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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r 06. 2024

스위스 아주미의 한국 성탄절

 20년 전에 처음 독일로 유학 나왔을 때 인천-프랑크푸르트 간 비행시간이 약 10시간이었는데, 20년이 지난 2024년 1월 크리스마스 휴가차 방문한 한국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비행시간은 어떤 괴팍한 러시아인으로 인해 약 3시간이 늘어난 13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아, 한국!

스위스인으로 국적을 바꿀까 생각 중인 이 시점에서 갈 때마다 이리도 점점 좋아지면 이 스위스 아주미 어떡하라고. 난 국적이 있는데~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착한 사람 귀에만 들리는 멜로디입니다).


첫째 라헬이 태어나고도 한국 방문 시에 친정집에서 2주씩, 때로는 3주씩 지냈었는데, 둘째 아멜리가 태어나고는 철이 좀 더 들었는지 부모님이 힘드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지난 후 처음 방문한 2021년에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놓고, 호텔을 잡을까 말까 망설인 데에는 아직도 가슴 한켠에

 '오랜만에 한국 오면서 호텔에서 지내겠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서운해하시려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지금 반항하냐!)

그런 나의 우려 아닌 우려가 무색하게 엄마에게 전화해 조심스레

"엄마, 우리 이번에 호텔에 있을까 봐." 하는 말에 우리 엄마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래?"라고 대답했다 한다.


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그동안 힘들었구나? 혼자 오버했네.


물론, 다 큰 딸이 스위스산 혹까지 3개 달고 와 몇 주씩 부모님 댁에 있자니, 일거수일투족 관심과 사랑에서 파생된 걱정 어린 눈빛과 말들이(단골멘트: 애들 데리고 뭘 그리 멀리까지 가니, 할 일 미리미리 해놓고 다녀라.. 등등)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빠 미안)

거기에다 본인이 계획 세워서 우리 가족 척척 인솔하는 걸 즐기는 파워 J 내 남편은 가족과의 모돈 일정을 나를 통해서 알게 되는 이 시추에이션이 답답한지,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건데?", "저녁은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내일은 플랜이 뭐야?"

질문 폭탄이 되어(남편 미안) 내가 질문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물음표 테러를 행하곤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방안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숙소를 잡아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한국 방문 중 2~3일은 친정에서, 그 외에는 호텔에서 지낸다. 중간에 부모님, 언니 가족과 여행을 할 때도 있어서 그럴 땐 호텔 옆방 3개 쪼르르 잡아 옆집놀이 하는 걸 즐긴다.

결론적으로 호텔에 지내는 감상을 말하자면, 세.상.좋.다. 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처음 체크인 했을 때 방으로 매번 리셋되는 매직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도, 우리가 가고 싶은 곳들 가까이에 묵을 수 있는 장점,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호스트/게스트의 관계에서 벗어나 만나고 헤어질 때 행복하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9살, 5살짜리 두 아이를 데리고 4인가족이 한 방에서 지낼 수 있는 호텔이 서울 시내에는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방 2개를 잡기를 권유하거나. 소파베드에 큰아이를, 우리 부부가 작은아이를 데리고 자는 시스템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잡은 퀸 베드가 2개가 들어가고도 전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숙소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Henri Matisse 작 스케치화와 작품활동 중인 남편
                                                      맨하탄 분위기나던 방에서의 시티뷰                            
김도균 사진작가의 작품과 Jean Michel Othoniel


객실에 걸려있는 평소에도 팬인 독일에서 활동하는 도예가 이영재 님의 달항아리를 사진작가 김도균 님이 찍은 사진작품은 호텔 측에 가격문의를 했을 정도로 나의 취향이었다. 추후에 호텔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판매 해당 작품이 아니라는 대답이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딱 마음에 드는 달항아리 작품을 소장하는 게 나의 꿈이다.

그 외에도 로비를 오가며 보았던 장 미셸 오토니엘의 그림, 수영장 입구에 걸려있던 앙리 마티스의 스케치화도 지나다닐 때마다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외국에 오래 산 한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때 하는 국룰! 의식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먹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미 방문 몇 달 전, 그전부터 다니던 식당들, 성시경의 먹을 텐데를 정주행 하며 저장한 새로운 맛집들(오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주변 지인들의 추천 맛집 등으로 이미 한국에 있는 열흘 동안의 식단은 이미 짜여있었다. 하루에 세끼만 먹을 수 있는 내 위가 원망스러울 뿐.


저번 한국행에서부터 느낀 점이, 이건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이지만, 꼭 노포가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단골들이 끊임없이 찾는 식당들이 새로 생긴 핫하고 힙하고 세련된 곳들보다 더 맛있었다. 누군가는 나에게(자매님, 보고 있나?)

"그건 네가 이제 나이 들었단 소리야. "라고 했는데, 만약 그런 거라면 뭐, 그것도 쿨하게 인정!

맛있는 것 42년째 먹고 있는 내 혀가 반응하는 집들은 그러했다.


중앙해장에서 먹은 내장탕이 그러했고, 영동장어의 장어구이와 장어술밥, 영동 설렁탕의 꼬리 한 미원 넣고 머릿고리 반 섞은(이게 중요함) 설렁탕, 김수사의 사시미 정식, 울릉에서 고기 구워 먹은 후 먹은 육해비빔밥(네, 오타 아닙니다).... 등등

한국음식은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면 특히더! 집착하게 되는 중독성이 분명 있다! 그나저나 열흘동안 푸드파이터마냥 많이도 먹었다. 흐흐



외국에 20년쯤 넘게 살면,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기는데,

40대 초반의 애 둘 맘 스위스댁이 열흘동안 본 한국은 정말 살기 편한 곳이다. 의료보험도 의료시설도 정말 잘 되어 있고, 우리 남편 말에 의하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의 끝을 보여주는 사회란다. 내가 사는 스위스는 반면에,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하는, 조금 불편해도 (네가 참아) 조금 오래 걸려도(또 꾹 참아!) 그러려니 하고 사는 사회이다 보니 모든 것이 빠르게 착착 진행되는 한국에 오면 그 편리함에 눈이 번쩍 뜨이는 환희와 그 뒤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인권은 어디에? 하는 유럽 좀 산 아주미의 유러피언스러운 감상이 공존한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의 강점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셋째도 사람이다. 근면, 성실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성장시켰다는 건 정말 감동이다. 매년 갈 때마다 달라져 있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만큼 사회가 좋은 쪽으로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에 나쁘게 보지 않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닭이 유행하다가 오늘은 다들 마라탕으로 갈아타는 속도만큼, 어제는 거리에서 침 뱉는 게 허용되었었는데, 오늘은 무개념으로 여겨지는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는 것이니까.


인천에서 13시간가량 비행기 타고 녹초가 되어서 내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접한 처음엔 오마이! 했던 취리히행 항공기의 결항소식은 결론적으로는 13시간 비행 후 하룻밤 프랑크푸르트에서 쉬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작용을 했고, 다음날 13시 비행기를 탄지 40분 만에 우리 가족은 취리히에 도착했다.


취리히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공항 바닥과 복도에 펼쳐진 Private Banking 광고판(어서 와, 돈 있으면 우리한테 맡겨).


아, 스위스 돌아왔다!


나는 한국 갈 때도 `집`에 간다는 생각이 강한데, 스위스 돌아와서도 `아, 집에 왔다!`하고 느끼는

한국인인데 스위스 아주미, 스위스 아주미인데 한국사람이다.


집에 들어와서 불을 켜고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자마자 띠리리리 울리는 초인종 소리.

"Hey!!! 잘 갔다 왔어?!"

인기척을 느낀 우리 집 윗집에 사는 슈테판과 우리 애들 친구인 그의 아들 리안이 반가워하며 서 있다.

크리스마스 잘 보냈는지, 새해 복도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한참을 나눈 후에야 주말에 새해맞이 한잔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올해 우리 집 트리


아, 돌아왔구나. 일상으로 복귀 시작. 빨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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