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의 이원하 시인이 전하는 사랑고백
Jung's Saying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상대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을, 하나씩 되짚게 하는 이원하의 산문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무해한 그녀의 사랑만큼은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다
95p. 그를 먼저 좋아한 이유로 나는 약자로 살아도 된다고 찬바람이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106p. 그를 위해 시인도 됐는데 배우쯤이야 가능했을 테니까요. 배우가 되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만나러 갔겠죠. 그리고 직업만 다른 채로, 지금처럼 살고 있겠죠.
147p.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 같아요. 나보다 아름다워요.
215p. 당신은 부다페스트를 거부할 수 없을 거예요. 이제부터는 당신이 나에게 이끌릴 거예요.
이 책으로 말하자면 문학동네시인선시리즈135인 '이원하' 시인의 시집이 나왔을 때 시집을 사면서 함께 구매했던 책이다. 우선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이라는 제목에서 심상치 않은 이끌림을 느꼈고 불그스름하게 물든 뺨을 닮은, 책의 표지 또한 인상 깊었다.
저자는 아무래도 지독한 짝사랑 중에 놓여 있는 듯해 보였다. 아니 놓여 있다. 이 책에서는, '그'라고 지칭하는 상대가 아주 자주 나오는데 과장 조금 보태어 매 장마다 그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저자가 머무는 제주에서 함께 하다가도 어느 순간 말도 없이 불쑥 떠나버리기도 하고, 다정하게 잘해주다가도 무심한 태도로 세상 관심 없는 척하기도 한다. 저자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답변은커녕 마음에 들었다가, 놨다가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의기소침해질 만하지만 그런데도 저자는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제주의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며 칭얼대기도 하고, 자신과 놀러 가자고 붙잡기도 하며 시간을 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를 곁에 두면 온종일 자신의 가슴에 멍만 든다는 사람, 그런데도 지치지 않는 걸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의료 기술은 사랑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 그녀는 때로는 명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능청스럽기도 하며 때로는 단호한 태도로 사랑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쩌면 산문집의 형태를 한 214p의 러브레터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했으면 행복했던 대로, 불안했으면 불안했던 대로, 슬펐으면 슬펐던 대로, '그'를 사랑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온전히 담아 엮은 책. '꽃'이라는 주인공 자리를 본인이 아닌 '그'에게 기어코 내주고 말겠다는 저자의 마음은 이 책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무해하고 결연하다.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왠지 사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동시에 그녀의 사랑이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기를 매 순간 조용히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