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기를,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요가 수련을 하면 알게 된다. 요가엔 무수한 아사나 (요가 동작)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동작들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있고 동작들의 에너지가 다르며 동작들이 요구하는 유연함, 근력이 똑같지 않다. 그저 묵묵히 꾸준하게 수련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근력과 유연성이 높아져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시간, 횟수,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간혹 남들이 하는 화려한 아사나의 모습에 취해 무리하게 단 기간에 그 동작을 시도하다가 다치셨다는 분들도 계신다.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본인만이 안다.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허락을 했는지, 어디까지 도전해도 괜찮을지를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싸인을 보내온다. 그러나 몸이 보내는 언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몸을 함부로 다루게 된다면 우리는 더 큰 화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요가 수련을 할 땐 남들의 화려한 아사나를 보는 것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나의 경우엔 절대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사나가 3개 존재했다. 시르사 아사나 (머리 서기), 카카 아사나 (까마귀 자세),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아치 자세) 이렇게 3가지였다. 그리고 각각 시도할 때마다 나의 한계선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에 카카 아사나를 할 시 손 끝까지 힘을 보내지도 못하겠고 잘 못하다가 머리나 턱을 바닥에 찧을 것 같았고 팔이 나의 다리를 지탱도 제대로 못했다. 처음에 시르사 아사나를 할 시 다리를 띄우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고 팔뚝엔 힘이 많이 들어 터질 것 같았고 다리를 뻗어도 넘어질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처음에 우르드바 다누라 사나를 할 시 허벅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등 뒤 견갑골 모으는 것도 고역이었고 정수리까지 바닥에 어찌어찌 닿아도 나의 상체를 들어 올리기가 너무 벅찼다.
그래서 나는 반쯤 포기한 채로 열심히 기본적인 동작을 바탕으로 수련이나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철학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꾸준히 수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 아사나는 나를 만나러 와요. 기필코.
그분은 자신이 어떤 아사나를 만나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걸리셨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 7년이란 세월을 어떻게 감내하고 수련을 해오셨을까. 나는 감히 그 인내와 감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아, 내가 이 동작들을 단 기간에 해내리란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을 정말 환하게 비워버렸다. 그전에 나의 마음속 잔에서 찰랑거리던 '미련'이란 방울들을 털털 털어버렸다. 그랬더니 아사나를 시도할 때에 그 아사나가 당장 잘 안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거웠다. 아사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그 걸음이 경쾌했다. 언젠간 만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하나씩 아사나들이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전체적 근력이 뒷받침해주니 카카 아사나가 마중 나왔고 팔뚝과 코어 근육이 조금씩 더 붙으니 시르사 아사나가 반겨주었고 등 뒤의 유연성과 허벅지의 근력이 채워지니 우르드바 다누라 사나 가 환영해줬다. 올해 초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들에 나는 새삼 무던함과 끈기의 힘을 새삼 달리 보게 된다.
처음에 아사나들을 만났을 때보다 수련의 시간이 더 채워진 지금은 전체적인 나의 아사나에 깊이감이 생겼고 견고함, 단단함이 채워지고 있다. 하도 요가원에 꾸준히 들락날락하다 보니 나를 기억하시는 한 선생님께서 어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요즘 근력이 많이 생기셨죠? 예전보다 동작들이 더욱 견고하고 정제돼 보여요.
나는 놀랐다. 요즘 동작을 연결할 때에도 발의 뿌리내림과 호흡의 리듬감을 기억하며 급하지 않게 취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근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변화를 나는 서서히 알아차리고 있었는데 내가 아닌 남인 다른 선생님께서 나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보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알아차림을 통해 나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엔 전보다 좋아진 유연성과 근력을 바탕으로 예전엔 상상할 시도조차 못 했던 아사나들을 조금씩 시도하고 연습하고 있다. 나의 몸이 허락해주는 선까지 한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너무 욕심에 나의 몸을 누르지만 않는다면 건강한 도전은 나의 몸과 마음에게도 새로운 성취감과 목표의식을 고취시키기 때문이다. 당장은 잘 되지 않더라도 나는 즐겁다. 지금처럼 꾸준히 놓치지 않고 수련을 해나간다면 언젠간 또 만날 아사나들이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자. 초조해하지 말자. 서두르지도 말자.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