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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r 19. 2017

[터키] 이스탄불의 시장

스파이스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 터키의 구멍가게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클릭 몇 번으로 쇼핑을 해결하고, 발품 하나 팔지 않고 다음날이면 집으로 배송된 물건을 보면서, '역시 난 합리적인 사람이야. 이렇게 시간과 돈을 아끼다니. 하하하'라고 하지만, 시장의 북적함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상인이 들러붙어 귀찮게 말을 걸까 봐 입구에서만 물건을 흘끔 쳐다보고, 손님이 많을 때면 물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와야 할 때도 있는 데다, 값을 좀 깎아보겠다며 흥정하면서 피곤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건 왜일까. 상인들에겐 물건만 실컷 구경하고 안 사고 나가는 얌체 같은 고객일지 몰라도 시장의 그 느낌이 좋다. 물론 사람 사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비슷비슷하고 특히나 여행객들이 많이 갈 법한 시장에는 현지인이 쓰는 물건보다 점점 더 기념품이 늘어가는 경향이 있어서 종종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래시장, 벼룩시장에는 그 나라, 그 지역만의 무엇이 있다.


이스탄불에는 여러 시장이 곳곳에 있다. 가장 유명한 그랜드 바자(Grand Bazaar)부터 해서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ar), 블루모스크 근처의 Arasta Bazaar, 갈라타 다리 옆의 수산시장까지. 아마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곳이 훨씬 많을 게다.


갈라타 타워 근처에서 이스탄불의 첫날밤을 보낸 후 갈라타 타리를 다시 건넜다. 블루모스크로 가는 길이었는데 큰 시장을 보고 그곳이 목적지 인양 바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알싸한 향기. 이곳은 각종 향료를 팔고 있는 터키 말로는 '므스르 차르슈'라고 불리는 스파이스 마켓 Spice Market이었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가득한 곳.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일 수도 있는 이 곳이지만 난 보고 있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어쩜 이렇게 많은 향료가 세상에 존재하는지가 놀라울 뿐. 다만 터키 음식이 입맛에 맞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렇게 다양한 향료가 아닐까 생각했다. 게다가 터키의 매콤한 음식은 외국 음식의 느끼함에 질린 한국인에게 실로 반가운 존재이다. 정말 터키 음식 맛있었는데... 먹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곳을 꽉 매우고 있는 사람들에 밀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어느새 밖으로 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떠밀려 나온 곳은 역시나 사람들로 꽉 찬 골목길. 하지만 조금 걸어가자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여러 갈래 길이 나왔고, 스파이스 마켓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진짜 이스탄불의 시장을 만났다. 이스탄불의 골목상권이랄까? 구멍가게들이 골목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 골목은 저 골목으로 이어지고 다시 다른 두 갈래 길로 이어지고...  현지인이 이용하는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결국 길을 잃어서 1시간을 헤맸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찻잔들은 볼 때마다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술탄, 모하마드, 아라비안 나이트, 양탄자가 자동반사로 떠오르게 만드는 이 찻잔들. 좁은 골목 계단을 사이에 두고 그 공간이라도 사용하겠다며 들어선 가게와 터키 말로 쓰인 간판,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엄마, 심각한 눈으로 물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이슬람 문화권이라 양탄자, 원단 가게가 확실히 눈에 많이 띈다. 히잡을 쓰고 온몸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온몸을 휘두른 옷의 색은 더없이 화려하다. 터키도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여성이 히잡 쓰는 빈도는 현저히 낮다. 문득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알고 지내던 터키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하던 그 아이. "나 무슬림인데 꼭 히잡 안 써도 되고, 술 마셔도 상관없어. 터키는 좀 프리해"그 아이가 몇 번이나 강조하던 그 말이 이 골목에서 문득 생각났다.

그렇게 골목을 떠돌아다니며 그랜드 바자 찾는 걸 포기할 때쯤 눈에 띈 그랜드 바자 입구. 역시나 사람이 북적댄다. 이전에 다른 용도로 쓰인 건물인지는 몰라도 시장의 천장에는 이름 모를 벽화가 그려져 있고, 건물의 모양도 시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역시나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찻잔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안겨주는 램프와 화려한 도자기들. 터키의 보통 가정에서 실제로 이런 물건들을 쓸까.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물건들도 결국엔 관광객들을 위한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라도 하다가 진열된 물건이 깨지면 어쩌나... 괜히 걱정된다. 골목을 열심히 돌아다녀서 일까. 그랜드 바자에선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얼른 나왔다.


* 운 좋게 얻어걸린 중고 책, 음반, 그림 축제.

말이 축제지 큰 엑스포에서 열리는 것도 아니고, 간이 천막에 여러 부스를 세워 놓은 게 다다. 어쩌면 그래서 중고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리는 걸지도... 무슨 축제 인지도 모르지만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들어가 보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책과 음반이 그득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배고픈 배낭여행객에게 커피와 과자도 주는 친절함까지 갖춘 곳이었다.

며칠 전 터키에서 있었던 버스 사고에 대한 애도의 표시를 하고 있던 어느 부스
중고책을 파는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의 흰 수염

LP판, 20년은 더 되어 보이는 포스터, 카세트테이프, 잡지 등이 수북하다. 어떤 터키 사람들은 이곳에서 몇십 년 전 가수의 음반을 찾아내고 작게 탄성을 지르곤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추억에 대한 향수는 정말로 어딜 가나 유효하다.

터키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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