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 만렙이 1일1산책을 하기까지

산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게 해 줬고, 눈이 오면 세상의 차가움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바람이 불 때면 코 끝의 간지러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은 당장 한 줌의 볕조차도 느낄 수 없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나의 개의 주인이자 엄마로서 그에게 세상의 모든 색을 촉감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산책
하루종일이라도, 하릴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 이런 애의 산책을 어떻게 안 시킬 수가...jpg


그러다 산책의 '산'자만 꺼내도 이런 눈으로 쳐다보는 그 아이.. 불가피하게 산책을 못 나갈 경우에는 꺼내지도 못하게 된 금지어 '산책'..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개와 함께 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항목은 '산책'이다. 이것은 나의 경우에 비유를 하자면 하루의 일과를 마친 뒤에 고된 상태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의 시원함 혹은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을 보는 짜릿함의 느낌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정신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집 개는 산책만 나가면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냄새를 맡는다. 맨날 맡는 그 냄새가 그 냄새라 이제 질릴 법도 할 텐데 한 번은 꽃에 코를 대기도 하고 또 한 번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 위에 코를 대기도 하고 그러다 지겨우면 시멘트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말이다. 일종의 '노즈 워크' 활동이 산책 시에 전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즈 워크'란 강아지들이 코를 사용해서 하는 모든 활동이다. 이들은 사람과는 다르게 50% 이상을 후각에 의지하는 만큼 코를 통해서 주변과 소통하는 존재다. 따라서 활발한 후각 활동이 매우 중요하며 산책은 그 중요성의 베이스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리 걷고 저리 뛰다 보면 다양한 강아지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일종의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과정이 된다. 다른 개들이 배설한 흔적들을 찾아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개를 볼 때면 늘 내가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불과 몇달 전만해도 나는 산책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중요성만큼 산책을 시켜주지 못했다.


때로는 합리화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일주일에 네 번 정도면, 절반은 넘으니까 그래도 훌륭한 거야!', '오늘은 내가 너무 피곤하니까 하루 쉴 수도 있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루하루 그렇게 넘기다 보면 주인으로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책임해져 갔다. 나는 두 발로 자유롭게 집을 나섰다가 들어왔다가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개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십 번 외출을 하는 그 순간마다 개는 늘 발이 묶여 있다. 어쩌면 나가려고 준비를 할 때부터 그들은 외로울 것이다. 우리 집 개만 봐도 나갈 일이 있을 때면 어찌나 주변을 맴돌고 있는지, 내 스케줄을 꿰뚫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심심해하다가 주인이 나가면 한 구석에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한다. 위치가 조금씩 다를 뿐 결국 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집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생각이 나를 강하게 스쳐갔고 그 이후부터 나는 시간이 '돼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서' 복곤이와 산책하려 노력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7번을 꼬박꼬박 시켜주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허리가 아파도, 근육통이 왔어도, 숙취가 있어도, 이유 없이 귀찮아도 그건 내 사정일 뿐 나는 주인으로서 개를 행복하게 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나는 워낙에 귀차니즘이 강한 성격이라 별 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고 일주일을 집에서 버틸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매일매일을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한다는 것 자체는 실로 또 다른 인간의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산책을 나가자!'라고 의식적으로 다짐하지 않아도 내 몸이 앞서 복곤이의 줄을 잡고 밖을 향할 정도이다. 복곤이를 위해서 했던 산책이 이제는 나의 취미가 되었다.


즉 반려견과의 산책은 반려견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인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아무 일 없을 때 산책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던 내가 그저 화창한 날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즐겨하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한껏 들떠 있는 복곤이와 나란히 걸으며 그의 촐싹거림을 볼 때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여기에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은 덤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나의 개의 산책의 역사는

함께 한 사계절이 여섯 번째를 향해 가고 있을 만큼

겹겹이 그리고 견고하게 구축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반려 주인이자 엄마로서 세상을 향한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 또한 바람의 여유 정도는 느낄 틈을 반드시 줘야만 한다. 하루에 10분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오늘 밤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건강함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만약 하루의 10분조차 개에게 투자할 수 없다면 그건 투자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이 없다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함께 할 자격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반려견을 키우고자 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산책'도 힘들 것 같다면 사실상 개와 주인이 될 누군가가 서로를 위해서라도 함께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감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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