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의 밀실

29화 : 냄새

by 현영강

3월의 날 선 새벽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책상 위에는 수십 개의 갈색 시약병이 도열해 있었다. 나는 스포이드를 들어 앰플 속의 투명한 액체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목표는 명확했다. '침묵'의 냄새를 구현하는 것.



​사람들은 흔히 공포나 맹렬한 분노 같은 강렬한 감정만이 고유의 체취를 남긴다고 믿지만, 진짜 지독한 흔적은 입을 굳게 다물었을 때 피어오른다. 비밀을 감춘 자의 억눌린 호흡, 솜털 사이로 맺힌 식은땀이 마르며 휘발되는 미세한 쇳물 냄새. 나는 무향에 가까운 베이스 노트 위에 그 서늘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입혀야 했다. 블로터(시향지) 끝에 배합된 용액을 적신 뒤 천천히 코끝으로 가져갔다.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비릿한 흙내가 비강을 깊숙이 찔렀다. 그것은 내가 의도한 노트가 아니었다. 결코 섞여서는 안 될 불길한 향기였다. 시야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심박수가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호흡이 얕아지고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갔다. 단순한 조향 실패가 불러온 착각이 아니었다. 밀폐된 방 안의 공기 밀도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황급히 시약병들의 마개를 닫았다. 하지만 냄새의 발원지는 유리병 속이 아니었다. 내 등 뒤, 굳게 닫힌 방문의 아주 미세한 틈새로 그 이질적인 공기가 흘러들고 있었다. 누군가 문밖에서 숨을 죽인 채 서 있다. 들릴 리 없는 숨소리가 냄새라는 물리적 실체를 입고 내 목을 조여왔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목소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쇳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대답 대신, 문고리가 아주 미세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쇳조각이 맞물리는 건조한 파열음과 함께, 문틈으로 낯선 그림자가 길게 일렁였다. 내가 설계한 서사 속에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쥐여준 채 영원히 소거했다고 믿었던 인물.



그가 자신이 흘렸던 지독한 흙냄새를 뒤집어쓴 채 현실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책상 위를 더듬었다. 손끝에 차가운 유리병 하나가 잡혔다. 이것을 깨뜨려 방어해야 할지, 아니면 이 지독한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해 내 안의 스위치를 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번 챕터의 마침표는 내가 찍을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냄새는 이미 내 이성을 완벽하게 증발시켜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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