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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y 07. 2017

[터키] 꼭꼭 숨어 살던 사람들의 뒤를 뒤쫓는 길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성지순례를 하는 중. 카파도키아, 터키

괴레메의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시골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돌담도 이곳에서는 흔하게 보인다. 아스팔트가 아직 덮이지 않은 땅, 조금이라도 노는 땅은 없다. 방울토마토, 고추, 호박 등이 그 작은 땅에서 쑥쑥 자란다. 내가 어릴 때도 이런 풍경이 참 흔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이는 추수가 끝난 밭에는 수십 마리의 양을 몰고 가는 목동도 있다. 카파도키아란 유명 관광지만 아니면 이곳은 영락없는 터키의 시골이다. 

터키의 시골 내음을 맡으며 도착한 곳은 '셀리메 동굴 수도원 Selime Cathdrale'이다. 종교 박해란 이유로 이 동굴까지 온 사람들이니 이곳에 수도원을 만들지 않았을 리 없다. 겉으로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바위 같다. 울퉁불퉁한 외부는 쥐가 파먹은 스펀지 같아 보이지만, 바위 내부, 동굴에는 사람들이 살다 간 흔적이 역력하다. 어제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자신들을 눈이 빠지도록 찾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멋있는 내부장식에 공들인 것을 보면 존경의 말이 그대로 터져 나온다. 

살기 위해 억지로 내야만 했던 조그만 창은 일반 교회의 스태인드 글라스처럼 오히려 교회 내부를 신비롭고 경건하게 만들고 있다. 조그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약간의 빛을 통해 동굴 수도원의 내부는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그 당시에는 벽화도 정성스럽게 그렸지만 세월의 흔적을 타고 벽화는 사라지고 흔적만 보일 뿐이다. 부엌에서 나오는 열로 새까맣게 변해버린 동굴의 벽을 보고 있으면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수도원의 옥상에서는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이곳에서 사람들은 돌아가며 순찰하지 않았을까 싶다. 

셀리메 동굴 수도원을 나와 다시 사람들이 숨어 살았던 다음 곳, '으흐랄라 계곡 Ihlara Valley'으로 갔다. 약 2,000년 전에는 기독교도들을 죽이려고 그 뒤를 쫓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21세기에 사는 우리들 역시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이곳으로 온다. 계곡이라고 해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이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개천.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 그보다는 이곳의 물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암벽의 풍경이 아름답다. 그래서 원래 이름도 계곡이 아니라 협곡이었다는. 역시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협곡이기에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짓고 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종교 탄압이 끝나고 나서도 속세와 떨어져 살기 위해 이곳에 산 수도사들도 많아서 이곳에선 거의 1000년 간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과연 성지순례로 올만한 곳이지 싶다. 

입구를 지나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몇 백개의 계단이 나타난다. 하지만 워낙 아름다운 풍경 덕에 내려가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다. 계단의 끝에서 프레스코화 벽화가 아직 남아 있는 교회에 들렀다. 비록 지금은 색이 많이 벗겨졌지만 동굴 내벽에 이렇게나 정교한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정성에 감탄하며, 교회를 나와 계곡 물을 따라 트래킹을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암벽은 기가 막힌 풍경을 연출하고 날씨마저 완벽하다. 아름다운 단풍은 없지만 화창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계곡에 평상을 깔아놓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이곳에도 있었다. 내가 앉은 평상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먹는 케밥은 꿀맛이다. 여기서 먹은 케밥도 맛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으레 이런 곳에서 동동주와 파전 한 점이 먹고 싶지 않을까.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보는 바로 앞에서 생 오렌지를 짜서 오렌지를 팔고 있었고, 강아지 형제자매 7마리가 다른 평상 아래에서 서로 뒹굴고 있었다. 


지금은 상업화되어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여전히 이곳은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과연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장소이지 싶다. 세상을 뒤로하고 자신의 종교에 파묻혀 지내던 사람들이 살던 프랑스의 몽생미셸이 생각난다

트래킹하는 내내 발견할 수 있는 교회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
차 안에서 바라본 양치는 목동

 

사람들이 몰래 숨어 살았던 계곡 트래킹을 지나 이번에는 지하도시로 이동했다. 도망은 쳐야 하고, 살긴 살아야 하고.. 이런 절박한 마음이 지하도시까지 만들어 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종교 박해 때문에 터키에는 이런 지하도시가 여러 개 있는데 이 데린쿠유가 그중 가장 크다고 한다. 지하 8층 깊이에 다다르는 이 거대한 지하도시. 그 당시 기술로 어떻게 땅을 파내려 갔는지도 신기하고, 이 안에서 체계적으로 문명을 이루고 산 것도 대단하다. 지하라는 특성상 빛이 적어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다. 하지만 지하도시의 지도를 보니 흡사 땅속 개미집을 보는 기분이다. 이 안은 지금까지 봤던 동굴 교회나 집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심지어 학교까지 있었다. 세례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세례소와 부엌, 침실 등등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하 8층 깊이의 거대 지하도시에서 살고 있던 걸까?  혹시나 한 곳이 발각되더라도 다른 곳이 발각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지하도시는 모든 곳이 하나의 길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지상의 사람들과 싸우기 위한 요새도 있었고, 혹시나 침입한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설치해 두기도 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와중에 항상 적의 침입을 대비하며 살았던 사람들. 비록 휴전 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런 위협을 덜 느끼며 사는 나로서는 그 심정이 어땠을지 잘 이해되지가 않는다. 많은 사람과 말이 걷는 소리로 땅이 쿵쿵 댈 때마다, 혹은 단 한 사람이라도 묘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살았을까? 

같은 동족 때문에 이렇게 마음 졸이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사는 건 정말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가장 영리하지만 가장 잔인하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종교란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었는가? 전쟁은 사람을 가장 신성하고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장 잔인하게도 만든다. 덕분에 이런 아름답고 놀라운 유적이 남았고, 나는 이것을 신기한 마음으로 보고 있지만,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가끔 미안하다. 난 운이 좋아 이 시절에 태어나 최소한 목숨을 걱정하며 살지는 않지 않은가.

괜히 씁쓸한 마음을 안고 마지막 비둘기 계곡 Pigeon Valley으로도 불리는 괴레메 파노라마로 왔다. 내일이면 떠날 카파도키아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한다. 계곡을 빨갛게 물들이는 해는 다시 이 곳을 신비롭게 물들인다. 이 진기한 자연환경은 도망자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환경을 제공했다. 지금이야 낫지만 그때는 정말 목숨 걸고 긴장하며 살았을 이곳. 터키라는 나라가 참으로 좋다. 그 역사도 이런 자연환경도. 근처의 시리아 때문에 애를 먹고 있지만 꼭 한 번 다시 가고픈 곳이다. 

 맞은편 암벽의 작은 구멍은 비둘기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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