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10%보다 불완전한 90%

수련의 과정엔 완벽함이 없다

by 이소연


올해 졸업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시작한 동네 요가원에서의 수련은 어느덧 3개월을 훨씬 지났다. 나름 브런치에 나의 요가 수련이야기를 꾸밈없이 이야기했다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조금 더 멋있게 묘사된 것 같아 이번엔 단물을 쏙 빼고 올해 요가 수련을 하며 느낀 부분들을 한번 가감 없이 이야기해 보겠다.


요가를 고등학생 때 처음 알게 된 이후로 공백기까지 포함하여 요가를 수련한 지 벌써 9년이 되어가고 내년이면 벌써 10년으로 접어들어간다. 나름 오랫동안 요가를 붙잡았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그러한 세월이 흘러갔다. 요가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요가원으로 수련하는 걸 굉장히 즐긴다는 오해를 하곤 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나 어느 정도는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기에 수련을 게을리하고 어쩔 땐 하고 싶지 않고 요가원을 빼먹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요가를 그렇게나 오랫동안 했는데도 여전히 요가를 빼먹고 싶다! 매일 아침마다 나는 또 다른 나와 엄청난 내적 씨름을 하곤 한다.


딸내미의 게으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 우리 엄마는 너무 내가 정신이 빠져있을 때 한 번씩 일침을 날리곤 한다.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 그러면 정말로 요가원 등록을 빼버릴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나가곤 한다.


그럼에도 늘 항상 게으름의 순간은 찾아오고 아침요가 말고 저녁요가로 바꿀지 내일 가는 걸로 미룰지 갈팡질팡하는 내가 있다. 요가 지도자 과정에만 몰두할 때와 완전히 다른 현실 생활 속 요가 수련이란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정말 솔직하고도 담백한 여느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 나의 고군분투의 일지다.


그러면 게으름 피우고 수련을 빼먹어도 괜찮다는 말이 하고 싶은가? 어느 정도는 맞는데 어느 정도는 아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대표적으로 운동을 이상적인 완벽한 몇 달의 계획표를 짜고서 하루라도 삐끗하거나 생각만큼 수월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이미 이 계획은 글렀다며 나머지 남은 일정도 포기하곤 한다. 너무나 완벽하고도 이상적인 계획인 탓에,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너무나 게으르다며 자책하면서 역시 운동은 나와 안 맞는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 버린다.


일단 그 완벽주의자 성향부터 버리고 다시 시작해 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완벽해지고 싶은 강박이 있다. 꾸준히 열심히 성실히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의 멋진 모습을 마구마구 뽐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고역이지 않나? 나 또한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부터 도를 닦는 인고를 견뎌야 한다. (요즘은 9시에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일어나는 것부터 성공했다면 이제 절대로 완벽히 이행될 리 없는 계획을 지우고 다시 차근차근 접근해 보길 권한다. 특히 요가수련을 결심했다면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을 봐야 한다. 단기간적으로 몸이 급격한 변화를 겪기 힘들다. 천천히 돌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보며 수련에 임해야 행복한 요가를 만날 수 있다.


나의 경우엔 1월 말부터 지금까지 3개월씩 주 3회로 요가원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중간중간 볼 일이 생겨 부산에도 다녀오고 여러 일정 때문에 2주를 통으로 날려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벌써 5월 중반이다. 벌써 몇 개월이 훌쩍 흐른 것이다. 아예 요가를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수련의 시간이 쌓인 시점이다. 그리고 지도자 과정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특정 아사나의 깊이감이 생겼다는 걸 실감하기도 한다.


완벽한 3개월을 목표로 달렸다면 꾸준히 수련을 다닐 수 있었을까? 그건 절대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한다. 계획을 나 자신보다 더 앞세워버리면 계획엔 '내'가 없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항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은 불규칙하고 조금은 성실해지지 못해서 몇 번 빼먹더라도 다시 차근차근 수련해 보길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요가원 수련을 몇 번 빼먹어 요가 선생님을 마주하기 어려웠던 이들을 위해 나의 부끄러움을 용기 내어 꺼내어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불완전한 수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놓지 않음이 중요한 걸 경험했기에.


요가 수련을 꾸준히 하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수련에서의 즐거움을 다시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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