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영 Aug 26. 2024

엄마와 나에게 남은 시간

엄마와 나의 시간이 함께 흘러갔으면 좋겠어.


내게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시계는 엄마였다.


내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

내가 밥 먹어야 할 시간

내가 포기해야 할 시간

내가 세상에 나가야 할 시간

내가 울음을 춰야 할 시간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시간들을

엄마는 일러줬다.


이제는 멈춰 서 버렸지만

멈추기 전까지 그 귀함을 알지 못했던

내게 가장 귀하고 고결한 시계였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박광수 작가님


엄마의 전화를 받은 그날 하늘은 유난히 맑고 따뜻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 너머로 작은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그 떨림에 동조하면 같이 무너져 내릴 까봐 오히려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저는 침착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무작정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무시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밤낮으로 일했던 그 식당으로... 평소에 차로 5분 거리였지만 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다가는 이제는 유효해진 엄마와의 시간이 낭비될 까봐 택시를 잡았습니다. 귓가에 초조한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비록 지구라는 같은 땅 위에 있지만 저는 지옥에, 바로 옆에 서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통곡 속에 보내 드린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엄마의 암선고는 제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도 끝내 보내 드리지 못해 매일 밤 울며 잠든 지 한 달, 그리고 두 달째… 할아버지 장례식 때 넋이 나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니 이미 차는 가게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차에서 내려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을 열기가 두려웠습니다.


 불이 꺼진 텅 빈 가게에서 엄마는 눈이 부운 채로 애써 침착하게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 스치듯 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겨드랑이 사이에 잡혔던 그 멍울이 암인 줄 알았다면 더 일찍 병원에 보낼걸. 가끔 제가 겪는 단순 림프 부종인 줄 알고 지켜보자고 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까부터 귓가에 들리던 째깍째깍 소리가 이제는 귀가 아닌 제 심장에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는데 이제는 엄마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늘이 미친 듯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제게 죽음이라는 시련의 연속을 주는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 곁을 고작 몇 달의 시간차를 두고 떠난 베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왜 제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고, 그 당시에는 별로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맘 편히 하늘을 욕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날부터 우리는 부지런히 항암치료를 받고 살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소식을 접한 첫 몇 달간은 저는 매일 악몽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곤 했습니다. 숨죽여 울지 않고 악을 쓰며 꿈에서 깨어났던 건 삶에 대한 억울한 심정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직장에 재택근무 전환을 신청했고 집에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심장을 조이던 째깍째깍 소리는 점차 작아져 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시계소리는 희미하게 제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엄마의 시계가 점차 노후화됨에 저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의 시계를 금은방에 가져가 새로운 약으로 갈아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비싼 천만금을 달라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의 시계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곗바늘은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함께 흐르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게 엄마시계는 저를 위해 매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시간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엄마, 이제는 나에게 안 울려줘도 되니까 잠시만 약을 빼서 일시정지 하면 안 될까? 엄마의 노후화를 멈추고 싶어. 나랑 같은 시간에 함께 흘러가자. 그때까지 엄마 편하게 쉬고 있으면 안 될까?’ 대답 없는 엄마시계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우리의 시계는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이미 멈춰버린 외할아버지의 시계를 바라보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이전 06화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