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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05. 2016

소유욕, 나는 정상일까? - 『잡동사니의 역습』

랜디 O. 프로스트, 게일 스테키티 공저, 윌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리에 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 방은 항상 엉망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한때 정리 좀 잘 하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다시 물건이 한가득 있는 걸 발견하며 '그럼 그렇지' 자책하기 일쑤. 그러다 만난 재미난 제목의 책. 너무 많이 쌓아놓은 물건 때문에 죽거나, 이혼당하는 사람. 이 버릇을 고치고 싶지만 고칠 수 없어 항상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 불편한 마음을 다시 쇼핑이나 물건을 줍는 것으로 푸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의 말 못 할 고통.(대부분은 물건 때문에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 집을 나간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난 그리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닌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과, 역시 소유보다는 경험에 돈을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걸 다시 확인한 것. 

저장 강박: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한 가지 (출처: 두산백과)


"이것들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뭘 보관해야 할지 결정하려고 하지만 날짜가 지난 이 할인권마저 할머니 사진만큼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요."


평범한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에 아이린은 몹시 상심했다. 몇십 년 된 역사책을 매각물 상자에 집어넣고는 곧 울음을 터뜨렸다. "죽고 싶은 기분입니다. 나의 보물 도서 가운데 한 권이거든요. 30년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네요."

... 우리들 대다수는 자주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물건을 사용하면서 즐거움을 누리고, 그렇게 물건의 가치를 구별하여 정한다. 그러나 아이린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했다. 그녀에게서 심리 강화 요소는 물건의 용도가 아니라 갖고 있다는 관념이었다. 아이린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것은 물건들이 지닌 잠재력이었다. 가령 아이린은 300권 이상의 요리책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모든 요리책과 요리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잡동사니 때문에 가스레인지와 조리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요리책과 요리법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길 수 있었고, 요리사라는 잠재적 정체성을 즐겁게 상상했다. 그녀는 다양한 저장물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공상했다. 위대한 요리사, 박식하고 세련된 인물, 책임을 다하는 시민 등등을 말이다. 그런 물건들을 버리는 것을 꿈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장 강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가장 기초적인 정리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계획, 분류, 정리, 주의 집중 등에 대한 실행 기능이 모자란 저장 강박 증상자들은 물건들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리고,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저장 강박의 가장 상습적인 특징은, 소유자가 소유물을 바탕으로 뭔가를 하거나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소유자는 소유물을 통해 자신의 힘과 효험을 자각한다. 물건이 사람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장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대상을 소유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소유라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야기되는 열등감을 보상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제안하였다.

(내메모: 저장강박을 이야기하면 어쩔 수 없이 쇼핑중독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스트레스틑 쇼핑으로 푼다.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딱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쇼핑(물론 돈이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얻은 마음의 위안은 채 10분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도 안 쓴 물건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다시 주고, 실재 내게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다시 발생하는 스트레스틑 쇼핑으로 푼다. 악순환의 반복. 나는 실재로 이런 사람에게서 물건을 자주 받기도 했다.)


저장 강박이 궁핍 때문이라는 흔한 상식은 말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앞에서 밝혔듯이 많은 저장 강박 증상자가 풍족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궁핍과 박탈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서적 박탈 상태도 파괴적일 수 있는 것이다. 



동물 수집도 무생물 수집처럼 대다수의 사람보다 더 광범위한 지능 및 세상의 다양한 특징들에 조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우리가 면담한 저장 강박 증상자들은 비상한 수준의 연민과 공감 능력을 보여줬다. 이것은 강박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다면 칭찬을 들을 만한 훌륭한 특성들이다. 그러나 그 애착은 완고하리만치 융통성이 없었고, 가용한 자원이나 제약에 의해 변경되지도 않았다. 사랑하려는 노력이 결국 그 대상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불안, 슬픔, 고통, 죄책감은 전부 인간들이 체험하는 감정의 일부다. 사람들이 이런 감정들을 회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처절한 사투를 벌일 경우 그 결과가 매우 참혹해질 수 있다. 고통 회피는 저장 강박 행동이 발달하고 지속되는 핵심적 동기이자 원인이다. 고통을 회피하다 보면 회피된 고통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나쁘다는 믿음이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감정들에 대처하는 사람의 능력과 의지가 약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회피는 유혹적인 대응 전략이다. 잠시나마 효과를 누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결국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내메모: 마주해야 할 것을 마주하지 않고 피하기만 할 때, 역시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게 문제가 발생한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저장 강박 증상자들은 많은 물건에서 기회를 볼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났다. 동시에 그 어떤 가능성도 내려놓을 수 없는 우유부단함을 저주처럼 물려받았다.


어느 날 제임스가 주택 진입 차도에 과일음료를 쏟고서 울기 시작했다. 포장도로가 아주 뜨거워서 과일 음료가 화상을 입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잠시 동안 먹기를 중단한 적도 있었다. 먹는 행위로 음식물의 감정이 상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건이 고통을 느끼면 제임스도 아파했다. 우리는 다른 아동 저장 강박 사례 및 성인들에서도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한 어린 소녀는 주거나 버리면 장난감을 죽이거나 배신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한 중년 여성은 식기 세척기 하단부에 놓인 접시들이 위에 있지 못해서 속이 상할 거라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 상황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저장 강박 증세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내메모: 일을 그만두고 나서 이상하게 물건을 모으려고 하고, 모아놓은 물건들을 가끔씩 보면서 즐거워하는 나 자신을 보며 기겁했다.(물론 내가 모아놓은 것들은 정말로 언젠가는 쓰이는 샴푸, 세정제 등의 물건들이다.) 가볍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그것만 가지고 살아요?"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나인데... 아마도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심리적인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닐까?)



저장 강박 연구를 통해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건들을 여전히 집에 둘 것이다. 하지만 물건들도 우리를 소유한다. 물건들은 획득, 사용, 간수, 저장, 처분 등 일련의 책임을 부담으로 지운다. 지난 50년 동안 가정에 들어온 물건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우리들은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됐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서 활기 없는 대상과의 상호 작용으로 옮겨갔다. 아이들은 ㅇ제 온라인 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상호 작용하기보다는 각자의 방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애초 삶이 더 편해지고 자유 시간이 증대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팔린 물건은 정반대의 일을 수행했다. 부모 둘 다 끊임없이 증대하는 새로운 편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장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든다. 

어느 정도는 우리 문화가 상업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소유해야 할 물건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었다.


한 세대 전인 1947년, 에리히 프롬은 우리 사회가 소유물에 집착하게 될 거라고 예견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두 개의 기본적 지향 가운데 하나로 사람을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두 개의 지향이란 '소유'와 '존재'였다. 이것이 사람들의 사고방식, 감정, 행위를 결정하는 대종을 이룬다. 지향이 '소유'인 사람은 재산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획득하고 소유하려 든다. 소유는 개인의 자아의식 및 세계 속의 의미를 구축해주는 열쇠다. 프롬에 따르면, 상업주의가 동력으로 작용하는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유'를 지향하도록 조장하여 공허함과 불만을 낳는다. 반면 '존재'를 지향하는 사람을 소유보다는 경험에 관심을 쏟는다. 타인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유형의 구매 행위 속에서 더 행복한지를 묻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외식을 한다거나 여행을 가는 등으로 사건이나 경험과 결부된 구매행위가 물건 획득과 결부된 구매 행위보다 더 행복한 것을 밝혀졌다. 최근의 구매 행위에 관한 생각을 묻자 사람들은 대체로 물건 자체보다는 경험을 떠올릴 때 더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참고: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2부 <소비는 감정이다> 편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https://youtu.be/JswklI5vrBk


PS. 저장강박을 소재로 한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정신적인 병? 증후군?의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있으니, 저장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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