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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사위에게 코리아란?

두유노 안동찜닭?

by 스위스 아주미

내 남편 토마쓰는 나를 만나기 전에 한국인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단다. 유럽 전역 음대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물으면 제일 좋은 걸 마지막까지 아껴둔 거라나? 아놔, 이런 발언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입꼬리 너 자꾸 눈치 없이 올라갈래? ㅎㅎ


지금이야 유럽에서 한국이 핫하지만, 내가 독일에 머물렀던 2004년부터 약 10년간 유럽 일반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중국은 아닌데 또 일본도 아닌 그 중간쯤의 어떤 아시아 나라였다. 애니콜의 Samsung을 독일인들은 삼숭으로 읽었고(숭하다 숭해) 그게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야,라고 어필하면 그제야 그래? 삼숭이 남한 거였어?(유럽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남한, 북한 엄청 편가르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을 굳이 Süd Korea 남한이라 부른다)


그런 와중에 독일인 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빠삭하고 지구상 최고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한국인 여친이 있는 몇 K-남친들이었다. 그들은 여자 친구에게 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국은 지하철에서도 핸드폰이 터진다더라, 한국은 서비스가 엄청 빠르다더라, 한국은 늬들 독일보다 훨씬 좋다더라, 뭐가 좋은진 몰라도 일단 좋다더라.. 하도 세뇌를 당해 충실한 독일 셰퍼드처럼 대한민국을 위해서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충성 정도는 다짐하는 용맹한 독일 청년들 여럿이다.


나와 유학시절 최측근이었던 양반김씨 김교수의 경우 매력적인 그녀의 눈웃음에 쓰러지는 독일 참한 총각들(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참총이라 한다) 여럿 있었고, 그때마다 그 독일 청년들은 그전에는 잘 몰랐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최소 엎드려 절, 군대만 안 갔지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한국을 자랑스러워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독일을 규탄하기도 하는 응..? 스러운 상황을 심심찮게 목격했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한국인의 사위, K-사위들 시선에서의 한국은 그때보다도 더 핫해지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지만, 셰퍼드들의 콩깍지 이탈 이슈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근 60년 만에 이건 눈부신 성장 정도가 아니라 나라가 탈바꿈을 하였으니 어느 시대의 코리아를 겪었느냐, 한국의 어떤 시절에 여친 또는 아내를 만났느냐가 이 K-사위들의 충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먼저 아까 잠깐 언급했던 매력적인 K교수 유학시절 그녀를 추앙하던 뭇 남정네들에게 코리아란?


시대적 배경: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유럽의 보통사람이 경험한 코리아란: 가끔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정은의 도발소식

단골질문: 너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인터넷 강국

삼숭이 남한 거였어? 휸다이도 남한 거라고? 대박. (현대를 휸다이라고 부르는 너희들이 더 대박)

한국에서도 스키를 탈 수 있다고? 눈이 온단 말이야?

등등


이해를 돕기 위해 K교수라는 사람에 대해 잠시 열거하자면,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에 더 매력적인 행동과 언행으로 남녀불문하고 추파 던지는 게 생활화된 끼쟁이로 한 번씩 같이 한잔 하다 보면 이 언니 나한테 왜 이래. 그린라이트인가? 착각하게끔 하는 10분만 같이 있어도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는 텐미닛 매직 보유자이다. 이 언니는 도대체 누구랑 결혼할까 궁금했는데 임자 만나 너무나 잘 살고 있는 멋진 그녀이다.


이렇게 멋진 그녀이다 보니 그녀와 사귄 몇 참총들이 그녀를 추앙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있듯이(아, 뭔가 올드하다. 잠시 현타. 아무튼 이런 말이 있단다, MZ들아!!) 사랑스러운 그녀가 온 나라, Süd Korea를 그 참총들은 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이 추앙했다.


내 남편 토마쓰에게 코리아란?


시대적 배경: 2013년 이후의 코리아

그가 경험한 코리아: 툭하면 나 우리나라 돌아갈래 하는 매운맛 여친(저요)

할 줄 아는 한국말: 기본적인 인사 외에 눈치 없어, 내가 쏜다, 니무라내무라(경상도 사투리임).. 등등

좋아하는 한국음식: 안동 찜닭, 회, 장어구이, 한우 다이닝.. 등등


토마쓰는 한국 방문을 벌써 열 번도 넘게 했는데, 한국은 그에게 오래된 전통과 가장 최신의 유행이, 고급짐과 후짐이, 예의 있음과 무례함이 극과 극을 달리며 공존하는 신기하고 역동적인 곳이다. 처음에 남편을 서울에 데리고 가면 세련되고 현대적인 강남을 보여주고 싶은 나와 달리 남편은 을지로에 가서 우와! 여기 쿨이다. 했었다. 나와 갔던 청담동의 바에서는 응, 좋으네. AI 같은 대답을 했던 그가 혼자 하루 어디 좀 다녀온다며 갔던 남대문시장의 갈치골목에서 찌그러진 양은냄비의 시뻘건 갈치조림을 먹고 와서는 자기가 오늘 얼마나 화끈한 경험을 했는지 떠벌떠벌 이야기했었다.


그랬던 을지로가 요즈음 한국에서도 핫플이라니 깨끗하고 모던한 곳에서 자란 MZ들이 노포에서 느끼는 로맨틱한 감성을 우리 남편도 느꼈나 보다. 그런 그를 데리고 백화점, 청담동 카페 투어를 그렇게 해댔었는데, 이제는 유럽 아줌마의 눈에도 다 쓰러져가는 노포에서 먹는 순대국밥이 더 이색적이고 갬성있다.


한국을 다녀올 때마다 남편은 지구상에 인간(고객님)의 편의를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나라가 있을까 싶단다. 고객님 필요할 때 쓰시라고 다음날 새벽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 어딜 가든 제깍제깍 나와서 주차를 해주는 사람들, 결제하기 귀찮을까 봐 카드 서명을 휘리릭 대신 갈겨주는 코리안 Frau 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긋한 유러피언 정신없어할 틈도 없이 뭔가가 샤샤삭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단다.


익살스러운 한국인들이 짓궂은 농담을 해와도, 친구들과 만난 와이프가 본인 버젓이 있는 곳에서 남편 디스를 해대도 우리 남편이 한국의 문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와이프가 무서워서? ㅎㅎ


한국 음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친구 1의 남편에게 한국이란?


시멘트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남편은 한국의 신축 아파트는 시멘트를 잘 못써서 층간 소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아내의 발망치 지적에 대한 자기 방어를 했단다. 평소에 신발을 질질 끌며 걸어 다니는 한국 청년들을 못마땅해했다는 그를 향해 내 친구는,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발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들 집에서 쿵쾅거리지 않게 걸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걷는 거라고!"라고 외쳤단다.


한국에 잠깐 살면서 그 수많은 어학당 중에서 굳이 이화어학당을 다니셨다는 나의 동문, 친구 2의 남편에게 코리아란?


어찌나 주도를 잘 배웠는지, 우리와 자주 만나는 이 분께서는 아직도 와인을 따를 때 두 손으로 공손하게 따르고 그보다 3살 형님인 토마쓰와 짠 할 때는 왼손을 오른쪽 팔꿈치에 댄 칼각 형상으로 옆에서 보면 외국인 두 분이서 뭐 하세요? 학교에서 한국말은 열심히 배웠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같은 반이었던 이탈리아 카사노바 알프레도 씨인지 로베르토 씨인지 하는 이와 밤마다 소주잔을 기울며 신촌을 배회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학당의 힘인지 한글을 깨친 그는 지난주에 만나기 전에

부부단톡방에 "What are we going to drink today?" 오늘의 주종을 묻는 나의 질문에 한글로 "술." 이라고 시크하게 한 글자 날려주었다.


한국 아내와 함께 산 햇수가 늘어갈수록 눈에 잘 들러붙어 있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K-사위들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꽤 객관적이 되어 앞으로의 한국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때 보면 그들도 이젠 우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래 봬도 한국인을 자녀로 둔 슈퍼맨 군단 아닌가!


어서 와, 토서방! 잘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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