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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23. 2024

내가 남을 바꿀 수 있다는 오해

무아의 자유로!


모든 문제의 중심은

오직 ‘나’에게 있습니다.

바꾸어야 할 ‘너’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면 ‘너’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사회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하고 우주가 변합니다.


법상 스님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 중에서…


나는 누군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교화시켜 정상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실제로 바뀌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고 나다.

상대방은 어쨌든 자신만의 상식에 따라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인데 그게 나의 관점에서 맞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반응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면 세상 살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아라고 하지 않았던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없다’인데 나의 고집을 내려놓기 위해선 ‘절대적인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나의 인식이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는 나도 누군가의 눈에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내가 옳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한 인간의 태어나서 여태 살아온 과정, 가정환경, 경험해 온 일들에 따라 개인의 세계관은 깊게 뿌리 박힌다. 사람마다 사고회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시키기 어렵다. 그러기에 규칙과 법이 존재한다. 


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 지인을 아주 가까이에 두고 있다. 수년간 그를 바꾸기 위해 좋은 말로도 설명해 보고 화도 내보고 여러 방법을 사용했지만 끝내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옳다. 나는 옳은 소리를 했을 뿐이다’라는 답변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함부로 언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상대방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지적할 때는 그 사람을 향한 애정보다는, 그로 인한 피해를 입고 싶지 않아서;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큰 괴로움인데 그들을 인정하고 용서하라는 그저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바라보는 관점을 바깥에서 내 마음 안쪽으로 돌려보라. 그리고 나도 종종 남들 눈에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라. 그리고 진심으로 참회하라. 이후에 눈을 상대방에게 돌리면 이전과 같은 분노는 한층 사그라져 있을 것이다. 

내가 변하면 (즉 나의 인식이 변하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자연스레 변할 것이다. 분별심을 버리자.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의 구별은 종국에는 반드시 고통을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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