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구름 낀 플로브디브의 하늘. 겨울이 가까워오는 동유럽은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이제 밤과 새벽에는 꽤 쌀쌀하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하늘은 계속 흐리다.
올드타운에서도 꽤 높은 지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위치 상 다운타운까지 내려가는 길을 매일 걸어야 했던 것도 또 하나의 행운이다. 다른 나라의 올드타운 돌길을 많이 걸었지만 희한하게 플로브디브의 올드타운이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적당한 경삿길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편리한 삶을 위해 사람들은 언덕을 피하거나 아예 깎아 버린다. 소위 말하는 '달동네'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언덕 위에 위치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언덕을 걷는 이는 적당한 언덕 때문에 적당히 긴장하고, 다음에 무엇이 나타날까 적당히 기대하고, 지나온 길을 적당히 뒤돌아 보며 언덕의 높이만큼 달라지는 거리의 풍경을 즐긴다.
유럽에서 돌길을 많이 걸었지만 이처럼 크고 투박한 돌이 깔린 길은 이곳이 최고다. 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내가 살던 옛 동네를 보는 것 같다. 서유럽의 올드타운 벽돌 길도 아름답지만, 거기선 철저히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선 이상하게 예전에 살던 집이 떠오른다. 특히 내가 일곱 살 때까지 살았던 그 골목길과 단칸방 집.
이 작은 올드타운에는 골목마다 교회가 있다. 집이 아닌 것 같아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예배당의 모습이 나타난다. 지도에 표시된 교회보다 그렇지 않은 교회가 훨씬 많아 왠지 보물을 찾은 느낌이 든다.
게스트하우스 맞은편 길에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작은 교회가 있다. 호기심을 갖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식의 종교화가 나타난다. 금색을 배경으로 하고, 기독교의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벽 한쪽을 가득 둘러싼 아름다운 교회. 머리가 신비로운 빛으로 둘러싸인 것만 봐도 그들이 성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상화와 천장, 벽의 테두리를 모두 금으로 두른 것을 보며 그 옛날 유럽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 느꼈다.
참으로 많이 들어온 영어 이름 George 역시 기독교의 대표 인물이란 것을 여기에서 비로소 알게 됐다. Saint George라는 성인이 용을 긴 창으로 찔러 죽이는 그림은 불가리아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볼 수 있었다. 한쪽에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은 마리아가 있다면, 다른 한 편엔 화끈하게 용을 찔러 죽이는 성 조지가 있다. 이제 어떤 교회에 가도 용과 함께 있는 사람이면 어련히 '조지려니..' 했다.
같은 동 유럽군에 속하지만 폴란드와 너무나도 다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너무나 다른데도 내가 잘 모른다는 이유로 같은 프레임 안에 놓고 단정 지어버리는지... 유럽이란 이미지는 또 어떤가. 유럽 하면 떠오르는 것은 잘 사는 유럽 선진국 가이다. 또한 그 프레임이란 것도 유럽의 선진국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기에 유럽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국가는 모두가 아는 그 나라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구분 못하는 외국인을 보면 발끈하며 설명했던 나. 유럽에 대해 얼마나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불가리아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 미안함과 깨달음 때문이었을까. 이제껏 보지 못한 그림을 본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을까. 생전 처음으로 교회 기부함 안에 돈을 넣고 돌아 나왔다.
올드타운의 길 넓이는 제멋대로라서 차 두대는 동시에 지나가도 될 만큼 널찍한 곳도 있고, 내 몸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도 있다.(혹시 길이 아닌 게 아니었을까?)
비교적 전통가옥이 잘 남아 있는 이곳은 그 옛날 부촌이었다. 예전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다는 집은 그대로 보존되어 갤러리나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Kîyumdzioglu House, Balabanov’s house, Hindlyan house 등 어떻게 읽어야 될지 알 수 없는 소유주의 이름만 남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집의 내부는 아늑한 동시에 화려하다. 벽들이 하나같이 단색으로 말끔하게 칠해져 있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자칫 심플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당시에 썼던 가재도구와 옷을 본다면 그런 말은 쑥 들어간다. 유리잔과 유리그릇, 바닥에 깔린 화려한 러그와 한 벽을 가득 매우고 있는 그림으로 집주인의 거대한 부를 가늠할 수 있다. 한쪽에는 어렸을 때 열심히 가지고 놀던 바비인형의 옷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분홍색 드레스가 유리벽 너머에 전시되어 있다. 겨울이면 장작을 태우고 있었을 벽난로는 집 안을 걸을 때마다 들리는 나무가 삐그덕 대는 소리와 참 잘 어울렸다.
그중 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어느 집에 도착했다. 정말 놀랍게도 그곳의 뒷마당엔 묘비가 떡 하니 있었다. 집주인 가족이 묻힌 건지, 묘비만 옮겨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음산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집.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불가리아 역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들어온 이곳엔 비교적 가까운 200년 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찬란함과 영광의 역사가 아니라, 피 흘리고 넘어졌던 그 역사가 이곳에도 있었다. 봉기, 혁명, 투쟁, 전쟁. 이 박물관을 가득 매우고 있는 이름이다. 몇 번이나 땅의 주인이 바뀌고, 세계대전을 겪고, 공산주의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삶의 방식이 아예 바뀐 이 곳. 이들도 참으로 힘들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유럽'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건 서유럽의 잘난 국가들이다. 그런 국가들에 가려서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동유럽. 슬픈 역사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대표되는 제2 차세 게 대전 때문에 폴란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불가리아는 내게 너무나 많이 낯선 곳이다. 보고 들은 게 너무 없지만 그래서 내 느낌은 더 팔팔하게 뛰었다.
올드타운의 호텔이나 레스토랑, 상점은 이곳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를 뽐내고 있다. 벽과 바닥의 돌과 적절히 어우러져 몇 백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은 그곳.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옛날 길이 많이 사라진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올드타운에는 많은 관광명소가 있고 호텔이 있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갔을 때는 종종 '사람이 살고 있어요.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팻말이 집 앞에 붙어 있는 걸 몇 번 봤는데 플로브디브가 더 유명해지면 그런 마찰이 생길까? 작은 갤러리와 은은함과 쓸쓸함이 묘하게 묻어나는 플로브디브의 올드타운을 매일 걸어서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