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정신없는 바쁜 나날들을 보내던 찰나였다. 부산에서 계시던 아빠가 갑작스럽게 경기도 집으로 올라오셨다. 그 이유는 이쁜이가 노령견이었는데 요즘 자주 아파서 혹시 나하고 오신 거였다. 그 덕에 나는 주말에 생각지도 않게 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빠를 정말 오랜만에 뵈었다.
우리 아빠는 선박을 운전하시는 항해사이시다. 지금은 선장 직위로 꽤 오랜 세월 근무하셨다. 아빠의 특수한 직업 특성상 나는 아빠를 어린 시절부터 자주 보지 못했다. 아빠를 볼 수 있었던 때는 아빠가 한국에 정박하고서 몇 달 휴가 오셨을 때뿐이었다. 아빠는 주로 자동차나 그 외의 여러 수출품들을 이끄는 큰 선박 위주로 타시기 때문에 한번 항해하실 때마다 길게는 6개월 정도는 못 본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아빠와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손에 꼽는다.
아빠가 부산에 계신 이유도 아빠의 직업 때문이다. 주로 부산항에서 근무하시기 때문에 부산에 계실 수밖에 없으시다. 매일 바다에서 떠다니시고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근처에서 사시니 아빠에겐 바다란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아빠는 집에 오셔서 나의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요가 자격증들을 보셨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으시면서 아빠는 어깨가 뭉친 것 같은데 풀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간 떨어져 지냈던 세월을 생각하며 아빠의 목과 어깨 견갑골들을 만져드렸다. 돌처럼 꽝꽝 얼어붙은 근육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일하셨을지 짐작케 했다. 손가락 하나조차도 들어가지 못했던 어깻죽지는 몇십 분을 만져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졌다. 나의 정성 어린 마사지를 받은 아빠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개운함과 가뿐함에 흡족해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밤에 또 내게 허리가 아프다며 풀어달라고 살짝 애교를 부리셨다. 계속 봐왔던 아빠의 근엄하고 보수적이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내게 친근한 미소를 띠며 철퍼덕 이불 위에 엎드린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래서 이번엔 인 요가에서 배웠던 나의 지식들을 끌어모아 그동안 많이 뭉쳐있었을 근막과 근육들을 풀어드리고 플라스틱 공과 경침 그리고 블록을 이용한 도구를 이용한 근막 이완 마사지도 해드렸다. 단순히 근육을 만져주는 것이 아닌 도구나 손을 이용하여 정확히 통증을 일으키는 트리거 포인트를 찾아 그 포인트를 차차 완화시켜 없애는 방식이다. 한 가지 자세로 오랫동안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경직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부위를 기점으로 통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빠의 몸 또한 전체적으로 많이 딱딱했다.
엄마를 요가시켜드렸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엄마의 몸은 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비교적 움직이는대로 잘 따라와 주는 느낌이었다면 아빠의 몸은 전반적으로 돌덩이였다. 지방이 상대적으로 적고 골격이 다부지며 확실히 여성에 비해 남성이 골격이 큰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단 몸이 두껍고 무거워 힘이 많이 들어갔다. 아빠는 편하게 나의 이완을 받으셨겠지만 나는 또 다른 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강도였다.
아빠의 등은 처음엔 살을 잡았을 때 잡히지 않을 정도로 살들이 퉁퉁했고 매우 단단했다. 아빠의 허벅지나 정강이 또한 공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경직된 상태였다. 여러모로 일을 하시면서 쌓였던 피로와 삶의 무게와 책임감등이 쌓여 오늘날의 몸으로 체화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몸을 만져드리면서도 나는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오고 갔다.
배를 옛날에 어렸을 때 아빠가 운전하셨던 배를 탄 적이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파도와 그 위에서 한가롭게 넘실대던 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나였다. 심지어 한밤 중에 파도가 요동쳐서 배 안에 있던 물건들이 엎어지고 아수라장이었던 상황 속, 어렸던 나는 멀미가 나서 엄마 품에 꼭 붙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배를 타는 건 좋아하지만 그때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라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배는 그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빠의 인생에 반 이상은 배를 타는 인생이었다. 아빠가 배를 타시는 동안 나는 육지에서 편하게 공부하고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아빠와 보낸 시간이 남들과 비교하자면 그리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상 아빠에 대한 감사함을 잊은 적은 없었다. 바다를 보면서 항상 아빠가 항해하시고 있겠거니 짐작했다. 아빠는 그만큼 내 마음속에서 큰 존재감을 가지신 분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직접 아빠의 온몸을 구석구석 짚어드리고 만져드리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이렇게 먼저 내게 해달라고 하실 줄은 몰랐다. 무뚝뚝했던 아빠는 똑같이 무뚝뚝한 아들 같은 딸에게 난생처음으로 요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내비치셨다. 나는 아빠에게 그날 내가 배웠던 지식들과 경험들을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만져드렸다.
그리고 아빠는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만족해하셨다. 아이같이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성과 남성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이론상으론 알았지만 직접 만져보니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고스란히 몸은 보여주고 있었다. 그 세월의 흔적들은 온몸 구석구석에 남아있었고 나는 그 흔적들을 보물찾기 하듯 낱낱이 찾았다. 더 이상 아프시지 말기를. 더 이상 힘들어하시지 않기를. 더 이상 혼자서 다 끌어안고 가시지 말기를. 그런 생각들이 묵묵히 들었다.
앞으로 행복하시기를. 아빠의 앞 날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나는 아빠의 온몸을 만져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