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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r 12. 2024

스키는 스위스에서

아! 스키휴가...

계획할 것도, 살 것도, 챙겨가야 할 것도 많아서 몇날며칠 이거 저거 사고, 챙기고, 여기저기 예약하고, 

빠트려서 또 들락날락 사고, 바리바리 짐 싸서 이고 지고 가는 아기다리고기다리 오매불망 좌충우돌 우여곡절 스키휴가.. 

글 쓰면서 왜 이렇게 숨이 차지? 이상하네..ㅎㅎㅎ


원래 스키휴가라는 게, 특히 어린아이 둘과 하는 스키휴가란 주식투자와도 같아서,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찬란한 미래를 위해 꾹 참고 존버해야 하는 것이라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 오는 얘기가 있는데 (아니고, 스위스아주미가 만들어낸 말임) 그만큼 순간순간 이게 과연 휴가인가 극기훈련인가, 내가 지금 잠시 군대를 온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도 그 무거운 스키 애들것까지 이고 지고 걷기도 불편한 스키부츠 신고 땀이 범벅이 되어 힘이 드네, 발이 불편하네 어쨌네 불평하는 애들 입 초콜릿으로 틀어막아가며 난 분명 천주교인데 나무아미타불 염불 외면서 리프트 타고 올라가 슬로프에 서있노라면, 


'그래, 이거지.'


볼 때마다 경이로운 알프스 산 정경과 맑은 공기에 다 보상받는 기분이다. 

스위스는 가히 알프스의 나라답게 늦가을만 되어도 300만 스키인구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실제로 스위스 인구의 3분의 1이 스키를 탄다고 한다. 만년설이 있는 높은 산에서는 4계절 언제나 스키를 타는 게 가능하다니, 스키는 안 그래도 겨울이면 해가 짧고 심심한 유럽에서 겨울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필수로 배우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운동이다. 가을, 겨울이면 비도 자주 오고 날씨가 우중충한 나날들이 계속되는 시기가 있는데, 그럴 때도 리프트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면 해가 쨍 나있는 경우가 많으니 해도 보고 비타민 D 충전도 하고 여러모로 이로운 점이 많은 운동이다. 


처음에 스위스 와서 놀라웠던 광경 중 하나가, 기차역에 스키 부츠 신고 스키 들고 스키 타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에서 KTX 타고 춘천 가서 닭갈비 먹고 오듯이 이들은 그렇게 가볍게 채비해서 기차 타고 옆동네 마실 가듯 당일치기로 쓰윽 다녀오는 것이다. 

스키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맘때 흔한 유러피언

애들이 어려서, 코로나가 터져서 미루고 미루던 스키여행을 스위스인으로 태어나게 했으면 스키는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어 올해 작은애가 5살이 된 기념으로 계획해 보았다. 루체른 주는 스키방학을 2월 즈음에 하는데, 여기서 잠깐!  


맞다. 그렇다. 스키 타러 가시라고 겨울에 2주 스키방학도 한다. 그것도 스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주마다 방학을 다르게 조정한다. 스키에 제대로 진심인 나라이다! 


올해에는 큰애 학교친구네 가족과 같은 호텔에 묵으며 아이들 레슨을 받게 했는데, 우리가 간 곳은 칸톤(우리로 치면 경상도, 강원도 같은 도의 단위) Graubünden의 Laax라는 곳이었다. 숙소로는 스위스의 전통가옥  Chalet부터 우리나라 콘도 개념의 Ferienwohnung, 호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아주미의 휴가 원칙, '휴가지에서는 밥을 하지 않는다'에 의거하여 (이럴 때는 또 되게 단호함), 또 마침 같이 간 가족의 주부님도 공통된 의견이시라 우리 가족은 Halbpension이라는 아름다운 제도가 있는 호텔로 가게 되었다. Halbpension이란 숙박 외에 아침식사, 저녁식사를 포함한 서비스로 푸짐한 조식뷔페와 4코스짜리 저녁을 매일 먹다 보면 '난 분명 스키를 매일 타고 있는데 왜 포동 해지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그 어떤 스키인들 사육프로그램과도 같은 것이다. 아주 바람직하다. 


스위스 전통음식 Älplermagronen과 Après ski, 마지막 사진은 식사후 디저트로 먹는 (!) 치즈

사실 제대로 된 스키여행은 처음이라 이번에 같이 간 친구 Rolf에게 휴가 전 물었었다. 

"아침 먹고 스키 타고 그다음엔 뭐 해? 하루종일 스키를 탈 수는 없잖아."

그랬더니, 갑자기 그가 뭔가 므흣한 웃음을 지으며 하는 의미심장한 한마디,

"Après Ski." 

여기서 Après Ski란, 불어 Après, 영어로는 after란 뜻으로 원래는 after ski, 스키를 타고난 후의 모든 오후부터 저녁까지의 활동을 일컬었었는데, 점점 스키 한잔으로 의미가 축소, 변질.. 또는 진화(?)되었다고 있다. 한마디로 스키 타고나서 술 마시자 얘기다. 

실제로 이 '아프레 시'가  과해져 젊은이들이 음주 스키를 행하여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문제시되니 전 세계적으로 한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잔 되고.. 는 고질병인가 보다. 


그리하여 우리 그룹은 지식인들답게 과하지 않게 ㅎㅎ 매일 저녁 6시에 식사 전에 라운지에 모여서 Après Ski 겸 식전주로 진토닉을 한잔씩 했다 한다.

스키 타다 쉴 때 저렇게 스키를 아무 데나 놔둘 수 있는 이유는 저 스키들에 다 보험이 들어 있어서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스키 타기를 보통 스위스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늦게 시작한 편인데, 보통 스위스 가정에서는 아기가 걸음마만 터득하면 겨울에 산에 데리고 가서 엄마나 아빠가 스키를 가르친다..라기 보다는 스키신겨 질질 끌고 올라가서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 보낸다. ㅎㅎ 스키신고 볼 빨개져서 눈에 드러누워있는 2,3세 아가들 겨울에 나도 많이 봤다. 아래 사진에서도 왼쪽 편에 있는 Zauberteppich(요술 양탄자..? 정도의 말)을 타고 올라가 위에서 기껏해야 3,4세 되어 보이는 아들을 아래로 밀어 내려보냈으나 방향 조절 잘못한 아들이 거꾸로 내려가며 뜻박의 아이컨택을 하자 혼비백산하여 뛰어오시는 어머님을 볼 수 있다. 아름답고도 흔한 스위스 겨울 풍경이다. 

얘야, 그쪽이 아니다. 
라헬 어린 시절, 우리는 스키장에서 썰매를 탔었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특히 이미 스위스 여행을 해 본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스위스 스키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루체른, 제네바 시티투어쯤 쿨하게 패스하고 일주일정도 스키장에만 머물면서 산공기 마시며 스키 타고 쉬고 한잔 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하는 것이 오전에 인터라켄 찍고 오후에 레만호수 가서 더운 여름에 땡볕에 앉아서 퐁듀 먹는(참고로, 퐁듀는 겨울음식이다.) 것보다 훨씬 힐링되지 않을까? 본인의 장비를 아끼는 이들이 굳이 나의 베이비에게 알프스 설산에서 뛰노는 기회를 주고 싶다 하면 이고 지고 와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런 것 아니라면 스키장에서 장비는 다 빌릴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싸진 않다. 누누이 말하지만, 스위스는 다 비싸다. 아오! 

그래도 결국엔 다시 내려 올 거, 그 비싼 돈 갖다 바쳐가며 굳이 올라가서(우리 남편의 표현임, 틀린 말은 아님 ^^;) 다시 내려올 가치 있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  인정! 가자! 

여행 후 집에 돌아와서 라면 먹기는 국룰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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