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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y 05. 2017

[터키] 카파도키아의 진기한 지형을 찾아서

파사바, 데브란트 계곡,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


카파도키아는 진귀하고 아름답지만 넓은 데다가 볼거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편이라 걸어서 이곳저곳 다니기 쉽지 않다. 아쉽게도 나처럼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적극 이용할 만한 대중교통수단도 없다. 그래서 여기엔 여행사가 그리도 많은 건지. 각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혹시 정부가 만든 게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상품과 이름이 다 똑같다.(레드 투어, 그린투어, 로즈밸리 투어.. 등등) 누군가 안내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이제껏 투어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여기선 어쩔 수 없이 적극적으로 투어를 이용했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시간이 되면 나를 픽업하러 숙소 앞으로 오는 가이드가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오늘은 카파도키아 레드 투어에 나섰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멋있는 전망을 볼 수 있는 이름도 없는 어느 공터. 카파도키아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산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은 아닌 듯 아무것도 없었다. 시작 전 몸풀기하듯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러 온 듯했다. 어떻게 집들이 하나같이 네모 모양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묵고 있는 곳도 동굴을 이용해 만들어진 곳인데 건물 전체를 보면 네모 모양이었다. 네모 모양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건물은 네모 모양인데 문이나 창문은 집에 비해서 큰 아치 모양이다. 같은 색깔의 같은 집. 멀리서 보니 '카파도키아만의 색을 보여주는 독특한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싶다.

잠시 들른 '아바노스Avanos'라는 마을 - 도자기와 모스크가 유명하다고 한다.
매일 아바노스의 공방에서 그릇에 문양을 손수 그리는 것이 지루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디자이너
역시나 아바노스에도 찾을 수 있는 길에 드러누워 있는 개

아바노스라는 마을을 잠시 스치고 점심으로 항아리케밥을 먹었다. 식전에 나온 터키 빵을 맛있게 먹으며 레바논에서 여행 온 미인 여행객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나를 재워주셨던 시리아 아저씨가 주셨던 레바논 빵 이야기를 시작으로 레바논 음식 이야기를 하였다. 레바논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안다는 사실도, 그래서 국민 대부분이 2개 국어를 기본적으로 한다는 사실도 꽤 놀라웠다. 지리적으로 불안한 국가라서 그렇지 그 아이를 통해 들은 레바논 이란 나라는 꽤 희망적이고 밝았다. 언제고 조용할 날이 있었느냐만은 우리는 함께 중동을 걱정했다.


그러고 보니 거지 배낭여행객으로 몇 달을 지내며 항상 점심을 대충 때우고 다녔는데 이렇게 점심을 거하게 먹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유럽에서 투어를 처음 해 보니 별 게 다 새롭다.

드디어 다시 이곳에 왔다! 

ATV를 타고 슝슝 달리며 바위의 모양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이 곳. 이곳의 이름은 파사바(Pasabaga). 여행 중에 간 곳에 또 가는 건 왠지 시간과 돈 낭비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곳만큼은 꼭 다시 와 보고 싶었을 정도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음에 혹시 터키에 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꼭 가 보고 싶은 정도. 내가 좋아하는 과자 초코송이를 닮은 바위들이 이 일대를 빽빽이 매우고 있는 것이 꼭 '초코송이 나라'에 와 있는 것 같다. 영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무채색 버전이랄까. 몇 백만 년을 이 자리에 서 있던 바위 위로 새로운 바위가 정착하여 마치 바위가 모자를 쓴 것처럼 귀여운 형상이 되었다. 그 귀여움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그래, 이 위대한 것이 만들어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자연은 그 시간을 담담히 빚어낸다. 어쩌면 난 모든 것을 너무 조급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이 바위가 지금의 모양을 갖추기까지 자연이 기다렸던 것처럼, 내게 정말 필요한 것도 진득하게 기다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피해 파사바에 숨어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창이 초코송이 왕국을 더욱 앙증맞게 만든다. 하지만 앙증맞다는 말이 참 미안할 정도로, 그들은 절박한 마음을 안고 이곳에 숨어들었다. 차가운 바위 안에서 어떻게 밤을 견뎠을지, 이 건조한 땅에서 무얼 먹고살았을지 커다란 믿음 하나로 이곳까지 좇겨와 살던 사람들의 위대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파사바를 떠나 데브란트 계곡 Deverent Valley으로 왔는데 이곳에서 드디어 한국인 투어 그룹을 마주쳤다. 그곳의 터키인 가이드는 내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찾아내고는 내게 다가와서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연신 '대박'을 외치며 '여기 한국인 한 명 있어!'라고 외치는 그 아이가 민망해져서 얼른 다른 길로 갔다. 

데브란트 계곡Deverent Valley의 낙타 바위
데브란트 계곡의 기괴한 바위보다 천연 비아그라가 무엇일지 더 궁금했다.
햇볕을 정면으로 받으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한창 더운 오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집안이 너무 더웠던지 시원한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영리한 개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과 건조하고 더운 날씨와 함께 몇 천년을 견뎌온 사람들. 카파도키아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집들은 이젠 바위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바위가 처음 형성되는 날 집도 함께 생긴 것만 같다. 집은 바위와 색깔마저 똑같아서 화려한 색은 아니지만 참 아름답다.

삶은 비록 피폐할지라도 마음까지 피폐하게 만들지 말자.

그렇게 바위와 집 생각을 하다가 도착한 마지막 곳은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이다. 로마제국 시절, 종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었던 기독교인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었던 곳은 이젠 박물관이 되었다. 부엌, 침실, 교회당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이곳은 문명화된 인간이 동굴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좇기고,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교회당만은 아름답게 꾸몄다. 이 빨간색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장식 도구로 최대한 이곳을 아름답고 경건하게 꾸미려고 한 로마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갑자기 목숨 걸고 기독교를 믿는 북한 사람들이 취재했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그들도 이렇게 믿음을 실천하고 있겠구나.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전파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곳에 와서 새삼 깨닫게 된다.

이곳까지 과연 로마군대가 수색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꽤 고생 좀 했겠다 싶다.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장관이다. 카파도키아의 어느 곳에 사진기를 갖다 대어도 말 그대로 그림이 되는, 지구 상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지형. 이렇게 마른 지형에도 곳곳에 울창한 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어 이곳에 생기를 더 한다. 터키가 더욱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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