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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an 30. 2017

백수가 본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를 보고


웬만해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다큐멘터리의 이름이 검색엔진의 상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살아온 지 어언 1년이 넘어가는 내게 전혀 남일이 아닌 제목. 몇 번을 미루다 드디어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흑백 화면은 어디로 가고, 감각적인 애니메이션과 재연 영상이 돋보였다. (내가 너무 다큐멘터리를 안 봤구나... ) 신변 보호를 위해 이용되는 애니메이션은 주제와 달리 깜찍하기까지 했다.

앗, '언니TV'에서 보던.. 장재열 언니(!?)

21세기에 진입하고 1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해병대 캠프를 가고 신입사원 연수에서 카드섹션을 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슨 북한도 아니고 카드섹션이냐... 하긴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을 다니고 같은 시기에 퇴사한 두 선배가 해 준 이야기. 어느 날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전사 직원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위에서 회장님 건강에 대해 물어보면 무조건 건강하다고 답해달라"라고.

그러면서 '여기가 북한이냐'이냐며 동료들끼리 한숨 푹푹 쉬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했다. (다국적 기업에 다니는 외국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막 웃었다. 그리고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큰 회사라면 소문에 민감할 필요가 있으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한국의 일터 분위기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름(?) 객관적인 입장을 듣게 될 때가 종종 있어서 신선하다.)


보고서를 던지는 건 기본, 욕지거리도 기본. 개인의 삶이 없어지는 것도 기본.

1년 전 그만두었던 회사가 오버랩되며 한숨을 푹 쉴 무렵.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입사 후 채 1년이 되지 않을 무렵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분이었다. 항상 불안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셨다.

.....


나도 그랬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잠은 항상 잠은 잘 자던 내가 새벽에 일어나 한숨 쉬기 일쑤, 그런 밤을 몇 번 반복하다가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해 울던 날도 늘어갔다. 회사에 가던 길이 항상 우울하던 일. 점심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우는데도 그 사이 전화가 오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일. 


그러던 시간을 지나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우울증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되지도 않는 겉치레에 치중했는지, 언어폭력, 무시 같은 것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보여줬으니 여기선 생략.

싱가포르 회사에서 일하던 초반, "늦게까지 앉아 있는다고 일 잘 하는 거 아니야. 빨리 가." 라는 말에 받은 감동.  "늦게까지 일하는 것=능력 없음"이라고 생각하던 그들.

뭐 나야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도 않고, 특별한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에 다녔던 건 아니었지만, 한국 회사와 외국회사를 다 경험해 보고 나서 드는 의문은 '누가 일의 목적에 더 부합해서 일하느냐'였다.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회의를 하는지. 그 본질에 충실한 쪽은 확실히 외국회사였다. 일을 직접 하는 사람이 일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충분히 낼 수 있는 분위기, 그 속에서 그의 능력과 재능은 꽃피고, 회사와 개인에게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 기껏 창의적인 인재를 뽑아놓고는 그 인재의 의견은 묵살하기 일쑤, 콘텐츠보다는 시답잖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상사 밑에서 어떤 젊은 것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그렇게 훌륭한 인재들은 그 힘든 경쟁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도 채 못되어 나왔다.

중간에 대기업 임원까지 하시고 지금은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계시는 분이 나왔다. 제작팀의 의도와 그분이 인터뷰에 참가한 의도가 일치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분은 일명 '꼰대'처럼 다큐멘터리에 나왔다. 상사가 회식 가자면 무조건 갔다느니, 같이 일하는 동료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돈독했다느니... (내가 지금까지 참석한 결혼식은 거의 모두 회사 사람의 결혼식이었는데, 내가 퇴사한 이후로 그들과는 연락조차 안 한다. 외국에 살아서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많이 친하지 않은 한 직장동료에게 청첩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얏호! ㅋㅋ) 동료와 꼭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쌍팔년도 식 발상인데 지금의 젊은이들이 '개인주의'가 심하다며 비난받고 있다. 그 개인주의가 심화된 이유 중 하나가 기성세대가 공고하게 다져놓은 극심한 경쟁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이렇게 우리만의 이야기만 하면 너무 치우칠 것을 걱정했던 건지 현직 인사담당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까지 있었다.  인사담당자들의 고충도 들어볼 수 있고, 좋은 사람들을 뽑아놓고 그들을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서 좋았다. 그 와중에 들은 마마 사원의 이야기에 기겁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다 제쳐두고라도 퇴직 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장하고 감동적이었다. 어차피 회사도 사회도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사람들. 돈 못 버는 것? 이미 회사를 나오는 순간 각오한 일이다. 그 길이 천국일지 지옥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선택했기에 후회는 없다.

퇴사 전과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을 할 때, 이 분은 얼굴 표정 부터 달랐다.

그들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는 건...  퇴사 후 그들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왔냐라는 질문에 '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어서이다. 내가 생각하는 몇몇 가지의 것들에 다시 내 인생을 걸어보아야 할지...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아야 할지... 이 고민으로 시간만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퇴사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이 끔찍이 싫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회사에 다니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존경스럽다. 하지만 사실 회사에 치이다 보면 그것을 알아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기도 한다. 내가 그런 케이스. 부단히도 이것저것 다니고 찾아봤지만, 번아웃 되어가는 마음에 모든 것이 다 파라다이스로 보이거나 부정적으로 보여 이게 진짜 내 마음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길을 생각해 볼 수없게 만드는 교육과 사회 시스템이 문제지만, 어쨌든 지금 살고 있는 내 인생,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 취직하면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는데. 취직하고 나서야 안다. X 밟았단 것을. 그제야 생각한다. 내가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을까?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장 시스템이 바뀌기는 힘드니, 공부하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를,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무엇에 기꺼이 내 삶의 시간을 사용하며 살 것인지를...



PS. 다니는 회사와 잘 맞거나, 회사에 만족하면서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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