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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곰 Jan 03. 2020

어머님, 저는 새벽반이에요.

“그래, 요즘에 아기는 밤에 잘 자니?” 

시댁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어머님께서 남편에게 묻는다.

“아기가 울고 난리도 아니에요, 두세시간에 한번씩 깬다니까요”

“오늘도 낮에 계속 잤는데 안 자면 어떡하니~” 

“아유, 그러니까요~~낮에 안자야 밤에 잘 자지~아유, 좀 자라!”

밤에 안자고 우는 아기에게 면박을 주는 남편이 괜시리 얄미웠다.

“어머님, 새벽반은 제가 하니까 괜찮아요, 오빠는 밤에 잘 자자나~, 평일에는 제가 새벽에 보고 주말에 가끔 오빠가 가끔 도와줘요”

아기가 태어난 이후 우리의 일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말 밤, 함께 무엇을 한다기보다는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방법대로 평일에 하지 못한 것들을 해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특히, 평일에 아가와 종일 함께 하고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나로선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기도 하고 못본 방송 프로그램 시청, 책읽기...야밤에 나가 심야영화라도 보고 싶지만 외출만큼 달콤한 집에서의 휴식을 만끽하곤 했다.

하지만, 평일에도 주말에도 새벽에 깨지 않고 잠드는 남편이 밉기도 하고 새벽에 깨서 무엇을 하진 않으며 아기에게 면박을 주는 남편이 얄미워 어머님께 나는 새벽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방법이 없었다.

조리원에서 처음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애기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아도 몰라도 달래는데 한참이 걸려 새벽 내내 아가와 텅빈 거실에서 졸면서 수유를 하곤 했다.

아기 때 나의 잠버릇 때문에 나를 포대기에 업혀 이불에 눕지도 못하고 살짝 앉아서 잠들었다는 친정엄마의 말을 위로삼아 견딜 뿐이었다.

이제 아기가 백일이 지난 지금은 한번씩 ‘으앙’ 울며 배고픔을 표현하는 소리에 깨긴 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좋아진 컨디션으로 지낼 수 있다.

나는 아기가 울면 즉각 일어나 왜 우는지 확인이 가능하고 대처할 수 있는 새벽반 엄마가 되었다.

아기와 나는 새벽반 동지, 내가 아기에게 수유를 하면 아기는 이내 깊이 잠들어 싱긋 싱긋 웃으며 기분 좋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제서야 나는 내 할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잠이 든다.

가끔은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집안정리를 한다.

낮에는 아기가 있어 어지러워진 집안을 새벽에 혼자 청소하고 나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오빠, 나 엄청 부지런하지, 거실을 깨끗하게 치웠다고!”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곤했다,

아기가 백일이 되면 백일의 기적이라고 통잠을 잔다는데 통잠 만큼이나 신기한 건 눈을 마주치고 손가락을 꼬물 꼬물 움직이며 엄마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어젯밤 12시에도 나는 피곤하지만 모빌을 보고 소리를 깍깍 소리 지르는 내 아이를 보고 생각한 것이 아가는 지금 밤인 것은 알지만 12시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외출로 피곤한 나를 모르는 나를 모를테지... 

내가 내일 새벽에 일어나 외출해야하는 것은 모를테지...

아기가 나를 배려하지 못하는 것만큼 이렇게 밝고 사랑스러운 것처럼 나는 오늘도 아이를 위해 환하고 밝게 웃어준다.

그것이 아이의 태양이요, 아이의 미래가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더 밝게 표정도 더 밝게 웃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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