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마시기로 했습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한참 고생하고 있을 때 병원에 가니 처방전과 함께 피해야 할 음식을 알려주셨는데 밀가루, 튀긴 음식, 커피 등은 최대한 멀리하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 단골 멘트?!) 소화 안 되는 밀가루는 밤에 먹지 말라는 둥 다이어트 최대의 적은 밀가루라는 둥. 정말 밀가루는 피하고 또 피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방송을 보니 밀가루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고 하더라. 국수보다는 파스타가 낫다고요?
적당히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니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적당히’라는 게 자기 몸 상태, 노동 강도, 나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적당히 섭취하는 게 쉽지 않다. 건강 염려증까지는 아니지만 몸을 챙기는 축에 속하는 나는 기왕이면 좋은 탄수화물을 먹으려 한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GI(Glycemic Index), 다시 말해 혈당지수다. 혈당지수란 어떤 음식을 섭취한 후에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를 0~100으로 표시한 것이다.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혈당이 확 올라서 인슐린이 마구 분비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 몸속 혈당은 다시 낮아진다. 그다음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체지방이 쌓이고 살이 찌기 쉽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흰 쌀밥은 무조건 피하라고 하던데 그게 다 혈당지수 때문이었나? 건강한 식단에는 흰 쌀밥이 아니라 잡곡밥이 나오더라. GI 수치 100을 기준으로 55 이하이면 낮은 것이고 56~69는 보통 그리고 70이 넘으면 높은 것이다. 기왕이면 GI 수치가 낮은 음식, 즉 혈당이 천천히 올라가는 음식을 먹는 게 좋겠죠? 그래서 흰 빵보다는 통밀빵,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이라고 하나보다. 찾아보니 100g 기준으로 쌀밥이 92인데 보리밥이 66, 현미가 56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밀가루 음식인 파스타와 국수를 찾아보니 파스타는 혈당수치가 낮고 국수는 높았다. 왜? 파스타의 주원료는 듀럼밀(durum wheat)인데 탄수화물 비중이 높지 않고 단백질과 식이 섬유 함유량이 많아 GI 지수가 낮다고 한다. 반면에 국수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소면은 듀럼밀보다는 혈당지수가 높다. 단순히 비교하면 파스타 승! 그러나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소스와 첨가하는 다른 식재료다. 혈당지수가 낮은 채소와 해산물은 넣은 오일 파스타라면 모를까 크림 파스타나 베이컨, 미트볼을 넣은 파스타는 어떨지 감이 오죠? 또, 국수를 곤약, 두부나 현미 등으로 만든 면으로 만들어 먹으면 파스타 못지않은 낮은 혈당지수로 즐길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국수는 호로록 먹을 수 있는데 파스타는 면 식감이 국수에 비해 단단해 좀 더 천천히 먹게 되는 면도 있네.)
GI 지수는 100g 기준으로 수치화한 것이니 실제 섭취하는 양, 조리 방법, 칼로리 등도 고려해야 진정한(?) 건강한 식단이라 할 수 있다. 칼로리만 보자면 동일한 양을 기준으로 파스타는 흰 쌀밥과 유사하지만 파스타 면을 삶으면 칼로리가 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그렇다고 주야장천 파스타만 먹을 건 아니죠? 파스타가 비교적 건강한 식단이라는 것이지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동일한 식재료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GI 지수가 달라질 수 있다. 가끔 고구마나 감자를 찌거나 구워서 먹는데 튀기면 GI 지수가 낮아진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차근차근 따져보면 일단 감자가 고구마보다는 칼로리가 훨씬 낮지만, GI 지수가 90 정도라 높다. 그러니 칼로리만 따져 체중을 줄이려고 감자를 선택한다면 실제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감자를 찌거나 구우면 GI 지수가 높아지는데 (찌면 90~, 구우면 70~) 기름으로 튀거나 부치면 낮아진다. (튀기면 40~, 부치면 25~) 기름 성분이 감자가 소화되고 우리 몸에 흡수되는 것을 늦추기에 혈당이 빠르게 오르지 않는다. 여기까지 듣고 맥도날드에 감자튀김 사러 달려갈 뻔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전 국민이 아는 튀긴 음식은 칼로리가 높고 혈관 질환에도 안 좋고 기타 등등.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니 채소만 먹어야 하나 싶다가 그러면 또 영양 불균형으로 몸이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급기야 다 따져서 뭐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뭐 먹지?
*<마시자 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