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아, 너희들도 딱 엄마 같은 삶을 살렴

자매품: 딱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악담 아님, 멕이는 거 아님)

by 스위스 아주미

우리 가족은 지금 여름이면 항상 찾는 이태리 북부의 Garda지역에 와 있다. 수아가 6개월 아가일 때부터 오던 이곳은 올해로 7년째로 우리 가족이 일 년에 한 번 모든 걸 내려놓고 일주일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리조트 주변으로 작은 도시가 여러 개 있어서 이태리 소도시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매 해 찾아가는 맛있는 식당들 도장 찍기 하는 맛도 있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기억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해가 지나니 그 얼굴들도 우리를 기억해,

그동안 잘 지냈니? 애들 많이 컸다! 등의 정겨운 대화도 나누는 우리의 여름 고향 같은 곳이다. 휴가지에서의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먹고, 마시고, 수영을 할 뿐인데 벌써 일주일의 반이 지났다.


이런 작은 리조트에서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수영장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행위(놀고먹는 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과 안면을 트게 되는데, 생김새와 행동만으로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예측해 보는 재미도 있다.


저쪽에 아페롤을 마시며 이야기에 심취해 있는 삼총사는 그을린 피부색과 큰 제스처로 보아 이태리나 스페인 사람들인 듯한데,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자국 내에서 휴가를 즐긴단 말이야? (굳이 다른 데를 갈 필요가 없이 좋음), 이태리인에 1표!

마지막 관문은 살짝 대화 엿듣기이다. 이러면 안 되지만 어차피 들어도 못 알아들으므로 어떤 언어를 쓰는지만 들어본다. 맞네, 벨리씨모 어쩌고 하는 거 보니 빙고! 이탈리아인들이다.


저 금발 가족은 어디서 왔나? 독일인들 같긴 한데 뭔가 부부가 키도 훤칠하니 좀 더 장난기 가득하니 대화를 나누는 거 보니 네덜란드인? 나중에 주차장에서 마주친 그 가족이 올라타는 차 번호판을 보니 딩동댕! 네덜란드인 맞고요, 곧 돗자리 깔겠습니다.


이런 인터내셔날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나 보다. 엄마는 보아하니 아시아인인데 애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하고(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대화를 알아듣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해서 집안에서는 한국어, 집 밖에서는 영어로 대화를 하기로 정했다) 아빠는 애들과 독일어를 하긴 하는데 동유럽인의 악센트가 있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는 독일어를 하는데 그 독어가 가끔 구수한 것이 독일 애들 독일어와는 다른.. 도대체 너희 어디서 왔니? 참다 참다 물어보는 이들이 꽤 자주 있다.


언어라는 게 어떤 언어를 하는 순간 그 세계관에 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위스에서는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스위스인들의 세계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기가 힘든 우리 가족이지만, 반대로 이런 인터내셔널 한 세팅에서는 아시아, 독일어권, 영어권 그리고 동유럽인들의 세계관까지 합집합의 영역이 널리 퍼져 있는 게 또 우리 가족이다.


올해 휴가에서는 큰애 유나가 또래의 아이를 사귀어 그 가족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Freyda라는 아이와 그의 가족은 노르웨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태리로 와 차를 대절해 리조트로 왔다 한다. 여름마다 북이태리로 여행을 오는데 이 리조트는 처음이라며, 너무 맘에 들어서 내년 이맘때로 방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한다. 리조트 선배(혹은 꼰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의 맛집도 공유해 주고, 몇 호실이 아이들이 드나들기에 가장 편리한지 등등 몇 가지 팁들을 전수해 주었다.


유럽인들은 휴가지에서 철저히 아무것도 안 한다. 본투비 코리안인 내가 유럽 생활 20여 년 만에 배운 것:

휴양지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광합성하며 30분 이상 누워있기(조급해하기 금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꼼짝 않고 멍 때리기(핸드폰 만지기 금지)

여행지에서 특별한 일과 없이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멍 때리고 또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무한 반복

모든 걸 설렁설렁 (열심히 놀기 금지)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유러피언들 역시 좀 놀아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쉴 때는 전원을 확실히 뽑아버리는 법을 안다. 이들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루 종일 베짱이처럼 누워있다 한 번씩 눈이 마주치면 Freyda의 엄마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 휴가지에서 만나 아무런 연고 없는 두 사람이지만 딸들이 친구가 되고 며칠 동안 얼굴을 보다 보니 집에 갈 때쯤에는 꽤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수다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우리에게로 다가와, 이럴게 아니라 아페롤 한잔씩 하면서 얘기하지? 오지랖을 피우며 주문해 준 우리 남편도 한몫 분명히 했다. ㅎㅎ


어느 날 그녀와의 대화,

"이런 좋은 곳에 와서 쉬고 있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지 않아? 뉴스 틀면 나오는 무서운 소식들이 마치 거짓말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맞아. 특히 스위스도 그렇겠지만 노르웨이도 같은 유럽 안에서도 오아시스 같은 나라라, 우리가 복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아.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기후 문제든, 경제 이슈든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 우리 애들의 미래가 걱정이야."

" 노르웨이에서는 너희 세대보다 Freyda 세대가 더 살기 힘들 거라고 예측해?"

"응, 우리 아이들이 내 세대가 누린 것 그대로만 누려도 엄마로서 행복할 것 같아."

"오, 참신한데?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생각이야. 난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살아야 한다 했거든."

"뭘 더 얼마나 나아져야 하는데? 이것도 충분하지 않아?"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이 두 팔을 활짝 편다.

"그건 그렇네."


그녀에게 내 삶을 전부 들려줄 수는 없지만, 노르웨이에서 자란 그녀와 대한민국에서 자란 나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할 테지만 한 번쯤 되짚어보게 된다.


그렇네, 나 인간 윤나영. 8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나, 물론 대한 민국이 노르웨이의 경제력을 따르려면 그때나 지금이나 가랑이 찢어질 테지만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요, 어릴 때는 별다른 걱정 없이 하라는 공부만 하면 되었고, 최대 고민이 우리 엄마가 나에게 Guess 청바지를 사 줄 것인가 말 것인가였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인생의 전성기 찬란한 20대를 보내고 아빠 장학금으로 유럽으로 유학 나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다, 남편 만나 스위스에 정착하여 스위스인 2인을 양육 중이니, 그러게? 내 인생 나쁘지 않은데 왜 이렇게 우리 애들은 나보다 조금 더, 좀만 더 나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걸까?


그녀와 나의 차이는 우리의 윗대에서부터 발생한다. 2차 세계 대전은 다 같이 겪었다 퉁치고, 하아 우리나라는 항상 한국 전쟁이 발목을 잡는다 말이지. 우리 한국 전쟁중일 때 노르웨이는 벌써,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을 이루며 사회 복지를 강화하고 국제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는 노르웨이가 현대 국가로 발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랬다 하고,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어렸을 때 학교에서나, 매스컴에서나 귀가 닳도록 들었던 얘기, 이쯤 되면 슬로건인 줄)에서 6/7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치밀하게 짜가며 경제 도약을 꾀하던 대한민국과 달리 노르웨이는 1996년 자국령 북해 앞바다에 석유가 매장된 것을 발견하며, 심봤다! 산유국이 되어 그야말로 땅 파서 돈을 버는 부자 나라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땅을 파봐라, 10원 한 장 나오는가! 네, 나옵니다).


그 외에도 인구, 자연환경, 기후 등 여러 가지 레이어가 있겠지만, 그 와중에 경제력까지 갖추었으니 Freyda의 증조할머니가 우리 유나의 증조할머니보다는 여유롭고 평탄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은 뭐 안 봐도 각 나오지 않는가!

Freyda의 증조할머니 포함, 할머니, 또 엄마까지 내 삶이 낫배드였으니 굳이 딸에게,


"딸아, 너는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저고리 옷고름으로 훔치며 눈물 섞인 바람을 전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거 참 swag 부럽네.


시간이 흘러 이태리 북부의 리조트에서 노르웨이에서 온 Freyda엄마와(온갖 개인사를 다 깐 사이인데 정작 이름을 까먹...) 한국에서 온 윤나영과의 삶이 이젠 얼추 견줄 만 해졌으니, 우리의 차이는 내 삶이 나쁘지 않았으니 요대로만 가다오 하는 여유 쩌는 자세와 공부도 열심히, 대학도 유학도 열심히, 사는 것도 열심히! 어?! 뭐든지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 뭐 차이 별로 안 나네. 할 수 있어! 와이 낫?!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우리 엄마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나는 내 행복을 찾아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야겠다.


딸들아, 딱 엄마같이 행복한 삶을 살렴!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능력 있고, 좀 더 부유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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