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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ug 01. 2022

'비건'에 대하여

완전한 채식주의자보다 불완전 채식주의자를 꿈꾼다

 작년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으면서 배웠던 요가 철학 주제엔 아힘사 '비폭력'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처음으로 배웠던 철학 주제이기도 했는데 이 주제를 가지고서 철학 선생님께선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엔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셨다가 동물들이 도축되는 과정을 보시고서 서서히 고기를 줄여 비건으로 전향하셨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무심결에 먹는 동물 고기가 도축되는 동물들 입장에선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가축들을 도축하고 사육하는 곳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결론까지 다다랐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동기 분들께선 철학 선생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았는지 그날부터 채식을 시작하겠다는 분도 계셨고 비폭력 주제로 썼던 에세이 중 몇몇은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그날 저녁으로 고기를 먹어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분도 계셨다. 각양각색의 반응들에 철학 선생님께선 우리에게 억지로 채식을 권하지 않으셨다. 육식을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채식이란 고리 안에 또다시 우리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는 폭력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


언젠가, 내 마음에서 진심이 우러나올 때. 진심으로 채식이 하고 싶어 질 때.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본래 채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이미 동물들이 도축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숱하게 봤기 때문에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요가원 근처엔 채식주의 식당이 있었는데 동기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갔던 곳일 뿐이었지 정말로 비건 지향을 꿈꿔서 갔던 건 아니었다.


처음 접해본 비건용 스파게티.


채식주의 식당에서 콩고기가 들어있는 미트 스파게티를 시켜서 먹었는데 내가 일반적으로 먹었던 고기 스파게티 맛이 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동기 분들께선 조금이라도 이렇게 비건 지향적인 식사를 시작하면 언젠가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있지 않겠냐며 나름의 소신을 말하곤 했다. 나는 조금 비싼 레스토랑 정도로 인식했고 철학 선생님의 말씀 따라 마음에도 없는 채식을 무리하게 따라가다가 나중엔 나 자신을 경멸하느니 적당히 채식주의 음식도 먹어보고 평소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편이 낫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지도자 과정은 하루 종일 진행되었기에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동기분들과 가장 많이 갔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그 비건 레스토랑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철학 선생님께선 가끔 내게 어떤 메뉴를 먹어보았는지 여쭤보았는데 내가 비건 메뉴를 말할 때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땐 그 의미가 뭐였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 비건이라는 단어, 개념 자체가 내겐 참 생소한 존재여서 잘 와닿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채식주의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비건이 단순히 채소만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고 그 나름의 실천 방향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완전 채식을 지향하는 부류, 고기를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하는 부류 그리고 식물의 생장에 방해가 될까 떨어진 과실이나 잔여물을 먹는 부류 등등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명칭들은 어려워서 기억에 남지 않지만 저자는 자신만의 비건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비건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동물을 생각하는 실행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완벽한 비건이 되기 위해 극단적으로 육식을 끊고 채소만 먹자고 권유하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그 작은 마음에 실행을 한 걸음씩 옮기자는 불완전한 비건 주의자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한 권을 술술 읽은 나는 작년의 요가 철학 아힘사 주제에 왜 채식이 등장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채식을 한다는 건 고기를 먹는 횟수를 줄이고 그에 따라 동물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는 것. 더 나아가 동물들을 잔혹하게 죽여서 만드는 모피나 동물실험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 그리고 기존 사육시설보다 더 쾌적하고 윤리적인 사육환경에서 나온 달걀이나 제품들을 선택한다는 것.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어떻게 좀 더 잘 보전하며 모두가 이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건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한 느낌이 들어서 당장 도를 닦으러 절에 가야 할 것 같고 아예 고기를 안 먹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강압적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비건을 주제로 한 책은 참으로 산뜻하면서 다정하게 비건에 대해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철학 선생님께서 왜 나에게 그리 칭찬을 해주셨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한 걸음이 나중엔 큰 걸음으로 되어있을 테니까.


한 번 시도한 실천은 나중에라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되니까.


잘 모르더라도 하나씩. 한 걸음씩.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음대로 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조금씩 걸어 나가다 보면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해치지 않고 같이 더불어 상생하는 환경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먹었던 채식주의 음식들은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담백했다. 맛이 엄청 훌륭하다고 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맛없지도 않았다. 요가를 오래 하시는 분들께선 나중엔 자연스레 채식을 지향하시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물론 공식은 아니지만 나는 느껴졌다. 아힘사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의 노력이. 


나는 완전한 비건 주의자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고기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먹을 때 힘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채식주의 음식들을 먹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조금씩 채식에 다가가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먹는 오늘의 메뉴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어떤 생명의 고귀함을 앗아갈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 조금은 불편한 고찰을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갖고 있던 비건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부서졌고 그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 책을 잘 읽었던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힘사와 채식에 관해 작년까지만 해도 와닿지 않았던 내용이 지금은 매우 잘 와닿는 경험을 해서 신기하다. 철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진심으로 채식에 대해 와닿고 실천할 수 있는 순간이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비록 느리더라도 요가 수행의 길처럼 조급하지 않게 다가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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