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염력은, 개봉 전부터 무척이나 기대했던 영화였다. 부산행을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보기도 했었고 출연진을 비롯해서 프리뷰가 나름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이건 당연히 봐야 해!’라는 무의식적인 확신에 사로잡혀 관람객 후기도 보지 않은 채, 믿고 예약을 했던 영화이다. 조조로 보려고 했던 영화인데 밤에 잠이 또 오지 않았던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어쩔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밤을 새운 채 관람객 후기를 찾아보고 말았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평이 안 좋은’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가 살펴본 염력의 평점들은 레전드 그 자체였다. 보통 영화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소위 1점 2점 테러와 함께 간혹 7,8점들도 종종 있는데 이것의 평점에는 1점과 2점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심지어 조조마저 아깝다며화와 울분 가득했던 평점들. 지금 생각에도 그 평점들을 확인하던 새벽의 순간이 너무나 눈에 선하고 머리가 아프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온갖 불신과 허무함, 실망감 등으로 가득 찬 나는 사실상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응? 생각보다, 최악은 아닌데??????
그런데 웬걸, 예상과는 달리 나는 영화 상영 내내 그리고 영화가 막을 내렸을 때까지도 이 영화를 꽤나 괜찮게 봤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염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환상 속에서나 이룰 수 있을 법한 소재이며 이것이 영화의 주 소재로 사용된 이상, 상상 너머의 액션들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것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비판 아닌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소재를 통해서야 만 드러낼 수 있었던 혹은 드러내고자 했던 영화 속 현실들을 가지고 결코 '유치' 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의 평점을 깎아내리며 '흥미' 로만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오늘날, 여전히 많은 소시민들이 처해 있는 지극히 일상적이며 씁쓸한 현실을 에둘러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염력을 희망 삼아 연습하고 있는 '석헌'(류승용)
딸, 루미(심은경)과 재회하게 된 석헌(류승용)
영화의 주인공이자 염력을 쓰는 장본인, 석헌(류승용)은 경비원 일을 하며 소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이어간다. 그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었지만 남편으로서 무능함이 컸던 관계로 이혼을 한 뒤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사고 사망 소식을 접한 뒤 딸, 루미(심은경)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석헌의 아내는 이혼 후, 딸과 함께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서 철거되어야 했고 아내는 이에 저항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아내의 죽음은 극 중에서 석헌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석헌의 이웃 주민들 또한 철거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딸과 자신을 둘러싼 바운더리를 지켜내고자 하는 석헌의 몸부림이 염력이라는 초능력의 발휘를 통해서 표출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쉬울 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극 중 석헌(류승용)에 압박을 가하던 실질적인 권력자, 민 사장(정유미)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개인에게는 일상을 뒤흔들 만큼 무자비한 사건들이 때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공권력혹은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 앞에서는 그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별것 아닌 일들로 전락해버리고 만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현실들이 비칠 때마다 내가 더 비참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서 사실상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없었던 아버지에게는 '염력'이라는 힘은 단지 초능력을 넘어 너무나 절실했던 초월적인 것 이상의 염원, 희망, 한 줄기의 빛 같은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염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을 둔 아버지가 한 번쯤은 끝까지 이뤄내고 싶었던, 지켜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간절함'과 '무력함' 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너무나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묶여 있는 발목을 어떻게 해도 도저히 풀 수가 없을 때 개인이 꿈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순간의 이야기들을 이 영화에서라도 대신 풀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평범성'에 대한 고찰과 이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여전히 비일비재하는 자본주의 내 반 윤리적, 반인간적인 문제들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평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듯이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비판받았던 부분인, 개연성이나 과도한 판타지적 요소 및 이것을 통한 실제 사건의 희화화 등의 논란이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작 의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한 번쯤 시청해보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영화가 끝난 뒤 , 지극히 평범한 자신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수조차 없는 일일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