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중에 사위를 본다면..

이것부터 지켜보겠소! 눈을 아주 부릅뜨고.

by 스위스 아주미

나는 지금 루체른 시내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와 있다. 하루 나만의 시간을 위해 루체른 시내에 나와 점심 먹고 글을 쓰고, 산책도 하기 위해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호텔 로비에 와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낼 때에는 관광객처럼 루체른 안에서도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곳을 누비는 걸 선호하는데, 그래야만 일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충전을 하고 웃는 얼굴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고된 거 아님. 벗어나고 싶은 거 아님.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절대 아님)


오늘 나 패션에 힘 좀 줬는데, 나는 백의민족 출신이니께 리넨 재질의 흰색 셔츠와 흰색 버뮤다팬츠를 빳빳하게 다려 입고 브라운 가죽 샌들과 라탄 재질의 토트백으로 엘레강스와 여름의 멋을 더해 주고, 주얼리로는 얼마 전에 지른 로즈 골드 소재 팔찌와 엄마 아빠가 선물해 주신 시계를 차고 나왔다. 오늘따라 왜인지 나의 착장 스토리를 읊고 싶네? 아름다운 오후예요!


호텔에 들어와 자리를 안내받기 위해 잠시 서있자 (이리오너라!)

나에게 다가오는 매니저 명찰을 단 이와 안녕, 눈을 보며 (이게 중요, 밑줄 쫙!) 인사를 나눈 후,


" I am here to grab a small bite."

라고 얘기하자

" Of course, Madame. This way."

5성 호텔의 잘 교육받은 이 답게 자연스럽게 나를 안내한다.


아, 여기 좋다! 예전에 있던 Palace 호텔을 처음 리뉴얼했을 때 와보고 실망해서 발걸음을 끊었던 곳인데, 몇 년 지나 오니 뭔가 더 체계가 잡힌 느낌? 천천히 메뉴를 훑어본다.


들어오자마자 시킨 물을 웨이터가 가져오고 나는 점심을 먹지 않은 오후 3시경에 먹기 좋을 클럽 샌드위치를 시켰다. 물을 따라주고 주문을 받는 웨이터의 행동과 말이 꽤 각이 잡히고 정중하다. 말끝마다 마담, 마담 난리다. 그에 맞게 나도 정중하게 그의 눈을 보고 주문하고 뭐 하나 해 줄 때마다 Thank you로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식당에서 식사를 할 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Thank you를 도합 최소 7번은 해야 어디 가서 나 좀 배운 여자네, 스멜을 풍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남쌩?!


그럼, 오늘 마담 소리 좀 들었으니, 이쯤에서 윤마담이 말아주는 예절 교실이나 전격 오픈해 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이 예절 교실을 자주 여는 이유는 나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요(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했다면 갬동) 그대들이 외국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바람이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청년이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인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의 나이 가늠을 못하니 그는 나를 본인 또래로 생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2시간가량(나는 2시간가량 죽치고 있을 생각이니께) 그는 그의 일자리에서 나의 편안한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 할 입장이고 나는 그의 보살핌을 받아 맛난 밥도 먹고 좋은 곳에서 글도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호갱님, 앗 오타! 고객님 윤마담이다.

이렇게 우리의 2시간은 연결 지어져 있다.


나의 겉모습만으로 그는 나의 재산 정도를 알 길이 없고(은행빚이 많습니다만), 내가 입고 있는 리넨 셔츠를 세탁소에서 다렸는지 내가 다렸는지 모를 것이며(제가 다렸습니다만), 차고 있는 팔찌가 어디 브랜드이며(음.. 이건 패스), 가족의 배경이 무엇인지(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사회적 위치가 무엇인지(전 그냥 아주미인디유) 알 리가 없다. 유럽인들은 무엇보다 겉모습, 걸치고 있는 옷, 액세서리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계급장 다 뗀 그와 나 사이에서는 오로지 샌드위치를 시킬 때 마주쳤던 나의 눈이, 싱긋 웃어줬던 친절한 미소가 나의 클래쓰를 알려주는 나의 명함이다.


샌드위치가 오고 즐거운 혼밥시간이 시작되었다. 샌드위치는 햄버거와 함께 우아한 여성이 먹기에 난이도 최상위에 속하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햄버거를 꾹꾹 눌러 입을 쩍 벌려 먹는 것도 좋지만! 그건 혼자 집에서 먹을 때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고 이런 세팅에서, 윤마담 신분에서 그럴 수는 없다.


참고로, 유럽의 좋은 식당 혹은 호텔에 가면 대부분 여성 고객에게 마담이라는 호칭을 쓰는데, 우리가 흔히 재미로 쓰는 특정 직업 군의 여성을 칭하는 이 말이 사실은 불어권에서 일반적으로 기혼 여성을 귀하게 일컫는 말이다. 그랬던 마담이 널리 퍼져서 오늘날에는 좋은 호텔이나 식당, 혹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널리 여성을 상대로 쓰는 말이 되었다.


여기서 유럽인들의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영어권이든 독일어권이든 정치적으로 아웅다웅하는 와중에도 무언가 고급진 상황에서는 프랑스의 방식을 채택해 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하나의 예로, 언젠가 독일의 5성 호텔에서 1800년대 인쇄된 메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독일어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메뉴가 불어로 되어 있음을 보고 당시 상류층, 그것도 소위 인싸가 되려면 프랑스를 따라 했었군. 생각했던 적이 있다.


저기, 그 Rindfleisch(소고기)는 좀 없어봬니, Boeuf(프랑스어로 소고기)라 부르기로 하세.


뭐, 이런 거랄까? 그나저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서고금 막론 소고기는 돈 좀 줘야 먹을 수 있는 거인가 봄, 소고기 사주는 사람 언니.


다시, 2025년으로 돌아와서.

윤마담이 지금 난이도 최상급의 3단 샌드위치를 앞에 두었는데, 한 입에 넣기 힘든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앞에 두었을 때는 입쩍녀가 되기보다는 가장 위의 빵을 살포시 들어 접시에 내려 놓고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먹으면 된다. 마지막에 남은 빵으로 접시의 지저분해진 소스를 닦아 먹으면 금상첨화.

Mandarin Oriental, Luzern

지저분이라 하니 생각나는데, 이런 소스가 많은 음식을 먹으며 깨끗하게 먹을 초능력은 나에게 없다(흰색 리넨 옷에 안 흘리면 다행). 그렇지만 걱정은 노노. 우리에게는 빳빳하게 다려진 냅킨이 있지 않은가.

이 냅킨이 만신창이가 되어 얼룩덜룩한 것도 창피한 일이요, 냅킨을 쓸 때에는 반으로 접어서 겉에서 보이지 않게 안쪽으로 입가를 톡톡 건드려 주면 된다. 냅킨 안쪽이 소스와 립스틱으로 엉망이 되는 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빨면 되잖소!

이렇게 깨끗한 척 하고 있는 냅킨 안을 들춰보면! 다시 덮어두고 떨던 우아 계속 떨면 된다.

눈앞의 경치를 즐기며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입 정도가 남았을 때, 아까 그 참한 청년이 와서 나에게 식사 끝났냐고 묻는다.


어허, 한 입 남은 것 안 보이오? 포크와 나이프로 이렇게 표시를 해 놓았거늘!


이건 요즘 뒤늦게 미스터 선샤인에 심취한 나의 머릿속에서 들린 목소리이고 그에게 살짝 웃으며,


나 아직 먹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


누가 봐도 아직 식사 중이라는 표시를 한 내 접시에 눈이 가더니 그의 얼굴이 벌게진다.

왼쪽 식기는 나 지금 식사중이요, 오른쪽은 다 먹었소! 라는 표시이다.

"아, 그러네. 천천히 먹어. 내가 실수했어."

"아니야, 다 먹어가."

라고 당황하게 한 게 미안해서 친절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더 엄밀히 말하자면 사진을 찍는 동안 식기가 떨어질까 봐 포크와 나이프의 윗부분이 붙어버렸는데(그건 또 다른 의미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음) 정석은 약간 띄어져 있어야 한다.


아무튼 사진 찍기 전 식기 위치를 본 그는 나의 신호를 못 알아차리거나 간과했고, 옛날 루이 14세 정도였으면,

"저 자의 곤장을 매우 쳐라!"


(이거 아닌가?)

.

.

아무튼 파인 다이닝이었으면 손님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한 거일 수도 있겠다.

그 순간부터 내 눈에 그는 귀여운, 아직은 좀 서툰 참한 청년 웨이터이고, 이게 내가 자유 부인인 아름다운 어느 오후여서 그렇지 괴팍한 아줌마 모드였으면, 후훗, 애송이군.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하는 어떠한 잘못된 행동들이 그에게는 기분 좋은 날에는

후훗, 호갱님 너 애송이. 하고 넘어가지만 손님 많고 애송이들에게 시달린 날에는

아놔. 너 식탁 매너도 모르는 찌질이구나?라고 속으로 무시할 수도 있겠다.


이런 얘기하기 아직 이르지만, 나는 남편 토마쓰가 인정한 50년 후도 내다보는 오바쟁이 아주미이기에, 우리 딸들이 남편후보로 누군가를 데려온다면 같이 식사하면서 이 점을 유심히 볼 것 같다.

주문은 어떻게 하는지, 감사한 마음은 전하는지, 냅킨을 무릎에 놓는 각도 하며 먹고 난 뒤 자리는 어떻게 떠나는지.. 나의 리스트는 매우 길다. 토마쓰가 미래의 유나 남편 후보가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ㅎㅎ

(윤마담의 장래 희망은 진상 장모였다 한다)


옛날 어른들이 젓가락질하는 모습을 본다고 하였던가? 그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면 이 글에 공감을 해 주실 거라 믿으며(우리 꼰대 아님, 절대 아님)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맥도널드, 써브웨이 가서,

"스위스 아주미가 빵 덮개 까서 나이프로 썰어 먹으랬어. 포크랑 나이프 내놔요!"

하시면 나 섭섭해.


에티켓의 기본은 때와 장소.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게 묻어가기도 하는 것이 배려의 최고봉이라는 것 말씀드리며 난 이만 계산하고 집에 가야 하므로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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