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계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든다
요가를 어느 정도 하다 보면 고난도 아사나가 존재하고 각각의 아사나에게도 단계별 접근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의 유연성과 상태에 따라 접근하기 수월한 아사나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도 경험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욕심이 스멀스멀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이 멋있고 쉽게 어려운 동작들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몸에게 자괴감을 느끼고 질투감으로 점철된 수련을 하기 쉽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수련한 적이 많다. 특히 지도자과정을 밟으면서 그 괴리감은 엄청나게 컸다. 함께 지도자과정을 밟았던 동기분들 대다수는 내가 할 수 없었던 아사나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1년간의 공백기가 치명적으로 다가왔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배로 뻣뻣한 몸에 공백기를 가졌으니 아사나를 할 수 있는 실력은 다른 분들에 비해 아주 형편없었다.
지도자를 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아사나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본인조차도 아사나를 잘 해낼 수 없다면 누가 믿고 따르려 하겠나. 내가 어떻게 누구를 지도할 수 있겠나. 재작년의 나는 나의 한계를 꽤나 직관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인정했다. 남들의 두 배, 세배를 수련하며 나의 아사나의 깊이를 넓히려 애썼다.
그리고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참으로 눈부셨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한계점이 분명했기에 꾀를 부리지 않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가졌던 뻣뻣함은 내가 나를 진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어줬으며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요가에 미치게 해 준 동력이 되었다. 성실함과 열정으로 뒤범벅이었던 나는 요가원에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던 요가에 미친 자였다.
지금의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 뻣뻣함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몸을 피고 움직이며 가동성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나의 경직된 몸이 요즘은 참으로 감사하다. 나를 더욱 나답게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몸이 이토록 움직이기 쉽지 않기에 나는 잠시 요가 수련을 빼먹고 싶다가도 다시 수련하러 길을 나선다.
오늘의 나와 그다음 날의 나 그리고 일주일 후의 나는 너무나 다르다. 나의 뻣뻣함이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극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내가 더욱 요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요가가 내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나는 나의 경직된 몸을 통해 느끼고 실감한다.
유연하고 몸을 움직이기가 쉬웠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유연한 사람들만이 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요가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가 지닌 한계점들이 각자를 더욱 개성 있게 만든다는 점도 인지했으면 한다. 모두가 같은 아사나를 하지만 다른 아우라, 에너지 그리고 모습들이 참으로 멋있고 빛이 나니까 말이다.
그 한계를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바라보게 되고 나의 변화를 인지하게 되고 우리 모두가 각기 다른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니. 오늘도 나의 뻣뻣함과 맞서기도 때론 같이 함께하며 요가에 스며들어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