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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광고가 아닌 이야기에 반응한다

‘광고의 시대가 끝나고, 이야기의 시대가 왔다.’

나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래, 이 맛이야.'

15초짜리 TV 광고 하나가 전국을 들썩이게 하던 시대였다. 유명 연예인이 웃으며 한마디 던지면, 그 브랜드는 다음 날 매출이 치솟았다. 우리는 그것을 '마케팅의 정답'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고를 건너뛰었고, 그 자리를 콘텐츠가 채웠다.


광고의 전성기가 저문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소비자가 똑똑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카피 한 줄에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브랜드의 방향성, 지속성, 진정성을 본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이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도구'가 되었다.


둘째, 플랫폼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SNS는 시간의 제약을 없앴다. 브랜드는 더 이상 30초 안에 모든 걸 우겨 넣지 않아도 됐다. 대신 3분, 10분, 심지어 30분짜리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 사람들이 '광고의 목적'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이 브랜드는 내게 뭔가 팔려고 하는구나.' 그 순간 마음의 문이 닫혔다. 하지만 이야기는 달랐다. 이야기는 팔지 않았다. 공감을 전했다.'


2019년, 나는 SK텔레콤의 디지털 브랜드 캠페인 〈동물 없는 동물원〉을 담당했다. 5G 기술을 홍보하는 캠페인이었지만, 우리는 단순한 광고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사람들은 기술 스펙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 기술이 만드는 세상에 감동한다.'


우리는 5G 속도를 말하는 대신, 멸종위기 동물 이야기를 했다. AR·VR 기술로 '가상 동물원'을 만들어, 우리에 갇힌 동물 대신 기술로 만난다는 철학을 담았다. 그리고 WWF(세계자연기금)와 함께 '기부 챌린지'를 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2만 3천명이 넘는 참여자, 그리고 수많은 셀럽들의 적극적 참여.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건 광고가 아니라 공감이에요.'라는 반응들을 남겼다.


댓글 중 하나가 지금도 기억난다.

'SKT는 항상 사회가 무엇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일하는 기업인 것 같아요 최근 문제가 되었던 동물원의 문제점들을 너무 멋있게, 그것도 기업의 기술력을 홍보하는 동시에 보여주네요'

그 댓글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맞다. 우리는 5G를 팔지 않았다. 세상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진심을 알아봤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사람들은 광고를 피하지만, 이야기는 받아들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YDTcW4zZn3c


이제 기업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로 세상과 소통한다. 브랜드는 더 이상 '홍보비의 소비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생산자'다. 그들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온드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이제 브랜드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의 '행동'을 본다. 그리고 그 행동이 콘텐츠가 될 때, 신뢰가 만들어진다. 〈동물 없는 동물원〉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가 '진짜로' 동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미디어다.'

이제 모든 브랜드는 세상과 대화하는 하나의 미디어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광고의 힘을 의심하지만, 이야기의 힘만큼은 믿는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프로젝트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건 광고인가, 이야기인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당신도 지금 만들고 있는 콘텐츠에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만약 광고라는 답이 나온다면, 멈춰라. 그리고 다시 물어라. '이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이 만드는 변화를, 스펙이 아니라 그 스펙이 해결하는 문제를,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가 믿는 가치를 말하라.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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