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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Jun 15. 2019

몸의 흔적들

한 가지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안다. 그들의 천진하고 아이 같은 얼굴을 좋아한다. 아끼는 장난감을 내게 선뜻 양보해주며 “이거 진짜 재밌는데 너도 꼭 해봐! 우리 같이 놀자!”라고 말하는 아이 같은 표정에 나도 들뜬다. 무언가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기운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순수한 호의와 호방한 초대 앞에서 무장해제된다. 꼬따오에서 다이빙을 처음 배울 때 그랬고, 어제 강릉에서 서핑을 배울 때가 그랬다.

다이빙 선생님은 기술이나 지식을 논하기 앞서 “다이빙은 재밌고 즐거운 것”이라는 얘기를 먼저 해 주었다. 바닷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물속에서 만난 사람과 동물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좋은 버디(buddy)를 만나면 다이빙이 얼마나 더 즐거워지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즐거운 걸 계속하기 위해서는 바닷속의 모든 생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도.

서핑 선생님은 서핑에 빠지면 “인생 조지는 거”라고, 자신이 바로 그 “인생 조진” 1인이라고 했다. 무얼 봐도 파도 모양으로 보이고, 눈을 감아도 물결이 어른거렸다고 했다.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는 ‘로컬’ 선생님은 아직도 큰 파도를 만나면 두렵다고 했다.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파도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파도를 잘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도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공기통을 매고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면서, 흔들리는 서핑 보드 위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들의 말 뜻을 알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의 초콜릿색 피부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한 사람들의 몸에는 어떤 흔적이 남는구나, 아니 새겨지는 건가, 싶어서. 허여멀건한 내 피부도 멋지게 그을렸으면 하고 바랐다. 태양이 만들어준 주근깨, 서핑보드나 다이빙 핀에 긁힌 상처 같은 어떤 흔적들을 몸에 기록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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