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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Jan 02. 2020

[도서] 윤진서, 그녀의 인생을 살다.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 윤진서 산문집




[Prologue]     


내 귀에 들리는 게 많았으면 좋겠고, 내 눈에 보이는 게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채워서 가는 인생이고 싶다. 세상이 좋다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작은 것도 잘 찾아내어 쉽게 감동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스치는 게 많아 가슴에 자국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윤진서



연예인을 그렇게 유별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윤진서라는 배우를  배우일 때보다 작가로서 더 좋아한다. 윤진서라는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윤진서’라는 이름이 이를테면, 정진서 이거나 박진서, 김진서 같은 이름이었다면, '윤진서'라는 이름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가 작가로서 이 세상에 내놓은 책이 벌써 세 권이다. 물론 나는 이 세 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고, 특히 그녀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책 <너에게 여름을 보낸다>는 아껴서 두고두고 읽고 있다.


가끔 그녀의 SNS를 볼 때면, 요가와 서핑, 자연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삶을 누리는 듯 보인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요가에 대한 붐이 일기 전이었으니, 이미 그때부터 윤진서 그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탐구하며 어떻게 하면 본인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녀가 가장 처음 썼던 <비브르 사 비>라는 책은 윤진서,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꾸밈도 없이 담백하다. 가끔은 담백하다 못해 서늘한 듯한 글귀도 보인다. 사실 나는 수필이나, 산문집 부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이러한 종류의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를테면, 무언가 조금 과한 표현들이 뭔가 반감을 더해서 그 이상 읽히지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 부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이 책은 작고 앙증맞은 디자인 자체가 너무 소장하고 싶게끔 생겨서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읽으려 구매한 책이었다. <비브르 사 비>라는 제목이 독특해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삶을 살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후에 이 책에 관해 찾아봤을 때, 이와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태생의 스위스 영화감독 고다르의 1962년 작품인 <비브르 사 비>라는 영화 제목에서 차용한 이름이었는데, 영화의 내용 역시 여주인공이 자신의 꿈과 현실에 관한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고, 윤진서 그녀 역시 <비브르 사 비>라는 제목 아래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 부분에서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의 내용은 크게 특별할 것 없이 윤진서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하고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영화배우로 데뷔하기 이전의 이야기, 오디션을 보러 갔던 일, 고2 때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물음을 가지게 됐던 일, 사랑한 연인과의 일방적 이별, 촬영 중의 에피소드, 가족과의 이별, 인생에서 용기가 필요할 때에 관한 자세 같은 것에 대하여 그녀만의 솔직한 언어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차분히 써 내려간다.


그리고 중간마다 어딘가 끄적여 놓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다.


시험과 성적, 이성 친구로 고민하는 또래들과 달리 나는 보다 근본적인 고독과 사투를 벌였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가정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이를 대신할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 세계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영화야말로 내게 새로운 안식처가 되리라는 것만은 더욱 분명해졌다. 영화의 세상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한 편의 세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고, 쉼 없이 영화를 봤다. P30

낯선 곳에서의 만남, 새로운 경험들은 나를 자유롭게 했고, 나는 그 시간에 흠뻑 취했다.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두고 ‘자유인’이라 불렀고, 그것은 마치 나의 새로운 이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자유롭고, 생각과 관념에서 벗어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인생을 그려가는 자유인이 되리라고 다짐했다. P41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특별함을 좇는 동안 평범함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평범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건데 말이다. P52

외로워서가 아니라, 잊히기 때문에 슬픈 인생 P84

“지금 네 꿈은 뭔데?”
“죽는 순간까지 내 안의 나를 다 발견하고 가는 것." P115

밤이 되면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다. 불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차례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밤이 다하도록, 아침 따위 오지 않기를 바라며. 아니, 오더라도 우리만은 비켜가기를 기독하며. 해가 뜨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겠지. 너는 파리로, 나는 서울로, 미래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릴 만큼 지나간 시간은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P136-137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대체 누가 말했던가. 여자의 친구는 여자일 수밖에 없는데.
20년지기 친구가 그리운밤에 P139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영화를 보거나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수많은 잡념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돈, 실수 혹은 맛있는 것들 P161

잘 차려진 값비싼 음식보다 정성 가득한 엄마요리를 먹는 게 좋다. 기계음 가득한 음악보다 따뜻한 사람의 연주가 좋다. 눈을 혹사시키는 현란한 영화보다 공감 가는 대사 한 마디가 들리면 그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왜 연기를 잘하려고만 했을까. 그저 감정에 충실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참 바보같은 배우였구나. P173


그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어릴 적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의 사랑 대신 혼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해준 이가 하루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통해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재즈를 찾아 듣게 되었고, 평소에도 어렵지 않게 혼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다 먹은 후에 밀려드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대처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하니, 조금 슬픈 얘기지만 그녀가 배우로서 다양한 감정 중에 결핍에 관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롭다는 건 때때로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말해 준 사람도 그였다. P19

"넌 하루키가 왜 좋아?"
"그는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어.
난 아버지랑 같이 살지 못해서 그런 걸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거든."
"그런 걸 아버지에게 배우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 순간 진심으로 나는 하루키와 그의 주인공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너무도 외롭게 살았으리라. 스스로 외롭고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 여겨왔는데, 비로소 나는 그 같은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21


그녀의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해변의 로망”이다. 이것은 아마 나 역시 바다를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촬영이 없는 여름이 되면 그녀는 바다와 태양의 계절이 끝날 때까지 스페인 바다를 향한다. 그 안에서 그간에 비교조차 되지 않는 태양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그동안의 바쁨과 일상의 지침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그녀가 일 년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나큰 원동력을 선사한다고 한다. 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안이 있다. 약간의 모호한 우주원리와 같은 설명이라고 해야 하나.


낯선 곳으로 떠났을 때, 그동안 내가 해왔던 고민거리들이 생각지도 않게 숨 쉬는 공기처럼 가벼워져 심각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아무것도 아닌 양 자연스레 그것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용기를 쥐어짜 낸 행위에 대한 여행이 주는 선물인 듯하다. 그녀가 이국적인 바다를 보며 느끼는 위안들이 나는 그것과 비슷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변은 이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우며 분위기가 좋다. 가끔 새들만이 지나가는 푸른 하늘 아래서 태잉을 하며 여유와 낭만을 누리는 시간. 겨울이 오면 지금 이 순간 내 몸 속에 저장해둔 태양열을 에너지 삼아 살아갈 것이다. P75


여느 에세이처럼 그녀의 이야기에는 늘 그녀가 찍은 사진이 함께 한다. 더욱 특별한 것은 모두 흑백사진이다. 마치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흑백필름처럼 그녀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난 더 그녀다운 이 책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왠지 흑백이 더 잘 어울린다.






윤진서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냥 무언가에 등 떠밀려 연기하는 배우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고, 연기를 왜 좋아하는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감정을 순환시키려 한다. 수용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는 탄식을 표출하려 하고, 스스로 호흡하는 법을 깨우치려 자신에게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노력한다.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해도, 또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 그녀의 취미 생활은 끝이 없다. 틈만 나면 좋아하는 바다를 찾아가고 수영과 요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글을 쓴다.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별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연속적인 고찰에 관하여 싫증 내지 않는다. 책 속에 이어진 대화처럼 정말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한 탐구생활을 이어갈 것만 같아서, 말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가 평범한 여배우가 아닌 윤진서라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오롯이 홀로 인생을 탐구하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더 풍요로운 삶을 이야기하길 기대한다. 2019년 올해가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며 나 역시 내 삶, 내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묵묵히 내 시간을 견디며 그 안에서 기꺼이 즐겁게 순환하고자 한다.Vivre s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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