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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y 02. 2017

[터키]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어떻게 지구상에 이런 지형이 존재할까?

파묵칼레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새벽에 카파도키아로 도착했다. 정확히는 카파도키아의 ‘괴레메’라는 마을. 새벽 5시에 버스에서 내리니 눈 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기구.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투어를 이미 예약은 했지만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카파도키아에 도착하자마자 해가 뜨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니 무어라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금 하늘에 떠 있는 열기구 중 하나에 내일은 올라 타 있을 멋진 그림을 상상하며 쪽잠에 빠졌다.

괴레메의 새벽 하늘

나이트 버스에서 설친 잠을 보충하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빛에 뿌연 마을만 봐서 몰랐는데, 식당과 가게, 호텔이 몰려 있는 작은 중심가를 제외하곤 마을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기암괴석이 원래 주인(이 맞지)인 듯 건물과 자동차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곳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충분히 설명해 주듯 작은 마을에는 한집 걸러 여행사가 있다. 게다가 심심찮게 보이는 한국어 광고. 셀축도 그랬지만 이곳도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 곳이었다. 문득 전에 선배로부터 들은 터키 여행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들었던 한국어를 정말 잘 구사하는 터키인 가이드는 바로 카파도키아 이야기였다. 한국인이 먼저 이곳을 찾은 건지 한국어를 배운 터키인이 한국시장을 개발한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어를 하는 터키인 가이드는 매우 바쁘다 했다. 그리고 역시나 한국 사람이 많으면 으레 생기는 그것, 도보로 5~10분이면 충분히 다 둘러볼 수 있는 마을에 이미 한국식당이 2군데가 있다. 정말 지구 어느 곳이든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우리 삶의 질이 정말 높아졌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점심으로 보통 케밥을 먹을까 카파도키아의 명물, 항아리 케밥을 먹을까 고민하다 돈 좀 더 주고 명물을 먹었다. 항아리케밥은 약간 안동찜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항아리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뜨끈하게 먹을 수 있어서 돌솥비빔밥처럼 오래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터키 음식은 아주 잘 맞다. 근데 한번 케밥을 담기 위해 쓴 항아리는 손님 앞에서 뚜껑을 깨어 버린 뒤에는 다시 쓰지 않는다. 깨어져서 어쩔 수 없다지만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셀축에서도 그랬지만 이곳도 길거리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오전 수업이 끝나는 종이 들리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빠지고 썰렁해진 운동장은 공을 들고 하나둘씩 나오는 아이들로 다시 시끄러워진다. 하교한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모습.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남아서 노는 건 물어볼 가치조차 없는 필수 항목이었는데 왜 그렇기 귀한 것이 되었는지... 


공동 여물통으로 보이는 곳에 소를 끌고 와 여물을 먹이고 다시 갈길 가는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산업화가 진행되어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렸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여전히 예전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80년대 풍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한껏 빠지게 만든다. 이곳에는 또 어떤 다양한 역사가 있을까. 이젠 터키 어디를 가도 기대가 된다.

승마 투어도 있었나보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낼까 생각하다가 마침 호객 나온 가이드에게 잡혀 ATV 투어에 대해 강제로 듣기 시작했다. 이 마을을 벗어나서 입이 떡 벌어질만한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로즈밸리’로 간다고 그렇게 부지런이 이빨을 까댄 가이드에게 홀랑 넘어가서 ATV투어에 갔다. 시작하기 전 10분간 렌트 사무실 옆의 자그마한 연습장에서 ATV 연습을 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그때만 해도 이게 재밌을까 의심을 걷지 않았지만 ATV를 탄지 10분 만에 의심은 눈독듯이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할까 싶도록 싶은 지형이 계속해서 펼쳐지는데 정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었다. 그 옛날 화산 폭발로 현무암과 화강암이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그 덕분에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의 낮은 지대에 비추어 볼 때, 이곳에 산이 있었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된다. 

엄청난 시간의 흔적을 고대로 보여주는 절벽의 단층을 보며 카파도키아가 지내온 그 오랜 세월을 훔쳐보는 것같다.

부릉부릉 ATV의 엔진 소리를 따라 엄청난 먼지가 날린다.(ATV투어를 하려면 코와 입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나 손수건, 스카프는 필수!) 모든 바위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는 것처럼 저마다 같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차에서 내려 바위 하나에 오를 때마다 내가 꼭 소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종교 탄압을 피해 이런 곳에 숨어 살기 시작했지만, 이곳의 건조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라도 이런 동굴 속에서 사람들이 살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지금은 이런 지형을 십분 이용해 이 지역의 웬만한 호텔은 전부 동굴 호텔 CAVE HOTEL이다. 물론 진짜 동굴 모양이 남아있는 채 침대만 달랑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차에 물건을 싣고 가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그날따라 손님이 없었던 지라 가이드가 더 신나게 ATV를 탔고, 그는 인원이 많을 때는 가지 않을 법한 좀 더 가파른 길로 가기 시작했다. 스릴은 넘치지만 높다란 언덕에서 계속 점프를 하고 가파른 비탈길 덕분에 허벅지에는 이만한 멍이 들었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의 맞은편에는 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건조한 날씨에 맞게 포도를 심고, 와인을 생산한다고 한다. 매일 사람들이 ATV를 몰고 왔다 갔다 해서 과연 포도가 깨끗할지 의심이 들어 여기 포도주를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모래밭을 누비고 다니니 내가 서부 영화의 보안관이나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시야를 멀리 하면 좀 전에 내가 누비고 다녔던 로즈밸리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 

해가 질 때쯤 마을과 ATV로 신나게 달렸던 곳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왔다. 때에 맞춰 해도 지기 시작한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옆으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이 있다. 버섯 모양의 크고 작은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거대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소인국 같은, 그 안에서 제멋대로 생긴 외계인이 지금이라도 바로 등장할 것 같은 이 곳. 과연 스머프와 스타워즈에 모티브를 줄 만하다. 한 번도 투어가이드를 부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곳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이 순간만큼은 매일 이 장면을 볼 투어가이드가 부러웠다. 

우리를 가르치고 살게 하는 문명에 감사하지만, 우리가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이 자연을 두려워하고 감사해야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카파도키아에서의 첫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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