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확실한 사랑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꽤나 엄격한 편이다. 남들의 고민이나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줄 땐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이해심이 많아진다. 그러나 나 자신에겐 그런 너그러움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향하는 너그러움은 자칫 잘못하면 나태, 오만함으로 변절되기 쉽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건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의 출발은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이고 그다음은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를 요가 수련으로 대입하면 이렇다.
나는 남들보다 뻣뻣하고 유연하지 않다.
나의 몸은 운동을 한 만큼 빠지고 먹는 만큼 찐다.
나의 장점은 성실하다는 점이고 실행력이 좋다는 것이다.
요가를 안 한 1년 반의 공백기가 있기에 남들보다 몸이 굳어있다.
나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듣기 전 1년 반의 요가 공백기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요가를 그만둔 때가 없었을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외부적인 요인과 나의 내적 상황이 요가를 계속할 수 있는 요건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이별한 세월이 1년 반이었다. 그렇게 나의 몸은 계속되는 학과 생활과 나의 일상에 치여 점점 요가로부터 얻었던 자유로운 곡선에서 뻣뻣한 직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변화는 참으로 기분 나빴다.
원래도 유연한 체질이 아니었지만 공백기까지 더해져 나의 몸은 일반인보다는 조금은 나을지도, 하지만 요가강사로선 턱없이 부족한 몸이란 걸 자각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확신이 된다. 두 번째 휴학 후 지도자 과정을 수강하러 등록한 처음 가보는 새로운 요가원에서 수련했을 때 원장 선생님들은 나의 몸을 보고 객관적인 진단을 내려주셨다.
"하루에 2 타임씩 듣는 게 어때? 아직 근력과 유연성이 약해. 많이 부족하다."
"인 요가 수업도 같이 들어. 유연성은 근막의 가동성과 관련이 있어."
막연히 열심히 해야겠다에서 이젠 해야겠다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첫 일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3~4개월은 하루에 2타임 씩 점점 3타임, 때론 4 타임씩 들을 때도 있었다. 요가강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지도자 과정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요가를 할 것이라면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할 운명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듣기 싫은데 억지로 수련을 온 건 아니었다. 첫 일주일은 새로운 요가원의 수련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한 타임만 들었지만 그 이후로 수련 빈도수를 늘리면서 수련에 재미를 붙였고 나중엔 거의 요가원에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36회를 채워야 하는 요가 시트지는 뒷면을 넘어 더 이상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졌고 나의 수련 횟수는 100회를 넘어섰다. 3개월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아사나들이 이젠 시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몸은 변화에 응했다.
지도자 과정을 하며 다녔던 요가원은 주로 요가강사분들께서 수련을 하러 많이 오시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하고 한 타임만 들어도 기진맥진하다. 역동적이고 어려운 자세가 많이 들어가며 기본 1시간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따라 하기엔 상당히 지친다. 나도 처음엔 헉헉 거리며 따라가기에 바빴고 주변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감이 하락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주저앉지는 않았다.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내 상태를 진단할 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예전에도 해왔던 거잖아.'라고 막연하게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현재에 이를 수 있었을까. 나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자비로움, 자비심이 나를 성장하게끔 이끌어 주었을까. 원장 선생님들께서 해주신 말씀을 새겨들으며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창피해서 그만뒀을까.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에. 그렇기에 그런 나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했고 원장 선생님들의 조언도 뼈 아픈 사실도 덤덤히 받아들였다. 모두 맞는 말이고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기에. 남들의 시선과 남들의 화려한 실력에도 계속해서 요가원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었다.
정말로 문제 있는 건 대책 없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라서 괜찮다는 건 문제가 있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자꾸만 주관적으로 판단하려 하고 좀 더 봐주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나를 저 멀리서 스스로 바라봐줘야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 명확하게 어떤 사람인지가 보이므로.
관대함은 당장 필요하지 않다. 남이 아닌 나라서 괜찮은, 객관적인 확인만이 스스로에게 든든한 지탱 목이 되어주고 어떠한 사실에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먼저 나 스스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마주함이야말로 나에 대한 사랑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처음엔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을 때 내가 제일 못 했다. 여러 아사나를 하면서 부족했다. 시선들이 썩 그리 곱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요가원에서 수련을 남들보다 배로 뛰었다. 그렇게 나의 몸으로 직접 증명했다. 나는 이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여러분들과 함께 요가적 여정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라고.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라고.
이제는 동기 선생님들과 간간히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고 요가원에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분들과도 많이 안면을 트고 인사와 근황을 묻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한 타임만 듣고 갈 때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시곤 한다.
" 오늘은 더 안 듣고 가세요???"
나는 그럴 때마다 미소 지으며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뿌듯하다. 그동안의 수련이 나의 태도를 보여주므로. 그리고 그 태도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므로.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거리 두고서 멀리서부터 바라봐줄 것이다. 너무 가까우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