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와인취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duwinetasting Apr 26. 2020

샴페인 마시다가 문득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누군가 물었다.

'어떤 와인이 제일 좋아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샴페인이요.'


소주, 맥주, 막걸리, 보드카 등 술이 있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 내가 있는 자리에 술이 있기도 했고. 술을 좋아한 건지 술자리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술 한잔 기울이며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순간은 내겐 쉼표였다. 다양한 술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내가 어쩌다 와인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와인은 분명 내 인생에 쉼표 역할을 한다.


처음 와인을 마셨을 때가 기억난다.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병을 시켰는데 첫맛은 달콤했는데 끝 맛은 떫었다. 와인은 이런 맛으로 마시는 줄 알았고 생각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두어 잔 마시니 알딸딸한 느낌이 들었다. 쉬라즈 (shiraz) 품종으로만 기억하는데 나보다 와인을 잘 아는 상대는 레드 와인은 이런 맛이 나는 게 좋은 거라고 했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비싼 걸로 봐서는 좋은 거 같기도 했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와인을 홀짝거리게 되었을 때는 복잡한 와인 체계를 배우기보다는 그저 즐기기로 했다. 해외여행을 가서 와인을 추천받아 마시기도 했고 백화점 와인 코너를 서성이며 할인하는 와인을 사다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미국 비벌리 힐즈에 있는 어느 호텔 테라스에 앉았다가 얼떨결에 마신 샴페인이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와인 자체가 좋아지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와인 관련 서적도 읽어보고 구글링도 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테이스팅 노트도 작성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샴페인은 나의 최애 와인이다. 나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샴페인 한 병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맛있을 수밖에 없다. 샴페인이 되려면 몇 가지 기준을 꼭 지켜야 한다. 보통 9~10월에 수확한 포도를 압착하여 즙을 내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압착한 포도만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 압착하는 포도는 뀌베 (cuvee)라 불리며 뀌베만으로 샴페인을 만들 수도 있고 두 번째 압착한 포도즙과 블랜딩 할 수도 있다. 그다음에는 효모와 당분을 넣어 1차 발효를 한다. 그러면 포도즙이 알코올이 들어간 와인으로 변화되고 이때 생성된 탄산가스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샴페인의 모습은 아니다. 


와인 양조기술이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블랜딩 (blending)이다. 샴페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포도 품종인 샤도네이 (chardonnay), 피노누아 (pinot noir) 그리고 피노 뫼니에 (pinot meunier)의 비율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하는 거다. 물론 샤도네이 (100%)만으로도 샴페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블랑 드 블랑 (blanc de blancs)이라고 표기하면 되는 거다. 어디서 자란 포도를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샴페인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원재료이기에 해당 빈야드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포도 수확 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런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해에 수확한 포도만 사용할지 아니면 지난해에 수확한 포도와 섞을 것인지에 따라 빈티지 (vintage)와 논빈티지 (non-vintage) 와인이 되는 거다. 


샴페인을 마시다 문득 이런 게 왜 중요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사실 몰라도 된다. 그저 좋아하는 거에 대한 호기심이 공부로 이어진 거뿐이니깐.


1차 발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차 발효를 해야 한다. 효모와 설탕을 섞어 넣은 뒤 임시 병마개로 와인 병을 막는다. 1차 발효 때와 달리 탄산가스는 날아가지 않고 병 속에 남는다. 이때, 병 속에 효모 찌꺼기가 생기는데 이를 그대로 두고 숙성을 한다. 샴페인은 숙성되면서 여러 가지 향과 맛을 낸다. 그러니 숙성기간도 중요하다. 병 속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리들링 (riddling)을 한다. 와인 병을 꼽을 수 있는 구멍 난 경사진 랙에 와인을 집어넣고 조금씩 매일 회전시켜주면 병목 부분에 찌꺼기가 모인다. 수작업으로 병으로 돌리기도 하고 (riddler가 병을 정기적으로 회전시켜준다) 이를 기계가 대신하기도 한다. 찌꺼기가 다 모이면 병목 부위를 얼려서 임시 마개를 제거하게 되는데 그러면 병 속 탄산가스에 의해 찌꺼기가 펑하고 밀려 나온다. 이를 데고르주망 (disgorgement)라 한다. 이때 와인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와인을 보충하고 설탕을 넣어 당도를 맞춘다. 그러면 달콤한 샴페인 (sec) 또는 드라이한 샴페인 (brut)이 되는 거다. 마지막으로 임시 마개 대신 코르크와 뮈즐레 (muselet, 코르크를 감싸는 철사)로 병을 닫고 샴페인 레이블을 붙이면 끝!


위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모두 거치고 몇 년의 숙성과정을 견디고 나면 샴페인이 되는 거다.


알고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I go to bed with a few drops of Chanel No.5 and I wake up each morning to a glass of Piper-Heidsieck; it warms me up."  - Marilyn Monroe

아침을 샴페인 한 잔과 함께 한 메릴린 먼로.


그녀만큼 나도 샴페인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딱 한 잔이 생각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