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영 Aug 28. 2024

내 나이 28세.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차.

계산은 알아서… 숙녀의 나이를 묻는 건 실례이니까요 ㅎㅎ



일 년을 낭비한 걸까?

괜찮아, 1년 더 살면 돼.


낭비한 시간은 무병장수로 메워보자.


김수현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 중에서



제목과 같이 올해 제 만 나이는 28세입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지 13년 차입니다.

네? 중학교를 막 졸업한 신분으로 그게 가능했냐고요? 네, 부모님의 사인이 적힌 동의서를 받아오면 그 당시에는 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을 하고 당당히 강남땅을 밟아 가장 처음 일한 곳은 아직까지도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피부과였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1 때부터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려보도록 할게요. 집안 사정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이 정도로 해두고요^^


영어를 잘했던 덕분에 영어가 필요했던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피부과, 성형외과, 무역회사, 통번역 일 등등.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사회의 어른들은 모두 학교 선생님들과 같을 줄 착각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안아주고 늘 따뜻한 미소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크나큰 오산이었습니다. Cctv가 없는 창고에 끌고 가 대놓고 폭언하던 일진 상사, 교묘히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상사, 피했지만 얼굴로 묵직한 만년필을 던진 원장, 막을 수 없는 일을 막지 못하여 내게 시 xx이라고 소리친 원장, 바퀴 달린 의자에서 놀라 굴러 떨어질 정도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욕하던 원장, 어디에 알리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던 또 다른 원장, 제 급여를 몰래 훔쳐보고 본인보다 높다며 왕따 시킨 언니들… 청소년이었던 저에게 사회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물론 인간적이고 따듯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성을 잃고 울고 있던 제 어깨를 토닥이며 누구나 인생에 up and down은 있다며 지금 내려가면 금방 올라갈 거라고 위로해 주시던 원장님, 계단에서 몰래 울고 있던 저를 말없이 안아 주신 동료 언니, 고시원 라면만 먹지 말고 본인 어머니 식당에 가서 밥 다운 밥 챙겨 먹으라던 실장님. 10여 년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치고는 나열해 보니 많지는 않네요^^ 


그 사무치게 외롭고 어려웠던 그 시절, 미성년이었던 저를 감싸 안아준 분들 덕분에 저는 그들처럼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누구든 분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짐을 저와 기꺼이 나눠 들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런 은인들이 없었다면 저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심각하게 삐뚤어져 성장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 시간들이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낭비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과 다르다고 해서 낭비는 아닙니다. 분명히 그 일들을 통한 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업에 일하며 전화공포증도 극복했고, 여초 집단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고, 생소했던 노동법에 대해 직접 겪어보며 알게 되었고,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배웠고, 내가 그들을 전부 이해하려고 하는 건 큰 욕심인 것을 깨달았고, 그만큼 인간다운 사람들은 희귀하여 어딘 가에서 보석처럼 작게 반짝 빛남을 알아보았고, 그리고 몇 번의 창업과 폐업을 통해 사업병도 고쳤습니다.


과거의 일들이 현재 하는 일과 다르다고 해서 전부 낭비인가요?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이 10년 뒤의 나의 직종과 다르면 또 낭비라고 할 건가요?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여러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일들이 있고, 그게 본인만이 가진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미치도록 지우고 싶고 불쌍했고 후회 가득했던 내 과거가 이제는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넘어지고 깨졌던 순간들이 이제는 누군가 넘어지기 전에 내가 잡아줄 수 있게 도와주었고, 누군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다가가 진심으로 공감하며 위로해 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련하여 처음으로 저의 이름으로 된 책을 작게나마 출판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낭비라고 생각했던 시절들이 나의 영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만 자랐다면 과연 제가 마음 챙김과 마음공부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졌을까요?


절벽 끝에서 살아내기 위해 시작했던 호흡명상으로 시작하여 지금의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모두 소중한 인연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이야기와 여정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을 하고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전 04화 통증은 있을지 언정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사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