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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l 08. 2016

노년의 여유, 죄책감, 하펜시티, 함부르크

하펜시티, 함부르크, 독일

여행할 때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 샅샅이 훑는 것도 좋아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바깥 풍경 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전혀 몰랐던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그곳을 찾아가게 되는 경우가 꽤 많고, 현지인들, 특히 서민들의 교통수단이라는 점, ‘로컬’들의 삶에 내가 들어가 그들과 섞이는 그 느낌이 참 좋다. 하루 종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함부르크의 티켓으로 가장 빨리 도착한 메트로를 탄 후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종점까지 간다. 그리고 메트로 안의 사람들을 보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집들을 보고, 건물을 본다.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집이 넓어지는 것 같더니, 정원을 가꾸고 있는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언젠가 나도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집 같은 것’에 한 번도 소유욕이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아마 집보다는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러웠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은퇴한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평일 오후 정원을 가꾸고 있는 그 모습. 내가 부리는 여유가 아니라 부모님 세대가 부리는 그 여유가 부럽다.

여행을 다니며 행복하다가도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죄송스럽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여행 다니는 것이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 가족에게만 현실의 짐을 맡겨놓은 것 같은 무거움은 여행 내내 날 따라다녔다. 서른 넘은 여자가 일 그만두고 여행하는 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내게 주입시킨 것인데, 난 그 게 내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아직 죄책감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함부르크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와 그 일대 항구, 하펜시티를 돌아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 함부르크.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압도당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스런 느낌이 든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건물이라는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하는데, 설명을 보기 전에도 그리 따스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건물이다. 건물 끝에서 보면 한쪽 끝이 뾰족하게 보이는데 배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축적하고 이 건물을 지으면서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이 일대의 건물들은 상품 창고와 사무실로 주로 사용되던 것들인데 하나같이 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프랑스 툴루즈와는 또 다른 의미의 빨간 벽돌이다. 툴루즈가 핑크 도시였다면 이곳은 정말로 붉다.

칠레 하우스 Chile haus

오래된 건물에서는 아직도 모든 물건들이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겨지고 있었다. 이는 최대한 건물에 다른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니, 전통과 아름다움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서 판매했다는 곳에서 차를 한 잔 하고, 이 동네를 돌아보니 곳곳에 무역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거래량을 기록하는 칠판, 세계 주요 도시의 현재 시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계, 그리고 항구 근처에 있는 유명한 카페와 페르시아 카펫 상점. 카펫 상점의 아저씨는 터키에서 온 분인데 이곳에서 사업하신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상점에 들어온 사람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근처의 좋은 커피콩을 수입하여 커피를 만든다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함부르크를 다시 생각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타인의 집에서 머물면서 인간으로서 사는 게 이런 맛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 도시. 큰 도시지만 수도가 아니기에 그만큼 여유가 있던 사람들의 모습. 함부르크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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