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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14. 2016

호주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시간 되면  일 하러 가고, 브런치에서 글 쓰는 내가 왠지 한심해 보인다. 더구나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니다. 한국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 저 밑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는데 풀 곳은 없고... 열흘 전 네이버에서 찾았던 '박근핵닷컴'에 청원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고국에서 국민들은 저렇게 정의를 외치고 있는데, 국민들의 힘으로 정의를 되찾게 되는 순간 난 아무것도 도운 게 없다는 그 죄책감이 들까 두렵다. 미안하고 아프다.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꼴을 그나마 희석시켜서 보는 것 같아서,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사는 사람들만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하는 기분이 든다. 외국에 있을 때 선거기간이 겹치면 해외 부재자 투표를 통해 꼬박꼬박 투표는 했지만, 뭔가 항상 빚진 느낌이랄까...




청와대-비아그라 뉴스가 전세계에 보도되던 날 내가 받은 메시지. 외국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웃기고 어이없나보다.

호주의 브리즈번에 산 지 6개월이 넘어간다.  뉴스를 통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한국인들의 촛불집회가 열린 것을 자주 봤지만, 호주의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캔버라, 퍼스 등 큰 도시에서도 집회는 열리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브리즈번 시내에서 잠시 멀어져 있어서 알지 못했지만, 브리즈번에서도 11월의 매주 토요일에는 촛불이 켜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집회에 꼭 참석할 거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9일에서 하루 지난 10일. 난 브리즈번 시내의 Roma street 역 옆의 Emma miller 공원으로 갔다.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집회 전날 탄핵안이 가결되어서 일까... 사진으로 접했던 지난 집회보다 사람은 적어 보였다. 처음 참여하는 집회, 혼자 가는 집회, 그리 많지 않은 인원. 순간적으로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가 쪽팔려 그냥 앉았다.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호주 경찰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시위긴 시위구나 싶었다.


발언대에 선 어느 목사님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안타깝게 떠난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기도회도 열리지 않았는데, 박근혜 정권의 구국기도회가 이후에 열린 적이 있다 했다. 목사들이 잘 해야 되는데 미안하다고 하신다. 


뭉클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을 보는 것도 굉장히 통쾌했다. 난 비록 앉아서 머릿수 하나만 채웠을 뿐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기에 좋았다.

 

집회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 열렸는데 집회 도중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와 깜짝 전화 통화연결이 되기도 했다. 이상호 기자 역시 같은 시각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고, 시위하기 좋은 여름의 호주 날씨를 부러워하셨다. 외국에서도 그렇게 한국을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내국에 있는 사람이 못해서 참 미안하다는 말을 하신다. 정작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렇게 한국의 집회 현장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니 왠지 내가 자그만 역할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뉴스에서 본 표현대로 지금 벌어지는 일은 온 국민을 집단 우울 상태에 빠지게 한다. 알면 알수록 어이없고 분노를 치솟게 만드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래도 밝혀지고 있으니(라고 믿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희망이 있는 걸까.


내 인생의 첫 집회는 우습게도 호주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비록 몇십 명만 모인 자리였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의 열기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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