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중앙 도서관
가까스로 비가 그친 코펜하겐. 으슬으슬 몸을 떨면서 걷다 운 좋게 만난 코펜하겐 시내의 도서관.
도서관 앞에 주차된 자전거들도 왠지 정겹다.
유럽 다른 도시들의 도서관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도서관 같다기보다는 북카페 같은 느낌이 드는 밝은 실내 탓에 처음에는 서점인 줄 알았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의 한국 도서관에 익숙해진 탓에 처음 1분간은 여기가 어딜까 혼란스러웠다.
물음표처럼 보이는 공간은 책을 검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있는 곳. 나무색 격자로 책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우면서도 그 안에 보이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책 같아 보인다. 특히나 에스컬레이터만 이렇게 두고 본다면 쇼핑몰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덴마크의 도서관은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 출판된 책이든 시민이 신청하면 구매해서 비치해 두는 서비스를 제공한단다. 어떤 책이라도 가능하다니 획기적인 서비스이다. 본인들이 낸 세금을 생각하면 이런 서비스는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세금을 바람직하게 사용하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도서관에서는 춤을 추고 피아노를 칠 수 있었는데, 이곳 코펜하겐 도서관에서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보고도 내 눈을 의심했던 장면. 도서관에 미디 장비가 있다.(어쩌면 이것도 높은 세금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곳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던 두 명의 청년 중 한 명은 헤드셋을 끼고 열심히 장비를 만지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전자기타를 치고 있었다. 물론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그들의 음악은 둘 밖에는 들을 수 없다. 미디 장비 옆에는 음악 시디들도 함께 진열되어 필요할 때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 그들만의 공간이 아닌 탁 트인 공간에서 그들만의 세계에 심취한 그들은 자칫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행복해 보였다.
미디 음악과 도서관,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한 곳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책과 댄스, 책과 피아노, 책과 영화 등의 조합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책과 전자음악의 조합에서는 왜 불편함을 느기는가. 혹시 같은 문화라도 전자음악은 B급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지. 일단 2가지만 있으면 구분 짓고 상하로 나누려고 보는 사회가 내게 심어논 나쁜 습관. 덴마크 도서관에서 뜬금없이 나의 이런 점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한 번 푹 쉬었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좋은 도서관은 독서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문화에도 열린 공간이었다. 돈이 없어 장비가 없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와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곳. 댄스 연습을 하고 악기 연습을 할 수 있는 곳. 훌륭한 사람들의 창작물을 흡수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가 가진 창작 욕구를 펼칠 수 있는 장소.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음악을 만들던 두 청년에게서 명곡이 탄생하고, 이 도서관은 초창기 그들이 고군분투했던 장소로 성지처럼 여겨질 날이 올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