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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나와, 당신과, 우리의 30대를 위한 정이현 작가의 선물


달콤한 나의 도시의 '정이현' 작가를 알게 된 것 또한 여느 날처럼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고서였다. 그의 책 번역을 바로 '정이현' 작가가 맡았기 때문이다.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쓰인 책('사랑의 기초'_한 남자)을 번역하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그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는 책 맨 뒤에 있는 알랭 드 보통 작가와 정이현 작가의 대화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였다. 사랑과 연애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 그녀는 알랭 드 보통이나 현실적이고 견고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나에게 외국식 사랑방식과 삶을 알려줬다면, 정이현 작가는 나에게 한국식 사랑방식과 삶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삶을 향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없는, 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나'를 맡고 있는 주인공 '오은수'는 32살의 평범한 편집대행사 대리이자 결혼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동시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의 연대기를 대표하고 있다. 이말인즉슨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주어진 '여성'의 운명을 가장 베이직하고 견고하게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하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뭐 하나 특출 난 것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못할 것도 없는 연애와 결혼 더 나아가 여성이 가장 신성화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는 잉태와 출산까지 요구받는 삶에 관한 것 말이다.


보통은 책을  읽으면 주인공의 행동이나 언어에 따른 이미지가 그려지는데 이상하게도 오은수의 이미지는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녀 스스로의 말을 빌리자면, '허리선을 끈으로 묶는 쥐색 정장 코트에 파시미나 머플러를 두른 30대 여자'였다. 오은수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 자체가 30대에 접어든 여느 여성들의 모습이 집약된 일종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아직 나는 서른 살은 아니지만 서른 살에 가 닿으려고 하는 과정에 놓여있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꽤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그래서 웃기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 그저 오은수를 응원할 뿐이었다.



출처 - pixabay

제대로 된 쓴소리를 못해서 틈만 나면 회사의 동네북으로 전락하기 일쑤였고 어느 날 인생에 훅 들어온 치명적인 매력의 연하남과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잔인한 현실 앞에서 내내 아파야 했다. 그 사이에 만난 지극히 잔잔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성과의 만남을 통해 결혼으로 나아가나 싶었다가 알고 보니 사기결혼을 할 뻔했던 사실에 또다시 아프기도 했으며 친구는 '끼리끼리'라고 했는가, 그녀의 인생만큼 바람 잘 날 없는 친구들의 인생을 일상의 한 부분처럼 위로해 주어야만 했다.


또, 평생을 가부장적인 남편 옆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꾸며보지 못했던 엄마의 가출사건은 안 그래도 다이내믹했던 오은수의 32살 한 부분을 가장 무겁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오빠는 영원히 모를, 엄마가 경험한 인생의 생체기들을 그녀는 오롯이 이해하고자 발버둥 쳤다. 엄마이기 전에 여전히 한 명의 여자였던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비슷한 연대기를 공유해 온 오은수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면 일, 사랑이면 사랑, 가족이면 가족, 친구면 친구, 다방면에서 오은수의 삶을 쥐고 흔드는 사건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쁜 일은 꼭 몰아서 생긴다는 사실에 의하면 오은수의 32살은 충분히 힘들고 슬프고 외로웠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33살의 오은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일종의 '통과의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이 인생이 듯 말이다.



사실 나는 서른이 되면 , 30 대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하는 줄로만 알았다. (사실상 연륜과 경험부족으로부터 오는 오만이었다. )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서른'하고도 3살이나 더 먹어도 바뀌는 것이라고는 나이의 앞자리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느낀 게 하나 더 있다. 일도, 연애도, 결혼도 뭐 하나 줄곧 제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이전보다는 덜 후회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나이가 30대라는 것이다. 20대만큼 즐거울 수도 밝을 수도 무책임할 수도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했던 오답들을 최소화할 수 있기에 힘들어도 영원히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을 통해 나와 당신과 우리들의 30 대는 퍽 괜찮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괜찮은 책'이란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 결말이 궁금해지게 하는 또는 책장을 덮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고 자꾸만 열어서 훔쳐보고 싶은 또는 내가 책과의 밀당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눈 떠보면 나의 일이 되어 있을 30대를 약간은 일찍 준비하는 차원에서 읽어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 사회에서 '서른 ’ 이라는 단어는 꽤나 큰 의미를 지닌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소설을 넘어 현실적인 위로와 힘이 되었다. 


물론 이 책이 쓰인 지 13년이 지났기 때문에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특히 젠더 감수성의 차원에 있어서 불편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 있어서 이것은 건강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박다정>의 이름으로 제가 참여한 공저시집입니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모두 다른 6명의 작가들이 6가지의 개성으로 엮어낸 사랑,청춘,인간관계,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쓴 시 입니다. 홈페이지에 대표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자유롭게 보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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