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굴'을 잘 못하는 이유

나는 그동안 나의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

by 이소연

나는 요가를 할 때, 잘하는 동작보단 잘하지 못하는 동작이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내게 제일 곤혹스러웠던 동작은 전굴 동작이었다. 복부를 나의 허벅지에 붙이고 계속 뒷면을 늘려야 하는 동작이 내겐 너무나 가혹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대표적인 전굴 동작 '우따나아사나'가 제일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기에 전굴 동작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하면 할수록 몸의 가동성이 넓어져 더욱 유연 해지는 느낌이라 괜찮게 느껴졌다. 그러나 요즘 전굴 동작을 하면서 전보다 더욱 잘 움직여지는 몸을 스스로 보면서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 배웠던 차크라 중 배웠던 내용 하나가 나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걸 알아차렸다.



몸의 뒷면은 '과거'를 상징한다.


전굴 동작은 몸의 뒷면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동작이다. 이 동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물론 이는 철학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참으로 오묘하고 참으로 내게 잘 와닿는 이야기라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과거를 몇 차례고 곱씹어보고 생각을 하며 때때론 병적으로 집착했기 때문이다. 상처 받았던 과거가 갑자기 떠올라서 몇 시간 동안 현재의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과거에 하지 못했던 말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불필요한 기억을 만들어버린 것 같아 나 스스로를 죄책감에 빠지게도 했다.


올해 초,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듣기 시작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계속 나의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나를 마주하는 과정을 밟았다. 요가를 수련하면서 나의 상태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과거에 너무 많이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알아차렸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나는 현재의 나에게 너무나 소홀했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방치하고 외롭게 했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어리석게도 그동안의 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과거의 굴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현재에 머무름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요즘엔 계속 현재의 나와 함께하려 노력한다. 오늘 날씨가 좋으니 행복하고 오늘 수련에 나갈 수 있어 행복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예전과 다르게 하니 전엔 알 수 없었던 현재의 나의 상태가 잘 보이고 스스로 외롭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전보다 전굴이 잘 됨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놀랍다. 정말 경이로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


예전보다 더욱 잘 내려가고, 더욱 허벅지와 복부가 잘 붙으며 더욱 뒷면의 열림이 깊어지는 나의 몸을 보며 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 나 지금 '과거'로부터 많이 벗어났구나.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구나.


나는 여전히 나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가끔은 '과거'가 나에게 손짓을 하며 내게 오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요가 수련을 하면서 싱긋 나의 과거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나의 과거야. 나는 이제 너에게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향해 달려갈 거야.


단순히 수련을 많이 해서 오는 결과라기보단 나의 마음이 달라짐에 몸이 응한 것이라 믿으므로. 나는 내 생각보다 많이 단단해졌다는 걸 전굴 자세를 통해 새삼 느끼고 깨닫는다. 이제 과거를 되새기느라 현재에 소홀히 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은 질리도록 했다. 그리고 충분히 후회했다. 그러니 이젠 현재의 나와 함께 앞을 보며 나아간다. 나의 뒷면은 이제 많이 열렸고 열리고 있고 열리는 중이다. 그건 아마도, 나의 마음이 나의 과거로부터 많이 벗어남을 의미하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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