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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11. 2016

[슈투트가르트] 카시투어① - 속성 시티투어

우연히 만난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

숙소에서 나와 슈투트가르트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항상 지나쳤던 기차역 뒤의 공원. 오전의 햇살이 너무 좋은 데다 작은 호수와 이런저런 건축물 덕에 공원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큰 체스판에서 사람들은 체스 말을 밀어 체스를 둔다. 게임에서 지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속 토끼가 내게 벌칙을 주기 위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다.

 

기차역의 꼭대기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고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벤츠와 포르셰의 본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기차역. 그린시티를 위해 슈투트가르트의 기차선로를 모두 지하로 옮길 계획 하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몇 년은 걸리겠지.

 숙소 직원이 기차역 안에 작은 기차 박물관도 있고, 기차역 꼭대기에 올라가면 시내를 볼 수 있다는 좋은 정보를 주어서 곧장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기차역 박물관 내부는 지금 하고 있는 공사의 타당성을 알리려는 홍보의 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다 패스하고 기차역의 옥상으로 바로 올라갔다. 군데군데 보이는 사랑의 열쇠와 내 머리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로고. 비록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시내가 잘 보여 꽤 만족스러웠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기차역이었고, 그 기차역 옥상을 시민에게 개방한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게다가 무료라니, 슈투트가르트를 떠나는 날 한 번 더 올라와 봐야겠다.

평일 오전의 도시는 한적하다. 끊임없이 슈투트가르트가 그린시티라는 것을 세뇌시키려는 듯이 도시 중심이지만 크고 작은 공원과 분수가 많다. 사람들은 한가롭게 공원에 앉아 밥을 먹거나 새에게 모이를 준다. 사람이 모이를 줄 것을 기대하고 항상 이곳에서 푸드덕거리는 새들. 이 아이들은 언제부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을까 생각을 하다 마주한 건물. 

오페라 하우스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 입에 착착 감기던 도시의 이름. "슈투트가르트 발레"라는 현수막이 붙은 건물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소속되어 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그리고 발레와 오페라가 열리는 오페라하우스. 그래서 내가 이 도시 이름에 낯설어하지 않는구나.

오페라하우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 국립갤러리(Staatsgalerie Stuttgart)에 들어갔다. 생전 미술작품에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여행을 할수록 미술관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참 새롭다. 이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게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비교적 최근의 작품(19세기)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갤러리. 나의 발소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내부. 관람객이 나 혼자라서 좀 뻘쭘했지만, 아무도 없어서 더 그림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 역시나 많은 그림의 주제가 기독교였지만, 왠지 경직되지 않고 더 부드럽게 보였다.


미술관의 직원이 심심했던지 내게 다가와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이 한국인이었다며 본인이 알고 있는 한국어 단어를 내게 말한다. 내가 알아듣자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던 직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와 누가 봐도 여행객 같아 보이는 내게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안 그래도 의심 많은데 베를린 오는 길에 성추행도 당했던지라 잔뜩 경계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는 터키에서 태어났지만 5살 때부터 독일에서 살았다는 터키계 이민 2세에 이름은 '카시'라고 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직장을 구해 3일 전에 이곳에 도착한 나와 같은 새내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슈투트가르트를 구경하는 중이라고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본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 슈투트가르트를 보여주겠단다. 아직 밤도 아니고, 살짝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같이 돌아다녔다. 

신 궁전 (Neuse Schloss)

내가 슈투트가르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안 카시는 볼거리는 웬만하면 이 근처에 있어서 걸어 다니면서 감상할 수 있다 했다. 그렇게 들렀던 곳들이 신 궁전(Neuse Schloss), 구 궁전(Altes Schloss), 그리고 쉴러 광장 (Schiller platz). 신궁전과 그 광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넓으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현재는 주 정부가 사용하고 있어 입장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넓은 광장이 굉장히 썰렁한 느낌이었다. 광장 안의 분수마저 외로워 보이는 느낌... 반면에 신 궁전은 궁전 대신 작은 저택과 예쁜 카페테라스가 우리를 반겼다. 그만큼 작은 규모지만 그만큼 아기자기한 느낌. 게다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우선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훨씬 친근했다. 

슈투트가르트 시내 중심에서 유일하게 시야 가득 중세유럽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곳, 쉴러 광장


"혹시 시장이 근처에 있니?"

슈투트가르트의 시장이 궁금하다고 하자 카시는 나를 근처의 시장을 데려갔다. 유럽의 시장이라는 게, 아니 시장이라는 게 비슷비슷하겠지만, 그래도 항상 새로운 도시의 시장에 가기 전에는 뭔가 기대를 하게 된다. 카시가 데려간 시장은 노란색 전구들로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 들던 곳이었다. 처음 둥그런 모양의 치즈를 봤을 때 그 크기에 놀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치즈의 크기에 익숙해졌다. 하트 모양의 파스타를 발견하고는 살까 말까 30초를 고민하기도 하고, 온갖 종류의 소시지에 감탄하기도 했다. 신기한 모양의 파스타 재료와 온갖 종류의 치즈와 땅콩들. 역시 시장 구경하는 건 재미있다. 

그나저나 카시가 좀 지루해하는 것 같다. 시장을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푸른 잔디밭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구 궁전 근처의 슐로스 광장 (Schloss platz). 푸른 잔디밭과 작은 분수 그리고 광장 중앙의 기념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구 궁전의 고상함이 광장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슐로츠 광장에서 카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잠깐 했다. 큰 도시에서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좀 불안하단다. 다섯 살 때부터 독일에 살았지만, 줄곧 작은 도시에서만 살아왔다고 했다. 가끔씩 터키계인 본인과 독일인들 사이의 이질감을 느낀 다는 그 아이. 본인은 어릴 때 와서 그래도 괜찮았지만, 부모님이 이곳 사회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부르크에서 날 재워주신 나달 아저씨가 생각났다. 26년을 독일에서 살고, 독일인과 결혼까지 했을(이혼도 한) 정도로 독일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아저씨지만, 독일이 여전히 낯설다고 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는 외국 생활의 장점 이면에는, 그들과는 뼛속까지 섞일 수 없는 이질감이 분명 존재한다. 당연히 완전히 같아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 삶의 터전이 이곳에 있기에 그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그것에서 오는 이질감과 본질적인 외로움. 외국에서 산다면 그 외로움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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