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 윤진서 산문집
시험과 성적, 이성 친구로 고민하는 또래들과 달리 나는 보다 근본적인 고독과 사투를 벌였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가정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이를 대신할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 세계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영화야말로 내게 새로운 안식처가 되리라는 것만은 더욱 분명해졌다. 영화의 세상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한 편의 세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고, 쉼 없이 영화를 봤다. P30
낯선 곳에서의 만남, 새로운 경험들은 나를 자유롭게 했고, 나는 그 시간에 흠뻑 취했다.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두고 ‘자유인’이라 불렀고, 그것은 마치 나의 새로운 이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자유롭고, 생각과 관념에서 벗어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인생을 그려가는 자유인이 되리라고 다짐했다. P41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특별함을 좇는 동안 평범함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평범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건데 말이다. P52
외로워서가 아니라, 잊히기 때문에 슬픈 인생 P84
“지금 네 꿈은 뭔데?”
“죽는 순간까지 내 안의 나를 다 발견하고 가는 것." P115
밤이 되면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다. 불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차례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밤이 다하도록, 아침 따위 오지 않기를 바라며. 아니, 오더라도 우리만은 비켜가기를 기독하며. 해가 뜨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겠지. 너는 파리로, 나는 서울로, 미래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릴 만큼 지나간 시간은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P136-137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대체 누가 말했던가. 여자의 친구는 여자일 수밖에 없는데.
20년지기 친구가 그리운밤에 P139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영화를 보거나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수많은 잡념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돈, 실수 혹은 맛있는 것들 P161
잘 차려진 값비싼 음식보다 정성 가득한 엄마요리를 먹는 게 좋다. 기계음 가득한 음악보다 따뜻한 사람의 연주가 좋다. 눈을 혹사시키는 현란한 영화보다 공감 가는 대사 한 마디가 들리면 그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왜 연기를 잘하려고만 했을까. 그저 감정에 충실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참 바보같은 배우였구나. P173
외롭다는 건 때때로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말해 준 사람도 그였다. P19
"넌 하루키가 왜 좋아?"
"그는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어.
난 아버지랑 같이 살지 못해서 그런 걸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거든."
"그런 걸 아버지에게 배우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 순간 진심으로 나는 하루키와 그의 주인공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너무도 외롭게 살았으리라. 스스로 외롭고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 여겨왔는데, 비로소 나는 그 같은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21
해변은 이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우며 분위기가 좋다. 가끔 새들만이 지나가는 푸른 하늘 아래서 태잉을 하며 여유와 낭만을 누리는 시간. 겨울이 오면 지금 이 순간 내 몸 속에 저장해둔 태양열을 에너지 삼아 살아갈 것이다.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