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원 전액장학금을 주는 이유
다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미국 대학원은 그 학비가 엄청나기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나 또한 칼아츠 동계 연수 때 대학원을 꿈꿨으나 진작에 포기했더랬다. 그 엄청난 학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나는 사실 빨리 취업해서 내 돈을 벌고 돈 쓰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지도 교수님께서 졸업 상영회 때 미국대학원을 알려주셨고,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단 기회를 소개해주셔서 덜컥 준비해서 붙어버렸다.
미국 대학원 전액장학금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RA (Research Assistant)와 TA (Teaching Assistant) 다. 리서치는 말 그대로 교수님을 도와서 리서치를 돕는 일을 하고 TA는 담당 배정 과목 교수님을 도와 채점을 하거나, 수업을 진행하거나, 수업 진행에 도와주는 일을 한다. 리서치는 자료조사와 발표 등을 하는 느낌이라면 TA는 직접 학부생들처럼 수업에 참관하여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교수님을 실질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TA 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토플 스피킹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으로 한 번에 PASS 하거나, 혹은 대학 자체 내의 영어 시험을 통과해서 되는 방법이 있다. 그 이전에 TA는 전액 장학금으로 전액 학비 면제이기 때문에 경쟁이 아주 치열하며 상위권으로 들어가야 그다음에 자격이 주어진다.
RA는 TA에 비해 영어 점수가 엄청 높을 필요는 없다고 들었다. 보통 이공계열 쪽에서 많이 선호하는 편이라고 들었으며, 리서치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중에 논문을 쓸 때 도움된다고도 한다. 나는 그런 개념도 없이 일단 TA를 하고 싶다고 냅다 질렀다. 그리고 영어 때문에 첫 학기를 눈물범벅으로 보냈으나 나중에 그때의 심정이 담긴 글은 차차 올리기로 하고... (너무 힘들어서 브런치에 하소연하듯 올린 적이 있다가 지금은 내렸는데, 그때의 절절함이 지금 다시 봐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토플 스피킹 점수가 그다지 높진 않았지만 TA 가 되기 위한 Micro teaching test를 볼 수 있는 여건은 되었기에 그 테스트를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옥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 테스트 때문에 지금도 항상 영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게을리하지 않고 영어 논문과 영어 책을 읽으며 계속 감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 테스트를 준비하며 한 학기 동안 들었던 영어 워크숍 내용들이 생각보다 알차서, 어떤 영어 문법을 중요시하는지를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TA 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췄고, 현재 TA 1년을 지나며 2학년이 되는 지금. 나는 이제 다음 학기부터 메인 강사로서 새로운 챕터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TA 가 하는 일을 크게 나열해 보자면, (1) 교수님의 수업 진행을 돕는 역할 (2) 교수님 대신 강의 하기 (3) 채점하기 가 있겠다.
(1)과 같은 경우엔 나는 모션 그래픽 수업땐 학생들이 컴퓨터 툴을 다루다가 모르는 점이 생길 때 도와주고 질문에 응답하는 역할을 했었고 파운데이션 (2)라는 과목에선 교수님의 촬영장비 세팅과 수업 시작하기 전 책상 정리 등을 도왔다.
(2)는 말 그대로 교수님을 대신하여 직접 Guest Speaker 로서 수업을 진행하는 걸 뜻한다. 가끔 교수님께서 리서치 여행으로 빠지실 때가 있고 아니면 교수님이 보는 앞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할 때가 있는데, TA 라면 어차피 혼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한 번쯤은 나가서 수업 가르치는 걸 해야 한다.
내성적인 한국인이라면 이 부분이 참 고역이 아닐 수 없는데, 나 같은 경우엔 영어 테스트로 앞서 지긋지긋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티칭 할 때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고 속으로 '너네가 못 알아들으면 이상한 거지 알아서 노력하렴'이란 자신감으로 대처해 나갔다.
언어는 자신감이라고, 현지 학생들도 바로 눈치챈다. 아, 이 사람. 외국인인데 심지어 영어도 떨리기까지 하네. 그러면 학생들은 기싸움에서부터 이기고 들어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동양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라 할지라도. 내가 수업을 이끌고 나갈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너네 한국말 못 하는 것보단 낫잖니 라는 당당함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의외로 학생들은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일단 지르고 본다는 느낌으로 가면 나중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익숙해지기도 한다. 첫 학기에 2시간 수업을 이끌었고 두 번째 학기엔 티칭만 무려 3번을 나가서 했다.
(3)은 TA의 꽃, 학생들 과제 채점이다. 예술학과 특성상, 학생들의 과제를 어떤 기준에서 어떤 점을 잘했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에 대해 일일이 서술형으로 피드백을 써줘야 하는데 이게 10명이 넘어가면 그렇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수님들께선 주로 조교에게 과제 채점을 많이 맡기신다. 나의 경우에도 모션 그래픽 때 3번 정도 과제 채점을 하였고 두 번째 학기땐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채점을 했다. 뒤로 갈수록 힘들어져,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했다는 알림이 뜰 때마다 나 또한 무서웠다. 학생들은 교수님께서 과제 제출할 때 공포를 느끼겠지만, 그건 조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나 또한 공포를 느꼈다.
그럼에도 얻은 건 참 많았는데, 어떻게 학생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식으로 피드백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홀로 티칭에 나가게 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럼에도 서술형 피드백은 여전히 힘들다.
미국 석사과정임에도 내가 있는 대학원은 전액장학금 조건으로 RA와 TA 자격을 준다. 그러나 미국 주립대는 아트스쿨과 다르게 공부량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1년 지내본 바, 왜 미국대학원에서 전액장학금을 준다는 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영어로 된 논문을 읽고, 토론하고, 발표하고, 심지어 조교로서 수업 진행을 돕는 일까지 수행할 자신이 있다면 당연히 TA를 노리라고 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보길. 왜 미국 대학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줄까? 하고. (그만큼 장난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늘 감사한 하루를 지내며 공부를 하고 있다. 다음 학기엔 얼마나 혼돈의 첫 티칭을 경험하게 될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지내리라 기대하며 누군가 미국 대학원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