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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May 28. 2022

'요가'란 무엇인가?

요가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졸업작품 준비로 정신없는 4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쁨의 연속에서도 나름의 멈추어가기, 쉬었다 가기, 다시 걸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침마다 하는 요가 수련도 계속 진행하면서 점점 발전되어가는 나의 졸업작품도 나도 모두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작품을 진행하면서 나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예전에 요가원에서 해부학 선생님께 들었던 '요가'에 대한 정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가를 한다는 건 결국 무엇일까. 요가가 단순히 일반인들이 하기 어려운 아사나들을 하고 남들보다 유연하고 날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많은 이들이 알기 시작했다. 요가를 구성하는 것들은 아사나뿐만 아니라 호흡, 명상 그리고 깨달음이 포함되어있다. 요가는 알면 알 수록 배울 것이 많고 무궁무진한 세계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에 아사나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의 나의 '깨달음'으로 글을 쓰려는 이유이다.


졸업작품을 진행하면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나를 다시 돌아보고 성찰해가며 잊고 있던 나의 과거를 다시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또는 글로써 표현하며 나는 나의 무의식을 나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을 열심히 준비하다가도 힘들다고 내 안에서 무언의 신호가 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밖을 나서서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 아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욱 세심하고도 자세하게. 홀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이기에 힘든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나는 이전과 같이 울지는 않는다.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에 대해 충분히 잘 인지하고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통 속으로 나 자신을 내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이 일상생활 속 졸업작품 준비하고 제작하는 이 일련의 나의 과정 자체가 마치 요가 수련과 매우 맞닿아 있다고 깨달았다. 이 깨달음의 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작품 제작과 같은 창작의 분야는 처절하고 고통의 연속이며 강자들이 살아남는 세계다. 나는 결단코 예체능 특히 미술을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선택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그들은 나중에 창작의 쓴맛을 보고 그 길을 포기하거나 더 큰 희생을 치르고 후회를 한다. 


단순히 겁을 주려는 표현이 아니라 실상이 그렇다. 나의 브런치 여러 글들에서도 묘사되었듯 창작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혹독하고 냉철하다. 자신의 한계를 보다 명확히 알아차리게 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곳에서 나만의 것이 없다면 결국 도태된다. 그런 세계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는 창작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요가 수련을 해왔다. 중간에 잠시 요가를 그만둔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고 돌아 결국 지도자 과정까지 밟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요가가 단순히 동작을 잘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요가는 무엇일까. 요가를 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작년보다 훨씬 줄어든 수련시간 때문에 나름대로 초조한 마음도 있었다.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자격까지 얻었는데 나의 몸이 그만큼 응해주지 않고 오히려 굳어버려서 어떻게 누굴 지도할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심적 부담감이 같이 커졌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마음은 결국 요가를 '아사나'로 인식해서 나온 거란 걸 알아차렸다. 그간 열심히 마음 수련하고 갈고닦아 왔으면서 또 이런 마음에 사로잡히다니. 에고는 늘 마음의 빈틈, 빈 곳의 허를 찌르고 파고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색에 잠겼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작품과정의 순간순간들 그리고 나의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바쁨의 순간들 중 나는 착실히 요가 수련을 하며 쉼표를 달아주고 있었고, 자취방이 갑갑하다 싶으면 밖으로 나와 책을 읽으며 머리를 비웠다. 그리고 내가 의욕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 때까지 나 자신을 기다려주었다. 예전처럼 나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고 억압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작품을 진행해야 할 때가 온다면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했다. 너무 힘이 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이 힘듦의 순간들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떠한 감정이나 분노가 찾아오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의 상황을 직시했다. 계속 마주했다.


그렇다. 이는 내가 요가 수련 속에서 부단히 해왔던 과정들이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그 아사나를 하려고 하지 않기. 기다려주기. 숨 쉬기. 호흡에 순간순간을 기억하기. 나의 손과 발이 매트와 접지해 있는지 현재를 알아차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요가는 생각보다 거창한 수련의 순간들이 아니라 매 순간 일상 속에서 계속해오고 있는 존재였다.


해부학 선생님께선 자신의 의도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요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서 하는지 아니면 의식 없이 하는지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요가는 단순히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졸업작품 자체로도 요가라고 하셨다.


그렇다. 나의 이번 졸업작품은 내게 크나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자전적인 내용이면서 나의 커다란 내적 자아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자아가 성장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러한 강인한 내적 자아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이야기이다. 그 속에서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내적 강인함과 온화함 그리고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매개체는 바로 '요가'였다. 요가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다. 요가와 나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현재 졸업작품이다.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았던 나의 내면의 요가가 이젠 구체화와 시각화로 점점 실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졸업작품을 진행하는 나의 1학기 생활들 자체도 이미 요가였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숨 쉬기, 쉬었다 가기, 나 자신을 기다려주기, 몰입하기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요가 동작들을 예전만큼 많이 취할 수 없었어도 이미 나는 내적으로 요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요가 철학에서 배웠던 지혜와 배움의 실천은 계속 이행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몰려온 에고도 알아차리고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던 게 아닐까.


그러니 괜찮다. 예전보다 나의 몸이 뻣뻣하고 굳어져도 괜찮다. 예전보다 화려한 동작들을 못 해도 괜찮다. 나는 이미 내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지고 있으니. 요가를 진정으로 생활 속에서도 실천하고 받아들이고 그 배움의 깨달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니. 에고의 순간들이 왔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졸업작품만큼이나 나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았으니.




'현재'의 순간을 기억하자. 그리고 계속 숨을 쉬며 걸어가자.
그것이 요가의 길, 흐르는 삶.




그러니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인다. 괜찮아.


전보다 수련을 할 수 없어도 괜찮아. 매일매일의 순간이 이미 내겐 '요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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