력과 세밀한 역사 지식에 깜짝 놀란다. 물리학을 이해하는데 철학과 예술의 통섭까지 필요하다니 의아할 수도 있지만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 그런 것이다. 반대로 인문학도 자연과학의 통섭을 받아들여야 진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조금 알고 하늘을 보니 정말 내가 달라진 것 같다. 뭔가 통섭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 공간은 중력에 의해 물결처럼 휘고, 시간과 공간은 같은 것이며, 따라서 시간도 공간처럼 휘고 출렁인다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중력이 당기는 힘인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중력은 당기는 힘이 아니라 자기장처럼 주변 공간을 물결치게 하는 곡선의 힘이다. 그래서 우주 공간은 곡선이다. 지구는 태양의 인력에 이끌려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만든 중력장의 휜 공간 위를 직진하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달은 지구의 중력장에 놓여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 년도 더 이전에 아인슈타인 할배가 정리해둔 것을 이제야 조금 알다니. 나는 21세기를 사는 19세기 인간이었다. 우주의 어떤 조건과도 상관없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일정하고 독립적이며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공간의 엔트로피 증가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고립된 공간'의 엔트로피 증가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표식이거나 정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공간의 변화가 곧 시간이다. 중력은 특정한 영역의 장을 만들어 공간을 휘게 만드는데 휘어진 공간은 시간도 휘어지게 한다. 엄밀히 말해 공간이 시간을 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공간이 휘면 시간도 휘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감각적, 인지적 한계는 시공간의 진실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블랙홀과 같은 극단적 중력이 만드는 시간 흐름의 차이나, 인공위성과 GPS의 시간 차이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시간의 존재가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지식과 일상생활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우주에 양자적 무엇인가가 가득 차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우주는 비어있는 것 같지만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슬처럼, 그물처럼 사방팔방 십육방으로 엮여 있는 루프양자가 가득하다는 가설이다. 중력장은 루프양자의 물결이다. 우리 직관으로는 우주를 바다에 비유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양자의 세계는 인간이 감각하는 세계와 굉장히 다르다. 전자는 순간이동을 하고 여기에도 있고 동시에 저기에도 있다. 우리 눈에 물질은 원자가 빈틈없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원자의 핵만큼 작아져 세상을 본다면 이웃한 원자핵과 나와의 거리는 별과 별 사이만큼 아득하다. 그래서 우주 공간에 루프양자가 가득하지만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워낙 간격이 넓어서 그대로 통과한다. 단단한 대리석도 원자 크기만큼 작아져서 본다면 구름을 통과하듯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은 모순이 생긴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거시 세계를 직관하기 어렵고 거시 세계에서는 양자 세계를 직관하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말이다. 가까이 자세히만 보는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만 보는 사람은 같은 주제를 두고도 서로 이해할 수 없어서 충돌을 겪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 의지대로 굴러가게 하는 거대한 권력이 있다는 착각에 잘 빠진다. 어떤 큰 권력이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음모까지 치밀한 계획으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상상을 무의식 중에 한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 구성원 개개인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은 실재하지 못한다. 이렇게 개별 존재들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모습은 전자가 무작위로 '양자 도약'하는 모습을 닮았다. 미시세계와 거시 세계가 프랙탈 구조(부분과 전체의 유사성)로 되어 있다는 물리학 발견이 인간의 사회현상에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사실 우리 인간의 몸도 결국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양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존재이므로 비논리적 사회가 논리적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카오스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의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인데 슬쩍 끼워보았다. 맥락을 조금 깨는 것도 같지만 그냥 두련다.)


학문적 통섭은 이런 수준이 아니겠지만, 최재천 교수의 말씀처럼 교양도 통섭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학술적으로 깊게 접근할 수는 없으니까. 교양의 통섭은 우리의 가치관에 영향을 줄 것이다. 넓게 생각하도록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했다. '지구에서는 달이 한 쪽 면만 보이니 우리는 영영 달의 뒷모습을 알 수 없다.' 인간관계를 두고 했던 말로 알고 있지만 조금 응용해보겠다. 쇼펜하우어는 우주선을 상상하지 못해서 그렇게만 말했을 테다. 지금이라면 '우주선을 타고 뒤로 돌아가는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달의 뒷모습을 알 수 없다.'라고 했을 것이다. 독서는 우주선을 타는 것과 같다. 머릿속에서 크고 작은 통섭을 일으키고 우리 처지를 더 넓은 시야로 보게 해 준다. 달의 뒤로 날아가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모른다.


책 소개는 안 하고 엉뚱한 얘기로 자꾸 빠졌다. 그러나 꽤 후련하다. 그만큼 놀라움이 컸고 내 머리가 받은 통섭도 컸던 책이었다. 우주와 세상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알아보게 해 주는 물리학은 우주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필수 교양이 되어야 한다. 방정식은 아직 두렵지만.. 복잡한 방정식을 꼭 풀 필요까지는 없으니 부담 없이 빠져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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