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이 곧 역사다

몸의 지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

by 이소연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요가 수련은 꼭 크고 유명한 요가원에서 수행해야 깊이감이 더 생기고 나의 수련의 발전도가 훨씬 올라갈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리고 나의 4학년 졸업작품 제작과정을 거치며 지도자 과정을 거쳤던 요가원은 잠시 문을 닫았고 나는 새로운 요가원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우리 집 근처의 작은 요가원은 일단 접근성이 매우 좋았고 시간대도 오전과 오후가 적절히 분배되어 있어서 어떤 시간대를 들어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요가원에 다니는 초반엔 약간의 의구심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동네 요가원에서 다녀도 과연 나의 수련의 질이 높아질까란 막연함 때문이었다.


1월 25일부터 어찌 됐든 시작한 동네 요가원에서의 수련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새로운 깨달음과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다. 바로, 지도자 과정 속에서 숱하게 들었던 몸의 지성이 머리의 지성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머리의 지성은 때론 착오를 일으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변질되기도 하고 퇴색되기도 한다. 머리로 모든 걸 이해하는 건 오만이다. 우리는 많은 걸 알 수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몸의 지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고 뛰어나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아사나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선물처럼 될 때가 있다. 바로 그러한 순간이 내가 요가하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성취감이다. 우리의 몸은 시시각각 매일이 다르지만, 착실하게 시간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만큼 함께 깊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은 기존의 범위에서 벗어나 좀 더 역동적이고 어려운 동작들을 가능하게 변화한다. 그러한 조건은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이다.


물론 항상 잘 되던 동작이 어느 날 갑자기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조급해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우리의 몸은 아사나의 성공을 기억한다. 어느 날 실패한다 해도 그 아사나를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그날의 상황, 몸의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이 요가원에서 빈야사뿐만이 아니라 아쉬탕가와 하타요가를 함께 배우고 수련하고 있다. 아쉬탕가는 정해진 시퀀스 동작들을 수행하면서 계속 계속 깊어지는 나의 아사나의 깊이를 경험하고 하타요가에서 빈야사보다 더 긴 호흡을 가져가며 나의 몸에게 충분히 깊어질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선사하는 연습을 한다.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과정에 익숙했던 나로선 굉장히 흥미롭고 새로운 요가였다. 그리고 이 요가 수련을 꾸준히 한 덕에 나는 지도자 과정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깊어진 나의 아사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1. 우르드바 다누라사나가 더 이상 겁나지 않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는 내게 항상 도전적인 자세였다. 나는 하체가 굵지만 의외로 하체 힘이 부실했는데 옛날부터 잘못된 자세와 걸음걸이 탓에 항상 허리를 꺾는데 익숙했고 그로 인해 다리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해 다리가 굵어졌기 때문이다. 강력한 하체의 힘이 뒷받침이 되어줘야 안정적인 후굴이 만들어지고 코어의 힘을 통해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 자세를 할 때 나는 항상 남들보다 발과 무릎의 각도를 활짝 벌리고 진행했다. 그리고 손과 발의 간격은 참 멀었다. 드롭백과 컴업과도 같은 난이도 있는 접근법을 시도했던 적이 있으나 선생님의 핸즈온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려웠고 허리를 자꾸 무의식 중에 꺾는 바람에 허리가 아팠다.


하지만 요즘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할 때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무릎과 발의 각도는 많이 안정적으로 돌아왔고 등의 근육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면서 팔꿈치를 모아 상체를 들어 올리는데 옛날보다 덜 힘들다. 또한 옛날보다 훨씬 강력해진 하체근육 덕분에 유지시간도 길어지고 손과 발 간격도 많이 좁혔다.


이 기세라면 어쩌면 올해 안에 스스로 드롭백과 컴업을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를 푸시업 하듯 올라갔다 내려가는 동작도 이젠 수월해졌고 발과 손을 한 발짝씩 안으로 들여오는 연습도 계속하다 보니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자체 깊이감이 이전보다 더 깊어졌다. 하체가 단단해지니 허리도 덜 꺾여서 후굴에 대한 공포감이 많이 사라졌다!


2. 시르사사나가 더욱 견고해졌다.


시르사사나는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보다 내게 더 먼저 다가왔던 아사나였기에 나는 이 아사나에 대한 애정이 좀 더 있는 편이다. 하지만 작년 1년 동안 틈틈이 내 나름대로의 수련을 했어도 요가원에서 다시 만나는 시르사사나가 참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1월부터 찬찬히 기본동작을 연습했다. 그랬더니 시르사사나 유지시간이 길어질뿐더러 요가 지도자 과정 속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었던 하프 밴드도 성공했다.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항상 다리를 천천히 바닥에 내리는 건 너무 어려워 꿈도 못 꿨는데 요즘 이 하프 밴드를 통해 코어와 복부의 단단한 힘을 경험하고 있다. 하프 밴드를 성공한 이후 하프 밴드에서 유지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하프밴드에서 다시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과정은 너무나 어렵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의 지성이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시르사사나에서 응용동작을 하는 것 또한 예전보다 많이 안정적으로 변했다.


3. 유연성이 생기고 있다.


다리 찢기는 여전히 잘 못한다. 전굴자세도 여전히 도전적이다. 다른 요가강사 분들과 비교하자면 나는 아직도 뻣뻣한 축에 속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몸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조금씩 전굴 하는데 힘을 뺄 수 있다.


조금씩 하누만 사나 가 편안해지고 있다.


조금씩 밸런스 아사나에서 다리를 더 필 수 있다.


나의 다리 뒷면이 조금씩 열리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 감사하고도 놀라운 변화는 우리 집 근처 조그마한 요가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요즘에서야 실감한다. 내가 수행하는 그 어디든, 그 규모에 상관없이 내가 가는 곳이 집이 되게 하라. 내가 수행하는 그 시간은 장소의 규모와 상관이 없다고. 내가 몰입을 하여 무아를 느끼는 곳이 작은 장소라 할지라도 그 장소가 가지는 가능성은 무한함이다.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공간의 규모가 주는 느낌과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이 조그마한 요가원은 내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내가 요가를 할 수 있고 수련을 하며 계속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요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몸의 지성은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영험하다.


그러니, 몸의 한계가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한계선을 선명하게 그어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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