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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Jul 07. 2020

상반기 결산 (上)

나를 즐겁게 한 것들 - 1 -

생일 이후 2주 동안 정신이 없었다. 올해 생일은 이상하게 요란했네. 잘 놀았지만 계속해서 약속에 여행에 집을 비운 탓에 살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주말 동안 어질러진 집을 깨끗이 치우고 빨래하고 일주일치 반찬까지 해놓고 나니 문득 이제 7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7월이라니. 대청소 기념으로 머릿속도 좀 정리하고 싶어졌다. <필름클럽>에 영화 소개 전이나 후에 '나를 즐겁게 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있는데, 클러버로써 나도 지난 6개월 간 나를 즐겁게 한 것들에 대해 써볼까 한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올해는 배캠 30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1주일간 영국 BBC에서 생방송을 했던 ‘Live at the BBC’, MBC ‘시리즈M 다큐멘터리’ <DJ>, 일요 코너 ‘배캠이 사랑한 음악과 아티스트’ 등등. 하루를 마무리하며 철수 아저씨의 “뭐 그럴 수도 있지”식의 화법을 듣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철수 아저씨를 보며 나이 든다는 것과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잘 늙은 사람, 나이를 헛먹지 않은 어른의 모습. 그를 멋진 중년(우리 아부지랑 동갑이지만 노년은 아직 아니신 것 같아서)으로 만든 데에는 그의 일, 즉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찾아들어야만 하는 dj라는 직업의 특성이 한몫했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음악은 언제나 새로 나오니까, 계속 듣지 않고서는 dj라는 일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까. ‘듣는다’를 ‘공부하다’나 ‘경험하다’로 바꾸면 모든 직업에 대입이 가능하다. 좋아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심지어 구려 지지도 않으며 하는 건 굉장한 일이다. 아아, 한결같은 사람. (그러나 왜 그라고 한결같았겠는가)


달리기

달리기를 한 지는 이제 석 달쯤 됐다. 나이키 런 앱이 자꾸 나를 우쭈쭈 해주는 게 좋아서 달리게 된다. 처음엔 달리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냥 좀 걷자는 생각이었다. 걷는 건 좋아하고 잘하니까 주말마다 한 10km씩만 걸어볼까 했다. 그러다 회사 동료들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다. 우리 사무실은 크게 '수영에 미친 자들'과 '달리기에 미친 자들'로 나눌 수 있는데 - 아, 그러고 보니 '요가에 미친 자들'도 있다 -  나는 원래 수영클럽이었다가 동료들과 샤워실에서 알몸을 공유하는 건 아무래도 적응이 안돼서 조용히 휴면회원이 된 상태였다. 마침 뒷자리 동료가 러너스 하이에 꽂힌 상태였고 - 사람들은 그를 두고 뛰는 게 거의 '말'이라 했다 - 매일 달리기가 얼마나 좋은지 설파하는 동시에, 내 체형이 달리기에 최적화된 몸이라며 꼬드겼다(같이 뛰는 것도 아니면서). 그 말에 솔깃하여 러닝화를 사고, 반바지를 사고, 드라이핏 티셔츠를 사고, 3개월째 뛰고 있다. 처음엔 노래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는데, 이제는 10분 뛰고 5분쯤 걷고 다시 10분 뛰고 이렇게 할 수 있게 됐다. 아직 기록이랄 것도 없을 만큼 느리지만, 매주 더 오래, 더 빨리 뛸 수 있게 되는 게 신기하다. 뭣보다 여름밤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순해져서 좋다.

  

일(feat. 라오스)

기본적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일이 재밌는 건 아니었다. 올해 팀을 옮긴 후에는 솔직히 당황스러울 만큼 일하는 게 재밌어졌다. 동시에 와, 도대체 그 전 팀의 업무가 얼마나 sucks였던 건가 싶기도.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면서 데스크 리뷰를 좀 지독하게 했는데 그게 진짜... 재밌었다.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교육사업이라, 파면 팔수록 multilingualism이나 모국어 기반 교육에 대한 여러 담론과(+격렬한 논쟁) 연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수민족 언어의 특징과 다양성, 그 언어 간 hierarchy까지, 온 국민이 한 언어로만 말하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온통 흥미로운 얘기였다.

사업지역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관광지와는 동떨어진 그냥 (깡)시골인데 내가 스물두 살 때, 그러니까 12년 전에 여행한 적이 있는 곳이다. 그때도 이미 방비엥은 해피 셰이크를 마시며 튜빙하는 백인 여행객들로 가득했기에 나는 방비엥을 아예 패스하고 무앙 응오이 느아라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내다 베트남으로 국경을 넘기 위해 12시간 버스를 타고 쌈느아에 갔는데, 그 버스 안에서 라오어를 하는 한국인을 우연히 만났다. 알고 보니 코이카 단원이었고, 그때 처음으로 코이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됐다. 다음날 국경을 넘는 버스는 타지 못했지만 덕분에 썽떼우를 타고 비엥싸이에도 가보고 시장에서 맛있는 국수도 한 그릇 할 수 있었다. 그때 소수민족이란 게 뭔가 너무 신기하다, 했었는데 - 그리고 베트남 박하로 넘어가서 또 다른 소수민족 마을에 갔다 - 이제 그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니.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지나온 길의 점들을 이어보니 선이, 희미한 그림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 기관 담당자들도 참 좋은 사람들이다. 코로나로 출장이 취소되고, 사무소가 문을 닫고, 학교가 문을 닫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들은 애틋했다. 언제쯤 이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를.  


여기까지 쓰고 너무 길어서 두 번으로 끊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다섯 가지 정도가 더 남아있는데 쓰다가 내가 지치겠고 오늘 월요일이라 너무 졸려서(...) 어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오늘 이 시간까지도 못 끝낼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글의 완결성은 있어야 하니까 마지막 한 문단만 더 쓰고 끝내도록 하겠다.

 

언젠가 "요즘 낙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적이 있었다. 질문자는 모든 사람들이 일상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는 이들 모두에게 묻는다고 했다. 그 말이 멋져서 나도 종종 사람들에게 낙이 뭐냐고 묻는다. 있으면 신나게 얘기하고, 없으면 이제부터 찾아보자고. 요즘 같은 때에는 일상의 즐거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괜찮아지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같은 말은 이제 효력이 없다는 걸 경험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오늘의 즐거움을 유예하지 않고 또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 일지 모른다. 나를 즐겁게 한 것과 너를 즐겁게 한 것을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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